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 특이함에  

궁금증이 생겨 읽어보고 싶어졌었다.

소설은 제목만으로 내용을 상상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경우였다.

아마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1위라는 타이틀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재미나 흥미면으로도 인정은 받은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내용이고,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받아 본 후 가장 먼저 한 것도

그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의미를 찾는 일이었다.

지은이의 말을 형식적으로 빠르게 읽고,

드디어 본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살짝 당황했다.

책이 서간문 형식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 소설읽기를 조금 힘들어하는 편이라

눈에 보일 듯 전후좌우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편지글의 형태라니

상황파악을 하는데 더 힘들게 느껴졌다.

엄청난 집중을 하고 일일이 관계를 파악해가며

힘들게 페이지를 넘기는데

드디어...'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책을 여러 권 낸 작가인 주인공 줄리엣에게 

채널제도 건지섬에 살고 있는 도시 애덤스가

편지를 보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줄리엣이 가지고 있던 찰스 램의 수필 선집이

흘러흘러 건지섬에 살고 있는 도지에게 도달했고,

책표지 안쪽에 적혀 있던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보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편지를 쓴 이유인즉, 도지는 찰스 램의 열렬한 팬인데

건지섬은 독일군 점령하에 있었기에

서점이 하나도 남지 않아 찰스 램의 작품을

구할 수 없어 런던에 살고 있는

줄리엣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저는 찰스 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돼지구이에 관한 글이 압권이지요. 우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독일군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던 돼지구이때문에 탄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찰스 램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찰스 램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실례를 무릅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과 친구가 된 것 같거든요.

폐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도시 애덤스" ---p.19

 

 

책을 출간한 후 여러 도시의 서점을 돌며

강연회를 하느라 지쳐있던 줄리엣은

이 편지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찰스 램이라는 공통분모도 있었지만....

특이한 이름의 독서회와 돼지구이는 또 무슨 상관일까.

줄리엣은 이에 답장을 보내게 되면서

도시, 그리고 독서클럽 회원들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엘리아 수필 선집》과 헤어지는 건 참으로 슬프고 아픈 일이었어요. 물론 같은 책을 두 권 가지고 있었고 책꽂이에 둘 공간도 없었지만, 그 책을 팔 때는 마치 배신자가 된 기분이었죠.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군요. (중략)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몇 가지 질문에 답해주실 수 있나요? 정확히 세 가지 질문이에요. 돼지구이 만찬은 왜 비밀에 부쳐야 했나요? 돼지구이가 어쩌다 북클럽 창단으로 이어졌죠?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한 건데, 대체 감자껍질파이가 무엇이고 그게 왜 북클럽 이름에 들어갔나요?" ---p.20~23

 

나와 같은 독자가 궁금해 했을 내용이

고스란히 주인공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도시는 답장을 통해 줄리엣과 독자가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독일군 점령후 섬내의 돼지는 모두

독일군이 식량으로 가져가고 

남은 돼지들도 함부로 이용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초기에 감시가 조금 느슨했을 때

모저리라는 부인이 비밀리에 키운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했다.  

통금시간이 있었음에도 늦게까지 만찬을 즐기고 돌아가다가

술에 취한 존 부커가 노래를 크게 부르는 바람에

독일군 순찰 대원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바로 그때 엘리자베스가 심호흡을 하더니 앞으로 나섰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키가 작아요. 그래서 총구가 그녀의 눈앞에 늘어서 있었는데도 그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총을 전혀 보지 못한 듯 행동했습니다. 그녀는 순찰대 대장에게 다가가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지요. 통행금지령을 어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건지섬 문학회 모임이 있었어요. 오늘은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독일식 정원》에 대해 토론했는데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죠. 혹시 읽어보셨나요?

우리 중 누구도 감히 그녀를 거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순찰대 대장에겐 그 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사람입니다." ---p.51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임이 결성되었고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진짜 몇 번의 모임을 가지게 되면서

북클럽 회원들은 진짜 책과 독서클럽을 사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 대한 호기심을 좇아 여기까지 단숨에 읽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전개에

눈을 뗄 수 없었고, 글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해

알게된 줄리엣은 이 독서 클럽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

마침 <타임스>의 문학 특별판 원고 청탁을 받게 된

줄리엣은 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해

쓰기로 결심하고 도시에게 도움을 구한다.

