「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틀어 놓고
이 책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를 읽었다.
3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처음 받았을 때
과연 바흐의 음악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음악을 들으며 분위기라도 느껴보자고 틀어놓았는데
책의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함께 했다.
사실 음악을 직접 듣지 않아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긴 하다.
음악과 음악가가 소재이긴 하지만
저자가 초보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워낙 상세하게 풀어썼기 때문에
굳이 음악을 모른다고 해도 책을 읽는데는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장중하게 울려퍼지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함께
책을 읽으니 바흐가 살던 시대,
파블로 카잘스가 살던 시대가 재현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상황에 몰입하며 읽으니
책의 내용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 영상처럼
배경이 생략된 오로지 피사체 하나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첼로 혼자 고독한 공간을 채우는 느낌을 준다.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고,
현란한 움직임은 더욱 깊은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책과 함께 첼로의 음색으로 꽉찬 공간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마음껏 향유했다.

책은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바흐의 일생을 토대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작곡되기까지 과정,
파블로 카잘스의 일생을 토대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필사 악보를
최초로 발견하고 최고의 연주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저자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원본 악보를 찾기 위해
위 두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존재조차도 몰랐던
악보가 그것도 당시 잘 연주하지도 않았던 첼로 모음곡을
13살 소년이 우연히 중고악기점에서 발견하여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이야기도 극적인데,
여기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손으로 그린 원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가미됨으로써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카잘스가 20세기 초에 연주하기 시작한 후로 우리는 운 좋게도
이 명작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바흐의 자필 악보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흐의 곡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바로 이 부분이 내 안의 저널리스트 본능을 일깨웠다. 그렇다면 바흐의
매뉴스크립트, 즉 손으로 그린 원본 악보는 대체 어디 갔을까? 바흐는 살아생전 수많은 협주곡과 칸타타, 솔로 바이올린곡 등을 작곡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바흐의 서명이 담긴 원본 악보 또한 매우 많다.
그런데 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악보도 존재하지 않은 채 역사의 틈
사이로 빠져나간 것일까? 여기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7

책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구성 형식을 띠고 있다.
첼로 모음곡이 6개 악장까지 있는 것과 같이
책 역시 동일 제목을 6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각 장의 구성 형식 또한 첼로 모음곡의 구성과 동일하다.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저마다 6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렐류드로 시작해 지그로 끝난다. 그사이에는
옛 궁중 춤곡 알망드, 쿠랑트, 사라반드가 있고 그 후에는 미뉴에트나 부레, 가보트 같은 좀 더 '현대적인' 춤곡을 만날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챕터마다 첫 두세 개의 춤곡에는 바흐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바흐의 생애를 따라가면서「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과 어떻게 달랐고,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 추적할 것이다. 그 이후의 춤곡들은 파블로 카잘스를 위한 공간이다. 카잘스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먼지 자욱한 중고 악기점에서 끄집어낸 순간부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곡을 어떻게
세상에 빛을 보게 했는지까지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마지막으로, 각 곡을 마무리하는 지그에서 나의 여정을 담았다. 한 세기를 뛰어넘은 바흐와
카잘스의 생애, 그리고 그 시대의 음악사와 정치사를 총망라해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담긴 비밀을 추적했다.
---p.8~9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서 세상밖으로 나온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러나 바흐의 자필 악보는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그 악보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는 설정은
단순히 음악가와 음악을 소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장감을 준다.
얼마 전 상영되었던 영화,
고흐 죽음의 원인을 추적해가는 '러빙 빈센트' 역시
화가와 화가의 작품을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더 흥미와 몰입감을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 또한 편안하게 펼쳤다가 과연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다.
바흐와 카잘스의 일대기 못지 않게
가장 중요한 바흐의 음악에 대한 정보들은
음악을 듣지 않아도 눈으로 그려질 것같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바흐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토리를 가지고 상상해서 듣는 저자의 감상 방식은
어려운 음악을 느끼고 즐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연주가가 끝없이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연주자에 따라 표현해내는 느낌이 달라진다고 한다.
자세한 연주 방법을 알려주는 매뉴스크립트의 분실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 형식 자체가 이제는 고유의 음악이 되었다.
우연이 역사를 만드는 것처럼.
이러한 열린 결말같은 자유로움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의 음악과도 자연스러운 공존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출몰하는 여러 제보나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필 악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바흐가 작곡을 하면서 사용했던
잉크가 산성 잉크라서 악보가 점점 손상되어 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더 손상되기 전에 찾아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빠졌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그 원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지금 등장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시대물 연주에서 낭만파, 재즈, 아프리카 음악,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기 등
광범위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335~336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이미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시대와 악기에 따라 무한 변신을 할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청중 역시 이미 그렇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남겨두는 것이
연주자들이나 청중들에게 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여섯 번째 악장의 마지막은 '지그'다.
천장이 빙빙 도는 지그 춤을 추는 것처럼 휘청거리는
유쾌함과 소박함이 가득하 장이라고 한다.
수많은 화음의 씨앗이 흩뿌려지다가 마지막 음에 도달해서
악사는 깨끗하고 단순하고 아무런 꾸밈없이,
그리고 조금은 갑작스럽게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춘다.
숨가쁘게 달려온 이 책의 여정도 이 지점에서 그렇게
갑작스럽게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