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책 일기
최유리 지음 / 위즈플래닛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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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지난 몇 주였다.

책읽기도 거의 스톱 상태.

퇴근하고 와서는 자기에 바빴고

생각이 필요없는 일들에 나를 맡겨버리곤 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일과가 반복되던

몇 주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비로소 숨 한 번 크게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주말 아침.

드디어 층층이 쌓여있는 책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또다른 숙제같아 이불을 덮어써버린 것도 잠시.

이렇게 다시 피폐한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제일 위에 있는 [고군분투 책 일기]를 집어들었다. 

 

 

사실 이 책은 비교적 얇은 편임에도

반쯤 읽다가 미뤄뒀었다.

저자의 치열한 하루하루가 그냥 슥 읽고 말아버리기엔

너무 짠하고 힘겨워보여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같이 찾아 보며 읽고 싶어져서

한숨 돌리면 그때 천천히 다시 읽자는 마음으로

읽기를 중단했다.

 

한동안 88만원 세대라는

세대를 지칭하는 우울한 말이 유행을 했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를 가졌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나빠져 3포세대를 지나

이제는 N포세대로....

뭘 포기해야 하는지 헤아릴 수도 없어

미지수로 넣어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그 한복판에 저자도 있다.

청년실업의 그늘에서는 비켜났지만 여전히

희망이 없는 세대의 일원.

인간 생활의 기본권인 의식주마저도 힘겨워

신음하고 있는 청년이다.

'82년생 김지영'의 무거운 숙제까지 떠안은

그녀는 일찌감치 결혼을 포기했다.

 

그렇게 닥쳐올 많은 문제를 가지치기했지만

그럼에도 눈앞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풀지못한 숙제들이 산적해있다.

그녀는 SNS에 그 고군분투의 과정을

일기로 옮기기 시작했고 반응이 좋아

연재 제안을 받게 되었다.

개인적인 넋두리 대신 '책'이라는 주제로 버무려

'책 일기' 형식으로 연재를 시작했고,

이를 책으로 묶어 출간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책과 함께 한 일기를 통해 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 결혼에 대한 생각, 일에 대한 생각까지 꼬여있던 질문들을 책 일기를 통해 많은 부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 책이 고군분투하며 꼬인 삶을 풀어내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찌질한 일기들이라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삼포세대'라고는 하지만 제 주변에는 학자금 대출 없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훨씬 더 많고 차근차근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시골 출신 도시 가난뱅이의 푸념만 가늑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신문에서 '삼포세대'라는 말이 나와을 때 참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어쩐지 힘이 되더라고요. 누군가 함께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는 것은 큰 위안입니다. 나의 아픔이 오로지 내 탓만은 아니라는 것, 혹은 나의 아픔이 오로지 혼자만의 아픔은 아니라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가득한 넋두리일지라도, 이 작은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 <머리말 中>

 

 

책 일기라는 개인적인 일상을 표현하는 공간이다 보니

책의 종류는 저자의 관심사에 집중되어 있다.

삼포 세대, 베이비붐을 다룬 성석제의 <투명인간>,

힘내라는 말에 지친 <미움받을 용기>,

공허한 '할 수 있다'는 말의 위험성 <피로사회>,

왜 대학에 가야하는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 가에 대한 물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결혼과 출산의 포기 선언 <인구쇼크>, <5년만의 신혼여행>,

그리하여 혼자 살기의 선포

<개인주의자 선언>,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외에 가족간의 관계, 직장에서의 어려움,

서울살이의 고달픔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치열하게 글로 옮겼다.

 

책 목록만 봐도 저자의 현실과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중에서 찾은 보물같은 책.

소설가 장강명의 <5년만의 신혼여행>.

사실 소설보다는 가수 요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책, 이게 뭐라고'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된 작가다.

 

 

소설 잘 쓰기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작가라는데,

방송에서는 어눌한 듯하면서도

조곤조곤 핵심을 찌르기도 하고

순수한 질문으로 본질을 드러내게 하는

매력적인 진행자이기도 해서 호감이 갔었다.

신문사 기자 출신이고 아내 바보라고 느껴질 만큼

지금도 아내 사랑이 방송에서도 그대로 묻어나

애처가인가보다 했는데

의외로 집안의 반대로 결혼식도 못올리고,

혼인신고만 하고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그 덕에 회사에서 결혼 휴가를 못받아

신혼여행도 못갔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비로소 5년만에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 삶의 방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쓴 책이 바로

<5년만의 신혼여행>이라고 한다.

반대하는 결혼, 전업작가를 위한 사직,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선택한 그의 용기와 심지가 궁금해졌다.

느릿느릿 때로는 수줍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방송에서의 그 순한 목소리 안에

저런 과감함과 힘이 있었다니 놀랍기도 했다.