도시는 북클럽 회원들도 좋아할 거라고 전하며

북클럽 회원들과도 교류해볼 수 있도록 주선해준다.

 

반면 북클럽 회원들은 북클럽 이름으로 인해

그들의 소중한 북클럽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한다.

줄리엣은 자신의 진심을 전하며 신뢰를 얻게 되고

본격적으로 북클럽 회원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회원들은 각자 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 북클럽에 대한 이야기,

회원들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건지섬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게 된다.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북클럽 회원들과 친해진

줄리엣은 건지섬을 직접 방문하기로 하기로 한다.

 

 

2부에서는 건지섬에서의 줄리엣의 생활과

아예 건지섬에 대한 내용으로 책을 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면서 알게된 건지섬의 역사,

독일군이 점령했을 때의 만행,

그리고 독일군 수용소로 끌려간

포로들의 참혹한 생활 등을 알게 되고

이를 책으로 엮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처음에는 책과 관련된 내용인가 싶었는데

어느 덧 이야기는 건지섬의 과거를 통한

굵직한 역사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렇지만 마냥 묵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과 맥을 같이하는 듯한

러브스토리가 이야기의 다른 흐름을 이끌어간다.

 

통쾌함을 주는 악인과의 갈등,

스미듯 생긴 이성에 대한 설렘과

라이벌의 등장으로 인한 긴장감,

그리고 역경을 이겨낸 숭고한 사랑,

강인한 신념과 함께 한 희생이

굵고 묵직한 역사의 줄기와 함께

어우러져 탄탄한 감동과 잔잔한 재미를 준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서간문 형식이라는 것 외에

이야기의 결정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편지 형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지만

작문의 형식을 빌어 단서를 제공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기도 하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모든 픽션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양

책의 맨 마지막에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이

사랑한 작가, 그리고 사랑한 책들'

리스트를 실려 있다.

책의 끝이 아쉽다면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 작가들과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장을 덮으며 영화가 문득 궁금해졌다.

8월에 개봉이 된다고 하는데,

책의 감동이 그대로 살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넷플릭스를 기웃거려본다.

아직은 커밍순을 예고하는 티저영상만 나온다.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인물들을

어서 빨리 만날 날을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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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2 - 경기도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2
신정일 지음 / 박하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서울을 떠나 한 4년 정도 경기도에서 지낸 적이 있다.

서울과 인접했던 곳이었기에 체감적으로는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는데

주소를 쓸 때 '서울특별시' 대신에 '경기도'로 시작할 때면

내가 밟고 있는 곳이 다른 곳이었구나 느끼곤 했었다.

그렇게 4년을 경기도라는 행정구역명을 사용했지만

그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한 적은 한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너무 오래 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이름이라

질문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고려 현종 9년(1018) 경기는 개성을 둘러싼 주변 구역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랐다. 이때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그때까지 개성부가 관할하던 적현과 기현을 합쳐 경기라고 불렀다. 적현과 기현을 합쳤으므로 적기라고 불러야 옳았겠지만 당시 적현을 다른 말로 경현이라고도 불렀으므로 경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p.24

 

막연히 서울의 주변 지역이라 서울 경(京)을 써서

경기라고 쓰게 되지 않았을까 했는데

유래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고작 4년 살았고, 그것도 한 지역을 벗어나지 않아서

아는 곳보다는 생소한 곳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경기도 북부의 인접 지역에 살았기에

꽤 친숙한 곳이 많다.

아는 듯 모르는 경기도를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2] 경기편을 읽게 되었다.

1편을 읽을 때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서울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2편 역시 익숙하지만

낯선 경기도의 모습을 또다른 볼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책은 지역별로 나눠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남한강에서 남한산성까지

여주, 양평, 광주, 성남, 하남시까지 다룬다.

사는 지역이라기보다는 주로

이동의 통로로 접해왔던 지역이다.

가장 인상적이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은

'남한강의 제일 절경 청심루'이다.

해방 직후에 일어난 폭동으로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그 위치를 알리고 있는 표석만 있다고 한다.

