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진정일 지음 / 궁리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2009 교육과정의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수정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으나

아직 2009 교육과정이 채 적용되기 전인 학년이 있었음에도

굳이 교육과정의 개정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등학교 과정에서의 '문이과 통합' 때문이었다.

문과, 이과의 구별없이 '창의융합' 형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개정이었던 것이다.

이번 과학 교과의 개정 목표는 바로 '모두의 과학'이다.

평생교육으로서 '과학'에 호기심을 가지고 익힐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취지는 매우 좋지만 급하게 개정된 교과서는

날림의 수준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모든 공부가 입시로 귀결되는 우리 교육현장의 특성은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이러한 융합과학을 실천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있을 법한 우리의 삶을 상상으로 구현해낸 소설 속에서

실제의 '과학'적인 요소를 찾아내 풀어냄으로써

우리 생활이 그야말로 과학의 집합체요,

과학 무대의 중심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전작에서는 '詩'에서 과학을 찾아내 풀어냈다.

이번 책에서는 '소설' 속에서 '과학'을 끄집어 낸 것이다.

철저한 '문과'생인 나에게 과학이나 수학은 여전히

두통을 유발할 만큼 어렵고 복잡한 존재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수많은 과학적인 용어나 원리를

절반도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과학에 대한 부담이 훨씬 덜어진 것은

소설이라는 스토리의 배경이 있어서 였을 것이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저자의 눈높이 설명과

부드럽고 유려한 문체 덕분일 것이다.

 

 

소설은 분량의 문제로 단편소설로 범위를 좁히고,

문학사에 중요시되는 소설과 과학적인 얘기를 하기에 수월한

소설을 시대별로 선별하여 구상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과학적인 요소와 시대별 소설이 씨줄과 날줄처럼 만나

물, 흙, 죽음, 기계화, 병원과 의료, 눈물, 과학기술용어, 실험실

이렇게 총 8개의 주제로 펼쳐진다.

 

 

제 1장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비극의 상징'인 물로 출발한다.

생명 탄생과 유지의 근원인 물은 그렇기에 아름답지만

생명을 마감시키는 비극의 수단으로서도 존재해왔다.

'물'의 과학적인 탐구에 배경이 된 소설은

김동리의 「달」(1958년 작품집『황토기』에 수록)이다.

 

"이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김동리의 맛깔스러운 표현이 정국이와 달이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은 달과 강, 울창한 숲을 통해 생(生)과 사(死)가 자연과 하나 되는, 죽음이 단절로 끝나지 않는 초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무당 모랭이와 아들 달이가 강 및 달과 갖은 인연은 사람과 자연을 동일화하고 있다. 달이의 탄생과 죽음은 모두 '강물'에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물은 '생명의 근원'임과 동시에 그의 반대 뜻인 '죽음'으로도 상징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달이를 잉태하는 장면은 물이 포태, 즉 생명의 탄생 매체임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신화적으로까지 느끼게 한다." ---p.13~14

 

이어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에서는 아다다의 비극적 죽음의 공간으로,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는 사랑과 사랑이 이어지는 매개로서

'물'이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존재하는 '물'을 문학작품을 통해서

보여준 후 저자는 본격적으로 과학으로서의 '물'로 안내한다.

 

물의 시작인 우주와 수소원자의 탄생부터 산소의 등장,

(여기에서는 어려운 화학공식도 나오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내용을 파악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으니 패쓰~)

지구에서의 물의 출현과 생명의 근원으로서,

우리 몸에서의 물의 역할로 확장해간다.

뿐만 아니라 물의 변화 형태인 구름, 안개, 얼음까지

그야말로 물에 관한 총제적인 접근을 한다.

'안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 바로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무진의 자욱한 안개를 묘사하고 있다. 안개는 아무리 짙더라도 해가 높아지면 사라지고 만다. 지척을 못 보게 하던 안개는 언제 있었냐는 듯 소리 없이 사라진다. 서울의 때묻은 삶과 고향 무진의 순수한 삶이 함께 안개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다. 김승옥은 현실갈등의 이미지로 이 안개를 등장시켰다." ---p.27~28

 

 

6장에서는 '눈물'을 주제로 소설과 과학을 다룬다.