 

"소설가 장강명은 말한다. "자식이 위험에 빠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모험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모험을 권하는 부모도 없다"고. 물론 모험을 허락하는 부모도 있다. 자식에게 닥칠 위험도 자신들이 수습할 수 있을 때. 그래서 부자 부모 아래에서 자란 젊은이가 더 많은 모험을 누리게 되고 더 진취적이라고. 심술이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생에서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인생이 아니다. 사는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좋아요 백 번! 누르고 싶은 말. ---p.39~40

 

"저자의 말은 "한국인들이 정체정 문제에 관한 한 정신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한 뚜렷한 믿음이 없기에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에서 찾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대학 간판이나 자식 결혼식장에 모인 하객수로 구체화 된다." 이 허약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래, '기적'적인 성장 사회를 만들어 내느라 자신을 챙길 틈이 없었을지도. (중략)

그저 우리 부모 세대들이 자신의 '허약한 정체성'을 타인을 통해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면, 내가 결혼을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뜯어말려도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게 사는 것." ---p.41

 

내 허약한 정체성으로 아이들에게

미래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봤다.

아직은 그 모든 시선에서 자유로울 만큼

내 정체성이 굳건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달라지려고 노력은 해야지.

우리부터, 나부터라도 바꿔나가야겠지.

저자의 책 일기 글에 공감 꾸욱!

 

 

저자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살면서

상처와 아픔, 고통을 '책읽기'로 치유한다고 한다.

절망의 현실을 나열한 목차의 끝자리에는

그래서 '책 읽기'에 관한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

카바사와 시온의 <나는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고군분투 책 일기를 마무리하는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

 

"마지막으로 함께 읽고 싶은 책은 바로 내게 '신경성위염'을 진단해 준 의사 같은 책, <정희진처럼 읽기>다. 저자는 "책을 읽으면 덜 아프다"며 치료제처럼 읽은 책을 소개한다. 내가 아픈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아픔을 피할 수 있으리라. 내가 '고군분투 책 일기'에서 읽고 소개한 책도 대부분 나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책, 내가 왜 아픈지 알고 싶어 찾은 책이었다. 저자의 글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만지고, 별일 아닌 듯 나를 설명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삶이 온통 질문의 연속일 때, 나보다 조금 더 빨리 질문하고 상처받으며 견뎌온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명쾌한 내 마음진단서였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한 권도 읽지 못 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해서 어려웠다."

---p.161~162

 

저자와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아픔을 갖고 있어서인가

나 역시 저자에게 치유가 된 책들을 대부분 읽지 못했다.

그러나 공유할 수는 없지만 공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역시 책이 치료제로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증상은 다르지만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매개로서 책은 언제나 진리요,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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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장석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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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의 책은 이번이 세 권째다.

아니 온전히 읽은 책은 <은유의 힘>에 이어

두번째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의욕적으로 읽기 시작했던 <장석주가 새로 쓴 한국 근현대문학사>는

원하는 부분만 뽑아서 읽고는 방대한 양에 잠시 미뤄두고 있고,

부인인 박연준 시인과 6개월동안 함께 써내려간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역시 읽다가 기간이 되어

도서관으로 되돌려보냈다.

다독가로 알려진 저자가 선택한 굵직한 책들과

촘촘하고 반듯하게 짜여진 글과는 대조적으로

감성적이고 연한 커피같은 책들과

부드럽고 느슨한 그녀의 글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읽은 재미는 물론 책의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마침 바쁜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아쉽게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을 하게 되었지만

여유가 생기면 다시금 읽으려고 목록에 담아두었었다.

 

 

그러는 사이

신간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가 출간된 것이다.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최근 딱딱한 책을 많이 읽다보니 감성적인 책이 그리웠고

갑자기 푹 해진 날씨에 하나 둘 피어나며

색채를 더하기 시작한 담장 위 개나리를 보니

가슴 따뜻해지는 말랑말랑한 글이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국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새벽마다 당신에게 짧은 편지를 썼어요. 삶이란 8할의 우연 속에서 번성하고, 2할의 땀과 수고로 이루어지는 그 무엇이지요. 운명을 창조하는 그 많은 만남과 이별도 그 8할에 속하겠지요. 아무튼 헤어진 지 오래입니다만 당신을 잊은 건 아니에요. 당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잘 있어요, 당신'이라고 안부를 담은 내 편지는 연애편지일까요? 그게 연애편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부칠 수 없는 편지라는 것이이지요. 수취인 불명의 편지라니! 지금 부재의 존재로써 내 안에 그리움의 깊이를 만드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 p.7 <서문 中>

 

 

이 책의 부제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하여'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매 꼭지 '당신, 잘 있어요'로 끝나는 글들은

마치 실제하는 존재에게 쓴 것 같지만

실은 지나간 나에게, 지나간 인연에게

그리고 지나간 날들에게 현재의 풍경 속에서 띄우는

연애편지인 것이다.