이렇게 저렿게 사라져버린 유산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여주에 있는 청심루는 여주의 으뜸가는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누각으로

《동국여지승람》이나 《택리지》, 《연려실기술》과 같은

옛 기록에도 그 아름다움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가정 이곡, 목은 이색 , 포은 정몽주,

도은 이승은과 조선시대, 서거정, 신용개 등

숱한 문인들이 이 청심루를 찾아 시를 지어서

현판으로 걸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아름다움은 꽤 오래되었나 본다.

또한 하나 뿐인 대들보가 칡으로 된 것도

유명한 것중에 하나라고 한다.

청심루에 올라서면 여주팔경(신륵사의 저녁 종소리,

입암의 아침, 팔대수의 너른 숲, 영릉과 영릉의 맑은 기운,

연탄의 돛단배, 마암의 어선 등불, 파서성의 지나가는 비,

양섬에 내려앉는 기러기)을 거의 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보석같은 유산이 사라져 흔적만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여주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가 눈에 띈다.

 

"여주시 상동에 있는 자안당自安堂 터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철종 때 세도가인 김병기가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자안당이라는 당호를 지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이 집을 빼앗아 여주군청으로 삼았다. 그러자 김병기가 바로 그 옆에 똑같은 집을 짓고서 우안당又安堂이라는 당호를 붙이자 그 소식을 들은 대원군이 "자식을 낳거든 김병기 같은 놈을 낳아야 한다"라고 장탄식을 했다고 한다. 현재 자안당터에는 여주교육지원청이 들어서 있다." ---p.42~43

 

2장은 역사 속 수난의 땅 강화도와 교동도를 다룬다.

강화에는 이름난 산과 절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크고 대표적인 절은 바로 전등사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니

그 역사 또한 길고 길다.

강화도도, 전등사도 몇 번 다녀왔지만

오래 전이라, 그리고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인지

그 느낌과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오래된 시간 만큼 절 구석구석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대웅전 네 귀퉁이 기둥 위에는 발가벗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의 형상이 처마를 떠받치고 있다. 바라보기가 무척 애처롭기도 하지만 해학이 넘쳐나는 이 나녀상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광해군 때 대웅전의 공사를 맡았던 도편사가 절 아랫마을에 사는 주모에게 돈과 집물을 맡겨 두었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주모가 돈과 집물을 가지고 행방을 감추었다. 이에 도편수는 울분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여자와 닮은 나체 형상을 만들어 추녀를 들고 있게 했다. 불경을 듣고 개과천선하도록 하고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악녀를 경고하는 본보기로 삼게 하려는 것이었다." ---p.110

 


다음에 전등사에 다시 한 번 들르게 되면

속죄를 하고 있는 나녀상을 꼭 찾아봐야 겠다.

 

다음 3장은 남북으로 통하던 중요한 길목인

안산, 화성, 평택, 오산을 살펴본다.

산에 둘러싸인 바닷가 고을 안산,

바닷길이 열리는 대부도,

사도세자와 정조능이 있는 화성,

흥선대원군이 포로로 붙잡혀 간 마산포,

산은 낮고 옥야는 평평한 평택,

원효대사 깨달음을 얻은 수도사,

그리고 한강 이남의 최고의 산성인

독산성이 있는 오산까지의 길로 마무리가 된다.

 

4장은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

안성, 이천, 용인, 의왕, 광명까지의 길로 안내한다.

경기도의 최남단은 안성이라고 한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에도 안성을 지나고 나면

아주 멀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성은 '안성맞춤'의 유기가 대표적이지만

남사당패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안성 바우덕이 축제에 간 적이 있다.

사실 바우덕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집에서 적지 않은 거리였지만

꽤 알찬 공연과 구성에 당일로 다녀오면서도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를 이끄는 여장부였다. 안성 바우덕이는 전국에 널리 알려졌었다. 경복궁 중건 때 노역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안성 사당패를 불러 걸판지게 놀이판을 벌였는데, 특히 바우덕이의 노래와 춤, 줄타기는 일품이어서 일꾼들이 넋을 잃고 빈 지게만 지고 다녔다고 한다. 이에 대신들은 요망한 바우덕이를 처형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으나 대원군은 오히려 바우덕이의 가무를 칭찬하고 후하게 상을 내렸다고 전한다.