문학 작품에서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야 흔하고 흔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흘리는 눈물에 대한 접근은 새롭다.

가장 흔한 경우가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일 것이다.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애처로운 눈물을 최인욱의 소설「개나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열일곱에 이웃마을 농사꾼에게 시집간 연이는 남편이 징용으로 끌려가

해방 후 유골로 돌아오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남편을 보낼 때, 유골로 돌아올 때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애처로운' 눈물을 쏟아낸다.

반대로 사람들은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린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기쁨의 눈물.

강신제의 「젊은 느티나무」에서는 그런 희열과 감격의 눈물이 나온다.

엄마의 재혼으로 오누이 관계가 된 숙희와 현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표현을 할 수 없다.

현규의 정구 동무인 지수가 이들 사이에 끼어들면서

현규는 숙희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야. 우리에게 길이 없지 않어.

외국엘 가든지......"

그는 부르쥔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내 말 알아주겠어, 숙희?"

나는 눈물을 그득 담고 끄덕여 보였다. 내 삶은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중략)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평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p.168~169

 

이렇게 작품 속에 빠져 있을 때 불현듯 과학이 나타난다.

"눈물은 왜 흐르는가"하면서.

그렇게 눈물의 주요 생리적 기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과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 눈꺼풀의 열고 닫기를 원활히 해주는 윤활유 역할

· 결막과 각막을 적셔 각막이 렌즈 기능를 잘하게 함

· 각막의 대사물질을 체외로 내보내는 세척 기능

· 대기 중 산소를 흡수해 산소를 공급함

· 각막에 글루코스(포도당) 영양분 공급

· 눈물 속에 들어 있는 면역 기능 성분과 멸균성분 기능

· 비강에 습기 제공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이 기능들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눈물은 흘리는 경우에 따라서

눈물 속에 들어 있는 성분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프랑스의 과학자 드 마르셍은 눈물에는 마음이 녹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견에 따르면 감동의 눈물은 보통의 눈물보다 덜 짜고, 꽃냄새 같은 미세한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반면 아파서 흘린 눈물이나 분통과 울분을 토하며 쏟아내는 눈물은 더 짜고 냄새도 고약하다고 한다. 인간이 희로애락에 따라 흘리는 눈물은 그 성분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성분에 따른 생리· 심리학적 영향도 다르다.

눈물에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과학적 과제는 외부 자극 및 심리적 스트레스, 반작용적 반응이 어떤 생리적 메커니즘을 따르기에 경우마다 다른 화합물들이 눈물에 섞이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예컨대 울분에 떨면 왜 눈물에 염분이 더 들어가게 되는지, 왜 단백질 성분이 더 많이 배출되는지 등 눈물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눈물에 들어있는 여러 성분들이 우리 몸에서 만들어질 때 어떤 이유로 감정의 변화가 유발되는지 등도 아직까지는 미지의 문제다." ---p.187

 

따라서 눈물은 생리학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접근도 필요한

복합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꿰뚫고 있는 소설가의

통찰이 과학의 걸음보다 더 빠르고 나아가고 있는 지 모른다.

 

"과학적 이해 앞서 많은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놀랄 정도로 정교하게 다루는 작가들의 예리함이 과학자들의 통찰력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p.187~188

 

 

책의 마지막에는 각 장별 주제에 소개된 작품 목록이 실려 있다.

생각보다 많은 작품이 언급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아서

읽으면서도 과학적인 시각보다는 가슴 아픈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설명을 듣듯이

왜 그런지 몰랐던 해석이나 이유를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들으니

작품 속 상황이지만 속이 시원해지고 납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우리 주위 곳곳에 숨어 있는 과학을 찾아

서로 윈윈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 융합'형 과학일 것이고

'모두를 위한 과학'이 될 것이다.

시에서 출발해 문학까지 온 시리즈가 여기서 멈추지 말고

미술, 음악, 춤, 스포츠, 정치, 역사 등등

보다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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