그 대상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시인의 상상력과 감성은 먼 타국땅,

계절마저 뒤바뀐 광활한 대지에서 맘껏 발휘된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상대가 된 듯

실감나는 이입감이 든다.

 

그럼에도 많은 '당신'은 시인의 현재 부인인

박연준 시인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은유의 힘>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늦은 나이까지

솔로였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영혼의 짝을 만났음을 알았다.

올 1월에 25살 연하의 박연준 시인과 결혼을 했고,

결혼식 대신 결혼책을 발표하기도 했었다는 것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책은 그 이전의 감정도 있고,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도 있고,

함께할 때의 즐거움과 낯섬,

불안한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특히 '시'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에도

젊은 자신을 저만치 멀리 보내버린 나와

아직은 젊음을 간직한 당신 사이의 간극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더위가 절정인 북반구를 떠나 남반구의 겨울 속 풍경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더 낯설게 만들어 버리고

타향에서의 시선은 더 솔직한 감정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도 오늘보다 젊은 어제의 나를 보내버린 채

바라보는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창을 통해 비쳐든 햇빛 속에 있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새삼 당신이 젊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웬일인지 슬퍼집니다. 당신의 젊음이 슬픈 게 아니라 이 빛나는 찰나들에 영원히 머물지 못한다는 자각과, 우리가 시간이란 유한 자원을 소비하며 사라지는 존재라는 인식이 나를 꿰뚫고 지나갔기 때문이지요. 시간은 흘러가면서 우리를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겠지요. -중략-

하지만 나도 한때 젊었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누구도 처음부터 나이 든 게 아니에요. 며칠 밤을 새우며 글을 쓰고, 혼절한 듯이 자고 깨어나면 피로가 씻겨 가뿐했던 젊은 날은 이제 사라지고 없어요. 나는 규칙적인 수면, 산책, 소식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지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는 탕진할 수 없는 시간을 가진 존재,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 -부재와 상실-에 더 예민해져 싸운다는 뜻이지요.  --- p95~96

 

 

산책을 하며 조촐한 일상을 즐기는 최소주의자였던 저자이지만

여행은 또다른 일상이었다.

이국의 공간에서 풀어놓는 시인만의 감성적인 시선은

또다른 층의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오후 늦게 블루마운틴의 일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저 장엄한 짧은 황혼의 빛 속에 조종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태양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떴다가 지기를 반복한 것일까요? 감히 그 세월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저 일몰의 장엄함을 보면서 그 감응을 각자의 기억에 되새길 뿐이겠지요. 우리 안의 이 하염없음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자연의 웅장함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하는 날카로운 인식과 함께 우리를 겸손하게 이끄는 바가 있습니다. 이 세속의 세계에 와 살면서 그런 깨달음 한 점조차 없다면 그는 마소나 다를 바 없겠지요.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주 놀라면서 감응하고, 경이 속에서 깨닫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향상되어야 합니다."--- p.37

 

 

때론 자연 현상은 살아 꿈틀대는 거대한 생명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경외심. 그런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그 위대함에,

두려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다 보면 

그 거대한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얼마나 작고 여린 지.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린 존재들이 모여

거대한 자연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노라면

이 톱니바퀴 같은 사회 속에서 힘을 쏟아붓고 있는

젊은 날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와 겹쳐지게 된다.

 

"메가롱 밸리 숲속의 저 어린 나무와 스무 살의 나를 하나로 겹쳐봅니다. 아무 소속도 없이 음악감상실이나 떠돌던 문학청년에게 미래는 우호적이지 않았어요. 밥을 구하는 대신 문학에 꿈을 두고 빈둥거리면서 가족의 적폐가 되어 떠돌던 어느 날, '나는 빛나고 싶다!' 운운하는 유치한 문장 몇 개를 남기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음악감상실 출입을 끊었어요. 무위도식하며 보낸 몇 년간의 무명 시절에 진절머리를 치며 문학이 생계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공사판이라도 나가야 하나, 혹은 구두수선공이라도 돼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한 해만 더 해보고 문학에 대한 꿈을 접기로 했어요. 나는 시립도서관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니체와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책들을 꾸역꾸역 읽었어요. 푸른 노트에 시 몇 편을 끼적이고, 봉사가 문고리 잡듯이 평론 두 편을 써낸 것은 스물 세 살 가을의 일이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 스물 세 살이 지나고 난 뒤 문학은 평생의 업이 되었습니다." --- p.101~102

 

 

"백수로 허덕이며 보낸 스무 살 시절, 불안이 수시로 찌르고 미래는 어두웠던 그 시절, 나는 한 점의 희망이라도 품었을까요? 내가 갈망한 것은 자유였어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 혹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러나 자유는 가망 없는 꿈이었어요. -중략-

희망은 그 희망의 내역이 더 이상 불가능해질 때 주어지는 절망의 다른 이름인 것을, 닫힌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일찍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나는 '개뼈다귀 같은 희망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라고 외쳤지요. -중략-

분명한 것은 희망에 기대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는 사실이지요. 무리 중에서 가장 나약한 자들이 희망에 기대는 법이지요. 결국 희망을 버려야만, 희망이 절실함에서 벗어나야만, 절망을 절망으로 견디는 자만이 자유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나의 고난, 나의 절망, 나의 현전이야말로 희망 없는 현실을 넘어 저 멀리 달아날 수 있는 도약의 받침대인 거예요. 절망을 뿌리치지 말고 그것을 타고 넘어가세요!