그런 사연으로 인하여 1910년 안성 남사당패에는 여자인 바우덕이가 꼭두쇠 자리에 앉는 '변혁'이 일어났다. 그 후 안성 바우덕이는 13년간 안성 사당패를 이끌며 악전고투를 하다가 병을 얻어 거리에서 죽었다고 전해온다." ---p.183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할머니 덕분에

나 역시 초등학교 때 전 영세를 받고

데레사라는 세례명도 가지게 되었다.

그즈음 난생 처음으로 성지순례라는 것을

가게 되었는데 버스로 한참을 가서 내린 곳은

낯선 성당이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성당을 둘러보면서 각인이 되었던 이름이

'김대건 신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라는 것은

한참 후에나 인식하게 되었지만

갔을 때의 느낌,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 때 갔던 곳이 바로 김대건 신부의 묘소를 비롯

프랑스 선교사였던 주교 페레올과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 그리고 참수형 후 버려졌던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업고 서울에서부터 150리 길을

달려와 무덤을 만들었던 신도 이민식이 묻혀있는

미리내 성지였고, 미리내 성당이었던 것이다.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고 있는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시흥·용인·양평·화성·안성 일대 초기 천주교 선교 지역 중 하나였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사연이 이채롭다. 신유박해(1801)와 기해박해(1839)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온 천주교 신자들은 교우촌을 형성하여 살았는데, 밤이면 밤마다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미리내가 되었다고 한다." ---p.203

 

5장은 수원 화성에서 서해안까지

수원, 안양, 과천, 부천, 인천, 김포의

너른 지역을 살펴본다.

 

 

수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원 화성'이다.

아쉽게도 오가면서만 봤을 뿐

직접 발로 밟아보지는 못했는데

지척이라면 지척에 두고도 다녀오지 못해

가장 아쉬운 곳이 바로 '수원 화성'이기도 하다.

가장 과학적으로 축조된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지켜야 할 유산이다.

이 책 역시 다른 곳보다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정교하면서 기능적으로 계획된 도시.

그래서 자랑스럽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경복궁 재건 시 국고는 파탄이 날 정도였고

백성은 노역과 공물로 피폐해졌었는데

이렇게 도시 하나를 건설하는데

아무리 과학적으로 만든다해도

경제적인 부담과 백성의 원성이 없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석수 642명, 목수 335명, 미장공 295명 등을 비롯해 총 동원된 사람이 1만 1820명이었다. 그때 사용된 돌덩이가 18만 7600개에 벽돌은 69만 5000장, 목재는 2만 6200주, 철물이 55만 9000군, 기와 53만 장, 돈 87만 3250냥, 곡식은 1만 3300석이 소요되었다.

 

화성 건설에 사용된 경비는 관가에서 염출하거나 백성들에게서 거두지 않고, 금위영과 어영청의 상번군을 10년 정지한 재원과 지방에 있는 예비비로 지출했다. 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일반 백성들이나 승군을 동원하지 않았고, 동원된 인부와 장인들에게는 노임을 주고 일을 시켰다." ---p.238 

 

정조는 설계부터 동원된 사람과 장비, 공사 과정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까지 이렇게 모두《화성성역의궤》에

기록해놓았다고 한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실용적이면서 합리적인 멋진 왕이다.

 

6장은 서울 동쪽의 고을들인

구리, 양주, 남양주, 의정부를 다루고 있고,

7장은 경기 북부의 땅 포천, 연천, 가평을 가본다.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 마지막 8장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 고양과 파주로 마무리가 된다.

 

 

어려서부터 살던 집 근처에 '서오릉'이 있었다.

그래서 학창시절부터 단골로 가던

대표적인 소풍지가 바로 '서오릉'이었다.

12년간 너무 자주 가서 아마도 한동안은

그쪽으로 발길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한참을 지나 다시 찾은 서오릉은 예전의

흥겨웠던 장소가 아니었다.

옛 선인들이 잠들어 있는

그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현장이었으며

훼손되지 않은 숲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자연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지척에 살고 있어

오전에 산책겸 운동을 하러 종종 들른다.

맑은 공기는 잠시 복잡한 생각을 놓고

정신을 쉬게 해준다.