 

우리는 멀리 있습니다.

당신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 부디 잘 있어요." --- p.109~113

 

그렇게 단련된 강인한 그였지만

그럼에도, 가슴을 녹이는 사랑 앞에서는

천상 약하고 작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나 본다.

 

"당신을 보았을 때 웬일인지 시냇물은 느리게 흐르고, 꽃들은 더욱 화사하고, 마침 피어난 라일락꽃 방향은 더욱 향기로웠지요. 당신의 화사함으로 천지간도 명도가 몇 도 더 높아진 것 같았는데, 폭죽처럼 연신 터지는 그 환한 빛 속에서 심장이 얼어붙었어요. 그 찰나, 나는 떨면서 당신만을 바라보았지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어디에서 이렇듯 내 앞에 벙어리 장미꽃으로, 향기를 잃은 한 마리 백조로 와 있는 걸까요? 그 찰나는 온 우주가 당신만을 바라보는 듯했어요. 얼마나 흘러을까요. 당신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두드렸어요. 한참 동안이라고 느꼈지만 그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어요. 당신의 목소리는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어요. 내 인생은 그 찰나를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뉘겠지요." --- p.182~183

 

영락없는 사랑꾼의 면모다.

손발이 오그라들 법도 하지만 너무나 진지하고 진솔해서

그럴 틈이 없다.

독자 역시 그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 그 환희의 순간을 함께 만끽한다.

시간이 멈추고, 세상의 빛은 모두 그 대상 만을 비추고 있는 것만

같은 몰입의 순간.

그렇게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된 시인 부부가

어떻게 탄생을 하게 되었는가를 독자들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그의 글 역시 그 찰나를 기점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더 깊어지고, 더 윤택해지고, 더 생기가 감도는 글로.

 

이전의 글들도 분명 그 상황 속에서 진실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글들도 현재의 언어로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비교적 다작을 한 저자이기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전의 글들도 찾아 읽어봐야 겠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기록한 결혼책도 읽어볼 참이다.

그렇게 한 중견 시인의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고 즐거울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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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진정일 지음 / 궁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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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2009 교육과정의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수정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으나

아직 2009 교육과정이 채 적용되기 전인 학년이 있었음에도

굳이 교육과정의 개정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등학교 과정에서의 '문이과 통합' 때문이었다.

문과, 이과의 구별없이 '창의융합' 형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개정이었던 것이다.

이번 과학 교과의 개정 목표는 바로 '모두의 과학'이다.

평생교육으로서 '과학'에 호기심을 가지고 익힐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취지는 매우 좋지만 급하게 개정된 교과서는

날림의 수준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모든 공부가 입시로 귀결되는 우리 교육현장의 특성은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이러한 융합과학을 실천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있을 법한 우리의 삶을 상상으로 구현해낸 소설 속에서

실제의 '과학'적인 요소를 찾아내 풀어냄으로써

우리 생활이 그야말로 과학의 집합체요,

과학 무대의 중심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전작에서는 '詩'에서 과학을 찾아내 풀어냈다.

이번 책에서는 '소설' 속에서 '과학'을 끄집어 낸 것이다.

철저한 '문과'생인 나에게 과학이나 수학은 여전히

두통을 유발할 만큼 어렵고 복잡한 존재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수많은 과학적인 용어나 원리를

절반도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과학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덜어진 것은

소설이라는 스토리의 배경이 있어서 였을 것이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저자의 눈높이 설명과

부드럽고 유려한 문체 덕분일 것이다.

 

 

소설은 분량의 문제로 단편소설로 범위를 좁히고,

문학사에 중요시되는 소설과 과학적인 얘기를 하기에 수월한

소설을 시대별로 선별하여 구상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과학적인 요소와 시대별 소설이 씨줄과 날줄처럼 만나

물, 흙, 죽음, 기계화, 병원과 의료, 눈물, 과학기술용어, 실험실

이렇게 총 8개의 주제로 펼쳐진다.

 

 

제 1장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비극의 상징'인 물로 출발한다.

생명 탄생과 유지의 근원인 물은 그렇기에 아름답지만

생명을 마감시키는 비극의 수단으로서도 존재해왔다.

'물'의 과학적인 탐구에 배경이 된 소설은

김동리의 「달」(1958년 작품집『황토기』에 수록)이다.

 

"이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김동리의 맛깔스러운 표현이 정국이와 달이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은 달과 강, 울창한 숲을 통해 생(生)과 사(死)가 자연과 하나 되는, 죽음이 단절로 끝나지 않는 초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무당 모랭이와 아들 달이가 강 및 달과 갖은 인연은 사람과 자연을 동일화하고 있다. 달이의 탄생과 죽음은 모두 '강물'에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물은 '생명의 근원'임과 동시에 그의 반대 뜻인 '죽음'으로도 상징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달이를 잉태하는 장면은 물이 포태, 즉 생명의 탄생 매체임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신화적으로까지 느끼게 한다." ---p.13~14

 

이어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에서는 아다다의 비극적 죽음의 공간으로,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는 사랑과 사랑이 이어지는 매개로서

'물'이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존재하는 '물'을 문학작품을 통해서

보여준 후 저자는 본격적으로 과학으로서의 '물'로 안내한다.

 

물의 시작인 우주와 수소원자의 탄생부터 산소의 등장,

(여기에서는 어려운 화학공식도 나오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으니 패쓰~)

지구에서의 물의 출현과 생명의 근원으로서,

우리 몸에서의 물의 역할로 확장해간다.

뿐만 아니라 물의 변화 형태인 구름, 안개, 얼음까지

그야말로 물에 관한 총제적인 접근을 한다.

'안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 바로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무진의 자욱한 안개를 묘사하고 있다. 안개는 아무리 짙더라도 해가 높아지면 사라지고 만다. 지척을 못 보게 하던 안개는 언제 있었냐는 듯 소리 없이 사라진다. 서울의 때묻은 삶과 고향 무진의 순수한 삶이 함께 안개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다. 김승옥은 현실갈등의 이미지로 이 안개를 등장시켰다." ---p.27~28

 

 

6장에서는 '눈물'을 주제로 소설과 과학을 다룬다.

문학 작품에서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야 흔하고 흔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흘리는 눈물에 대한 접근은 새롭다.

가장 흔한 경우가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일 것이다.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애처로운 눈물을 최인욱의 소설「개나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열일곱에 이웃마을 농사꾼에게 시집간 연이는 남편이 징용으로 끌려가

해방 후 유골로 돌아오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남편을 보낼 때, 유골로 돌아올 때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애처로운' 눈물을 쏟아낸다.

반대로 사람들은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린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기쁨의 눈물.

강신제의 「젊은 느티나무」에서는 그런 희열과 감격의 눈물이 나온다.

엄마의 재혼으로 오누이 관계가 된 숙희와 현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표현을 할 수 없다.

현규의 정구 동무인 지수가 이들 사이에 끼어들면서

현규는 숙희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야. 우리에게 길이 없지 않어.

외국엘 가든지......"

그는 부르쥔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내 말 알아주겠어, 숙희?"

나는 눈물을 그득 담고 끄덕여 보였다. 내 삶은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중략)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평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p.168~169

 

이렇게 작품 속에 빠져 있을 때 불현듯 과학이 나타난다.

"눈물은 왜 흐르는가"하면서.

그렇게 눈물의 주요 생리적 기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과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 눈꺼풀의 열고 닫기를 원활히 해주는 윤활유 역할

· 결막과 각막을 적셔 각막이 렌즈 기능를 잘하게 함

· 각막의 대사물질을 체외로 내보내는 세척 기능

· 대기 중 산소를 흡수해 산소를 공급함

· 각막에 글루코스(포도당) 영양분 공급

· 눈물 속에 들어 있는 면역 기능 성분과 멸균성분 기능

· 비강에 습기 제공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이 기능들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눈물은 흘리는 경우에 따라서

눈물 속에 들어 있는 성분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프랑스의 과학자 드 마르셍은 눈물에는 마음이 녹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견에 따르면 감동의 눈물은 보통의 눈물보다 덜 짜고, 꽃냄새 같은 미세한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반면 아파서 흘린 눈물이나 분통과 울분을 토하며 쏟아내는 눈물은 더 짜고 냄새도 고약하다고 한다. 인간이 희로애락에 따라 흘리는 눈물은 그 성분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분에 따른 생리· 심리학적 영향도 다르다.

눈물에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과학적 과제는 외부 자극 및 심리적 스트레스, 반작용적 반응이 어떤 생리적 메커니즘을 따르기에 경우마다 다른 화합물들이 눈물에 섞이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예컨대 울분에 떨면 왜 눈물에 염분이 더 들어가게 되는지, 왜 단백질 성분이 더 많이 배출되는지 등 눈물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눈물에 들어있는 여러 성분들이 우리 몸에서 만들어질 때 어떤 이유로 감정의 변화가 유발되는지 등도 아직까지는 미지의 문제다." ---p.187

 

따라서 눈물은 생리학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접근도 필요한

복합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꿰뚫고 있는 소설가의

통찰이 과학의 걸음보다 더 빠르고 나아가고 있는 지 모른다.