너무 오래 봐와서 소중함을 몰랐던 것중에 하나가

바로 '서오릉'임을 다시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있는 서오릉(사적 제198호)이 있다. 서오릉의 총면적은 55만 3616평으로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 왕실의 왕릉군으로, 5개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오릉은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에 알맞다.

서오릉이 능지로 선택된 것은 세조 3년(1457) 때였다. 세자였던 원자장璋(뒤에 덕종으로 추존됨)이 사망하자 풍수지리상 좋은 능지를 물색하다가 이곳이 추천되자 아버지인 세조가 직접 답사한 뒤 경릉 터로 정했다.

그 뒤 성종 1년(1470) 덕종의 아우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창릉이 들어섰다. 숙종 7년(1681)에는 숙종의 부인 인경왕후의 익릉,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의 쌍릉, 그리고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명릉이 들어섰다. 영조 33년(1757)에 영조의 부인 정성왕후의 홍릉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왕릉이 5기가 되어 '서오릉'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p.363~364

 

이 서오릉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게 된 것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와 주인공이 되었던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의 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다.

 

초라하게 한 구석에 있는 그 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

살아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화려하게 누렸어도

어떻게 살고 어떻게 마감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한다.

산책로 중간쯤에 위치한 그 능을 지날 때면

늘 한 번씩 그 무거운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래서 다른 곳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비록 책으로나마 경기도를 한 바퀴 돌고 나니

한 때 적을 두었고 바로 이웃해 있는 경기도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서울편보다 야화가 더많아 이야기를 따라

곳곳을 누비니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이제 경기도일 뿐이다.

앞으로 전국을 누비고 더 나아가 북한의 곳곳까지

누빌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책으로 고스란히 나올 것이라고 믿으며

다음 행선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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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 - 서울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
신정일 지음 / 박하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나고 자란 서울. 

한 때는 너무 익숙해서 지겹기도 했고,

잠시 벗어났을 때에는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낯섬과 익숙함이 공존했던 곳이었다.

내가 변한 시간 동안 서울도 너무 많이 변해가고 있어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구석 뿐만

서울의 곳곳 전체를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알던, 지키고 싶은 그 모습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두 발로 만나는 우리땅 이야기 1] 서울편은

그래서 더욱 특별한 책이었다.

살아온 시간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내가 정말 서울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더불어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서울의 매력에

물씬 빠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두 발로 만나는 우리땅 이야기] 시리즈는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의 전면 개정판이라고 한다.

그러니 서울은 시작일 뿐 앞으로 펼쳐질

전국 방방곡곡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가 된다.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길위의 인문학'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을

관심있게 봤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신청을 하지 못했었다.

나중에 보니 여러 도서관에서 같은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었고

알고 보니 바로 저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도보답사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저자가

답사와 인문학을 접목시켜 진행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이 책 역시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보기 전에는 지역에 대한 소개와 역사가 감미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읽다 보니 깊이있는 지식은 물론

지역의 유래와 얽힌 이야기들을 옛 문헌 속에서 퍼올려

거의 역사서처럼 방대하게 다루고 있었다.

 

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근거로

옛 문헌과 자료들을 일일이 가져다 넣으면서 신뢰감을 높여주고,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 부분은 쉽게 넘어가지만

이 문헌자료들은 한참을 더듬거리며 읽게 되어

읽는 속도가 더뎌진다.

그럼에도 그렇게 차근차근 짚어나가며 읽다보니

어느새 그 옛날로 돌아가 그 시대의 그 풍경과 생활이 

눈에 생생하게 그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자의 '길위에 인문학' 강의를 시간을 핑계대며

듣지 못한 것이 아쉽게만 했다.

공공도서관 지원사업으로 올해도 진행되고 있으니

시간이 맞는 강좌를 찾아서 올해는 꼭 들어봐야겠다.

 

 

서울에 관한 얘기만 풀어놓는데도

책은 거의 400페이지에 달한다.

500년간의 도읍을 넘어 지금까지도 수도로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에는

어쩜 이 분량도 모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서울은 나라 안에서 국보를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보물 1호도 역시 서울에 있는 동대문으로 더 익숙한 '흥인지문'입니다. 서울을 빛나게 하는 것으로 문화재뿐 아니라 한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를 가도 한강만큼 넓고 아름다우며 큰 강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또한 서울은 북한산·관악산·도봉산·수락산·청계산 등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그 강과 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거나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우리나라의 속담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바다에 가면 산이 그립고, 산에 가면 바다가 그립다'는 인간의 심성 때문에 그럴 겁니다" ---p.10 <머리말 中>

 

 

책은 서울의 이름의 유래를 비롯한 서울의 역사로 시작한다.

'높고 너른 벌판, 큰 마을, 큰 도시'라는 뜻의

'서울'의 이름부터 조선의 도읍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옛 문헌의 촘촘한 증언과 함께 소개한다.

여기까지는 역사이지만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이 가지는 인문학적 의미까지도 전달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 영국의 한 일간지 기자가 자유당 시절 한국에 대해 이런 기사를 썼을 만큼 나라는 어지러웠고, 경제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서울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1960년대를 보내고, 1970년대를 맞았다. 당시 인기를 끈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표제와 같이 서울은 만원이 되었다. 또한 가난하기 이루 말할 데 없던 나라가 외국에서 들여온 차관을 거짓말같이 갚았고, 독재와 민주화의 갈림길에서도 나라는 번영일로를 걸었다. (중략)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기림 시인이 <나의 서울 설계도>라는 산문에서 예언처럼 말한 "국제정국의 사나운 바람이란 바람은 모조리 받아들여야만 하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고, 서울은 지금도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중이다. (중략)

김수영 시인의 산문집에 수록된 1955년 2월 5일 일기에는 서울역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버스 차장과 술 취한 양복쟁이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서울인가? 그러면 서울은 무엇인가? 커다란 집인가? 서로 스스럼없이 싸우는 곳, 가장 체면을 존중하는 듯한 서울은 사실은 체면 같은 것은 전혀 무시하고 있는 곳, 이것이 서울인가?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역시 서울은 알 수 없는 곳이다."

---p.62~65

 

격변의 시대를 그 중심에서 온 몸으로 겪은 서울은

그만큼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문학 속에 그려진 그 다양하고 생생한 모습을

가져다 보여주며 있는 그대로의 서울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이 책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호사라고 할 수 있다.

 

 

서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궁궐일 것이다.

2장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궁궐에 대해 다룬다.

각 궁궐이 위치하게 된 배경과 쓰임새 등

궁궐의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각 건물에 대한 설명 역시 옛 문헌에서 꺼내어 

자세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나 역시 궁궐을 좋아하는 편이라 자주는 못가더라도

기회가 되면 종종 가는 편인데

여러 궁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궁궐은 창덕궁이다.

청량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좋아서

가을이면 꼭 다녀왔는데 요즘은 입장 제한이 생겨서

문 앞에서 돌아선 적이 많아 아쉬웠다.

창덕궁 하면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후원과

부용지라는 연못이 유명한데

정조는 이 부용지를 가장 사랑했던 왕이었다고 한다.

정조는 또한 한 여름에도 냉기가 느껴지는

존덕정과 연경당 뒤쪽 골짜기 사이 언덕 위에 있는 

'청심정'에 올라 '청심제월 淸心霽月'이라는

시를 남겼다고 하는데 잠시 쉬어가며 감상해보자.

 

이 마음과 밤기운 중 누가 더 맑은가

동녘 숲에서 달이 나옴을 때마침 만났으니

청심정의 구석도 모두 대낮 같아서

온 천하가 바로 밝음을 같이하노라

 

 

3장은 숭례문에서 시작해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오는

한양도성 성곽길을 소개한다.

서울을 둘러싼 성을 한양도성(사적 제10호)

또는 서울 성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전 8시에 숭례문이라 일컬어지는 남대문에서 출발해 남산을 오르고, 광희문을 지나 동대문에 이른다. 낙산을 거쳐 혜화동에 이르러 점심을 먹는다. 혜회문을 지나고 숙정문을 지나서 북악산에 오르고 가파른 성곽을 따라 내려가면 창의문에 이른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앞에 두고 경복궁과 청와대를 굽어보면서 인왕산에 올라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경교장을 지나서 숭례문에 이르면 오후 6시쯤이 된다." ---p.119

 

같은 날도 아니고, 코스도 조금 달랐지만

서울 성곽을 정비하여 개방했을 때 다녀온 적이 있었다.