 

"과학적 이해 앞서 많은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놀랄 정도로 정교하게 다루는 작가들의 예리함이 과학자들의 통찰력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p.187~188

 

 

책의 마지막에는 각 장별 주제에 소개된 작품 목록이 실려 있다.

생각보다 많은 작품이 언급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아서

읽으면서도 과학적인 시각보다는 가슴 아픈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설명을 듣듯이

왜 그런지 몰랐던 해석이나 이유를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들으니

작품 속 상황이지만 속이 시원해지고 납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우리 주위 곳곳에 숨어 있는 과학을 찾아

서로 윈윈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 융합'형 과학일 것이고

'모두를 위한 과학'이 될 것이다.

시에서 출발해 문학까지 온 시리즈가 여기서 멈추지 말고

미술, 음악, 춤, 스포츠, 정치, 역사 등등

보다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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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을 얻는 법 -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자기정화지침서
아놀드 엠 패턴트 지음, 강준린 옮김 / 북씽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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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끔 고통스러운 상황,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어서 무기력해지는 상황을 선택할 때가 있다. 이는 인간이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존재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잠시 망각하고 고삐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뒤죽박죽 얽히고 고통스러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혜의 깊이가 무한한 우주는 인간이 스스로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때까지, 쉽게 말하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 영원한 사랑의 결집체로서의 모습을 알아볼 때까지 우리가 자초한 상황을 확실히 인식하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을 얻는 법] 뒷표지 글이다.

요즘의 내 증상이 그래서 더욱 가슴에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나 뿐이랴.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치고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명상이나 심리책을

주기적으로 찾아 읽는데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좀 나을 것같은 플라시보 효과라도

누려 볼 양으로 방법을 바꿔가면서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10년 개봉했던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를 보았다.

개봉 즈음에 봤었는데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요즘

계속 머리 속을 맴돌던 영화라 모처럼 시간이 나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이탈리아에서 먹고, 인도에서 수행하고, 발리에서 사랑을 찾은

그저 삶에 지친 주인공이 삶의 터전인 뉴욕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정도의 스토리만 좇아갔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떠올랐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힘든 현실에서 과감하게 떠날 수 있었던 주인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다시 보니 사람에게 상처받고

새로운 사람에게서 치유를 하려고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낯선 나라로 떠난 것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발리에서 만난 주술사는그녀에게

부적같은 그림을 주었다.

'머리로 보지 말고 가슴으로 보라는 의미의 그림을'

그 장면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생각하는 것을 얻는 법] 책 내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

바로 생각과 판단을 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느낌을 느끼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의식의 세계는 사실 허상임을.

그 허상의 결정 때문에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기 보다 더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정체되거나 막혀있기 때문에 만물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의 흐름이 원활하게 흐르기 위해서는 직관의 결정을 따르고

마음 속 깊이 거부하고 있던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에너지가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은 에너지의 흐름이 막혀있다는 것이고

이를 느끼고 의식하면서 흐르도록 해야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마지막이 '사랑'이라는 것은

비단 이성과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에서 지혜의 영이라는 표현하는 신이 바로 사랑이며,

우주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는 '일치' 역시 사랑이라고 한다.

'일치'라는 것은 완벽한 상태로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완벽한 자신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혜의 영'은 우리 내면에 있으며 '직관'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직관은 느낌을 통해서 다가갈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느낌에 최대한 집중하면

내면의 힘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이 '힘'은 평화의 기운을 실어주는 힘으로 무한한 자유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이 난다.

명상에서도 이타적인 '사랑'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어 왔다.

나를 내려놓고 직관으로 지혜의 영에게 맡기는 과정이 기도하는 과정이고,

그렇게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타인과의 '일치'가 되는 과정이 바로

사랑의 과정인 것이다.

영화의 흐름이 이 책의 핵심 과정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이 책의 저자는 25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그만큼 고통과 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원인도 알 수 없는 통증을 치료하고자 시작한 명상에서

우주의 법칙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변호사 특유의 논리로 설파하면서 많은 이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글을 쓰고 책까지 내게 되었다.

 

이 책의 부제는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자기정화지침서'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임시방편의 처방전이 아닌 근원적인 해결 방법을 제새해주고 하는 것이다. 

 

 

총 8부로 구성하여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이론과 실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부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에너지나 지혜의 영, 일치, 완벽하기 등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한다.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실천해갈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가장 근원적인 방법인 '느끼기'부터 시작한다.

느낌이란 에너지가 진동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진동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생각의 과정이라고 한다.

해석이나 묘사, 평가 등 이성적 사고로 접근하면

에너지의 흐름의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고,

이 상태가 불편함을 느끼는 상태라는 것이다.  

느낌을 해석하고 정의하지 않으면

느낌의 에너지는 자유자재로 몸 안을 흘러 다닐 수 있게 되고

'기쁨'의 상태를 경험하면서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의 참 모습을 알게 되고 우주의 모든 피조물과

완전한 궁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느끼는 연습은 어떻게 해야할까?

 

<느끼는 연습>

눈을 감고 몸의 상태를 느끼고자 의식을 집중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에 어떤 느낌들이 느껴지는지 관찰한다.

 

1. 머리에 스치는 생각들을 편하게 느껴본다. 그리고 그 느낌 속의 에너지와 힘을 느낀다.

2.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껴본다. 그 느낌 속에서 느껴지는 힘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느낀다.

3. 느낌 자체를 느끼고, 느낌 속에 내재된 힘을 인식하는 자신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느낀다.

--- p.59

 

저자는 당연히 이 과정이 단 번에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책에 제시된 방법들은 평소 꾸준히 계속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3부는 판단하지 않는 방법, 시간의 개념, 인식과 완벽한 반응 체계등

인식에 대하여 다루며,

4부에서는 실질적으로 현실의 상황 속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풍요로움에 대하여 다룬다.

5부에서는 인생의 목적을 깨닫는 방법, 자기애에 대해 다루며,

6부에서는 수단과 목적을 일치시킴으로써

리듬과 조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7부는 가장 중요한 '지지모음'에 대하여 다룬다.

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타인이 서로 지지해줌으로써 이 과정을

더욱 잘 단단하고 원활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였기에 강력 추천하는 방법으로

지지 모임을 만드는 것부터 진행하는 순서까지 상세히 제시해준다.

마지막 8부에서는 더욱 더 높은 차원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다루며 마무리 한다.

 

책을 다 읽었지만 느끼기 조차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복잡한 문제는

어떻게 대하고 풀어나가야 하는지 실질적인 해법은 찾은 것 같다.

수없이 떠오르는 번민과 갈등의 해법을 찾은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저자가 자신있었다는

기능적인 부분의 명쾌한 설명은 설득이 되었다.

아직 지지 모임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 아침 명상으로 내면의 나, 사랑과의 대화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으니.

온 몸에 고여있는 에너지를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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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한입 화과자 - 인기 인스타그래머 갸또디솔레의 첫 번째 디저트 수업
서지현 지음 / 비타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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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왔다.

아이들이 원해서 보게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여운이 많이 남는 힐링용 영화였다.

서울살이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에 정착하는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화면 가득 펼쳐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아름다움과

천천히 흐르지만 마법처럼 펼쳐지는 요리와 음식을 보고 있으면

절로 힐링이 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바라만 봐도 좋을 영화였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과정이 나올 때마다

이 책 [예쁘다 한입 화과자]가 오버랩이 되었다.

어제까지 이 책을 읽은 때문일까.

눈으로 먼저 맛보는 화과자의 화사함과

정갈하고 깔끔한 요리 과정의 공통 분모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도 무지개떡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씽긋 미소가 지어질만큼 이 책이 그대로 재연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홍대 유명 디저트 클래스인 '갸또디솔레'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 화과자 클래스계에서는 유명인사라고 한다.

수강생이 줄을 설 만큼 유명함에도

책 집필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클래스 수강생이 몸이 아파서 참석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배우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서 였다고 한다.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것에는 한없이 자신감이 떨어지지만

저자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면 조금 나아질까 하는 마음에서

과정을 추적해보기로 했다.

단 것을 즐기지 않고, 더군다나 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화과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보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책은 쉽고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우선 초짜가 알고 가야 할 '기초 가이드'로 시작한다.

'화과자'가 무엇인지부터 기초적인 지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화과자가 뭐예요?

화과자의 '화'는 꽃 화(花)가 아니라 '일본식'을 뜻하는 화할 화(和)'자를 써요.

말 그대로 '일본의 전통 과자'를 뜻하지요.

아주 먼 옛날에는 '신에게 바치는 과자'라 하여

왕족과 일부 귀족만 맛볼 수 있었던 최고급 디저트였다고 해요.

 

고나시, 네리끼리, 셋뻬... 무슨 종류가 이리도 많아요?

양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스테이크, 파스타 샐러드 등이 있듯

화과자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도 수많은 종류의 화과자가 있답니다.

-중략-

주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따라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해요.

그중에서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예쁘게 색을 입히고 모양내는 재미가 있는 고나시, 네리끼리, 셋뻬를

중점적으로 다뤘어요." ---p.13

 

 

 화과자를 직접 만들어보는 데 필요한 도구 소개는 필수이다.

아기자기한 화과자답게

필요한 재료도 아기자기하고 소꿉놀이 장난감같다.

화려한 모양에 비해 재료나 과정, 스킬이 의외로 간단하다.

어? 이 정도면 해볼만 한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생긴다.

 

 

본격적인 시작은 다른 화과자에 비해

반죽 만들기가 비교적 수월한 '고나시'로 출발한다.

'춘설앙금'이 주재료인 고나시 반죽을 만든 후

이 반죽으로 색소를 첨가해 갖가지 모양을 만든다.

 

 

기본형 데이지는 화과자 도구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삼각봉과 마지펜만 있으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춘설앙금을 고나시 반죽으로 감싼 후

이음새 없이 둥글게 빚은 후 납작하게 한 다음

삼각봉 모서리로 8등분하여 꽃잎을 만든다.

마지펜으로 꽃잎 모양의 윗부분 반죽을 바깥쪽으로 밀어

물방울 무늬를 만든다.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살짝 밀어주라는 팁을 주는데

이렇게 중간중간 조심해야 할 부분은

팁을 넣어주어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준다.

마지막 화룡정점 꽃술을 만드는데

삼각봉의 끝부분에 Lemon Yellow 색소를 넣은

반죽을 올려놓고 무늬를 만들어 반죽 가운데에 고정시킨다.

이런 간단한 과정만으로도 먹음직스런

데이지 꽃 화과자가 완성된다.

 

 

색소와 고명틀, 모양 만드는 방법을 조금씩 달리하면

도라지꽃, 국화 등 다양한 꽃 모양을 만들 수 있다.

헝겊과 가는 체를 이용하면

자연스러운 모양과 디테일한 고명을 만들어

화려하면서도 맛깔스러운 화과자를 만들 수 있다.

 

 

2장에서는 고나시와 비슷하지만 반죽이 훨씬 부드러워

모양내기가 비교적 수월하고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인

클래스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네리끼리'를 만든다.

 

 

네리끼리는 춘설앙금보다 묽은 백옥앙금을 사용한다.

역시 네리끼리 반죽 만들기로 시작한다.

틀을 잡거나 모양을 내는 것은 고나시와 거의 동일하다.

네리끼리는 부드럽기때문에 그라데이션을

많이 사용하는데 자연스러운 멋이 더욱 화려하고 입맛을 자극한다.

 

 

3장에서는 투명한 광택이 탐스러운 '셋뻬' 를 만든다.

한천을 이용해서 투명양갱을 만드는데

다양한 색소를 사용해서 더욱 먹음직스런 색감을 낼 수 있다.

 

 

Sky Blue 색소를 넣어 만든 투명양갱과

색소를 넣지 않은 투명양갱을 함께 깍둑썰기한 후

기본 베이스인 모찌 위에 올리면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화려한 보석함이 완성된다.

 

 

삼각봉으로 모양을 살짝 만들고

색소를 넣은 투명양갱에 올려놓고 굳힌 뒤

Lemon Yellow 색소를 넣은 고명을 얹으면

화사하고 먹음직스런 제비꽃이 탄생한다.

 

 

4장은 절편이다. 쫀득한 식감도 매력적이지만

화려한 치장으로 무한변신이 가능하다.

동네 떡집에서 사먹던 바람떡이 이렇게 화려해질 수 있다.

어떤 모양을 만들어도 은은한 색감의 우아함이 풍긴다.

 

 

절편만큼이나 다양한 변신에 놀란 것은 5장의 '송편'이다.

흰색, 쑥, 분홍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송편이

화려하게 재탄생한다.

말차, 청치자, 단호박, 비트, 백년초 등 천연색소로 색을 낸 송편은

비주얼 뿐만 아니라 은은하게 퍼지는 향도 일품이라고 한다.

송편 역시 반죽 만들기부터 시작한다.

송편 소를 만들고, 모양을 만든 후에는 찌기의 과정이 추가된다.

 

 

모양과 재료 모두 색다르게 느껴졌던 포도 송편.

포도 알갱이 속에 잣을 넣어서 톡톡 터지는

재미있는 식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포도 한 송이 당 3~5개를 넣는 것이 맛의 포인트.

그외에도 감, 밤, 호박 등 다양한 모양의

먹음직스런 송편을 만들어볼 수 있다.

 

통역, 영어 강사 등 영어 관련 일을 하다

우연히 화과자를 알게 되어

일본의 화과자 명인을 찾아가 전수를 받았다는 그녀.

온수조차 나오지 않는 5평도 되지 않는 조그만 공방에서

오로지 열정 하나로 수천 번의 연습을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자연을 화과자에 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 소개된 화과자에서도

자연과 정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딸에게 '음식은 정성'이라는 그 흔한 말로 잔소리를 한다.

그 정성이 고스란히 음식으로 들어가 맛을 내고

먹는 이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이리라.

영화를 보면서 이 책이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자연의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그 '정성'의 공통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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