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단도 많고 한참을 걸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와 경교장까지 둘러보았었는데

꽤 괜찮은 코스라고 생각했었다.

조선시대 때도 이처럼 전체 18.6킬로미터인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이를 순성놀이라고 했다고 한다.

길은 많이 달라졌지만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하니 신기하고 재미있다.

 

 

4장은 북한산에서 도봉산까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에 대해 다룬다.

북한산은 등산을 좋아했던 아빠 덕분에

수없이 가족과 함께 올랐던 산이라 정겹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어떤 산을 가봐도

북한산처럼 깊고 짙으며 다채로운 매력을 주는

산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북한산 역시 가깝고 자주 갔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몰랐던 것이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서울의 산천은 아름답다. 다만 곁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서울의 도봉구에서 오래 살았던 정공채 시인이 '서울의 보석'이라는 시에서 "우리 서울에, 희게 빛나는 크나큰 보석들이 있음을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한 것처럼 서울 사람들은 주변에 그처럼 아름다운 산들이 많은데도 그 산들은 오르지 않고 먼 데 있는 산들만 찾아다닌다. (중략)

한양의 바깥 경계에 해당하는 외사산은 남쪽의 관악산과 북쪽의 북한산, 여기에 동쪽의 아차산과 서쪽의 덕양산이 서울을 감싸면서 호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강 북쪽에는 도봉산·청계산·불암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고, 한강 남쪽에는 관악산 자락의 청계산·삼성산 등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어느 곳에서도 보이고, 예로부터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소문난 산이 북한산이다." ---p.183~184

 

언제 올라도, 어느 쪽으로 올라도,

아무리 많이 올라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북한산의 아름다운 매력을 이제는 조금씩 알 것같다.

 

 

5장은 역사가 흐르는 서울의 중심, 한강을 다룬다.

한강의 섬처럼 부침이 심했던 곳이 있을까.

한강처럼 많은 역사의 사건을 품고 있는 곳이 있을까.

그 많은 사연들을 한강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강은 변함없지만 그 안에는

가장 많은 변화와 아픔을 겪었던 그 과정들이 그대로 녹아있다. 

 

 

6장은 서울 도심 속 근대사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서울 근대 유적 답사이다.

미국 문화가 들어오는 중심지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빅토리아식 교회인 정동교회,

아관파천의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한국 최초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절충형으로 지어졌다는 약현성당,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인 한국은행 본관,

조계사 대웅전, 인사동의 태화관,

서울 3대 건축물로 꼽혔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등

근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각 유적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머지 않는 곳에 있으니 여기 소개된 유적을

따라가면서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7장은 서울의 풍속,

8장은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를 만난다.

특히 지명의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지명의 새로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어렸을 적 친하게 지냈던 옆집 친구가

'뚝섬'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이름이 독특해서

아니 그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너무도 컸던지

그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잊은 한참 후까지도

그 지명만큼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커서도 자주 갈 일은 없었지만

2호선 뚝섬역을 지나갈 때면 한 번씩

기억 속에 사라져버렸던 그 친구가 떠오르곤 했었다.

 

"지하철 7호선에 뚝섬역으로 이름이 남아 있는 뚝섬은 섬이라 이름 붙었지만 섬이 아니었다. 성동구 성수동, 광진구 자양동과 구의동 일대에 자리잡은 뚝섬은 옛날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여 있어 섬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뚝섬은 넓게 펼쳐진 평야에 풀과 버들이 무성해 조선 초기부터 나라의 말을 먹이는 목장이나 군대의 열무장 閱武場(임금이 몸소 군대를 사열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에 임금이 군사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행차하면 둑기를 세워 둑섬, 둑도라 불렸는데, 이후 '뚝섬'으로 소리가 바뀌었다.

뚝섬은 '살곶이' 또는 '살곶이벌'이라고도 했는데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 태조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들 방석, 방번 형제를 무참히 죽이고 왕위를 빼앗아간 둘째 아들 태종을 몹시 미워하여 함경도 함흥에 가 있다가, 새끼가 달린 어미 말 한 필만을 끌고 와서 간청하는 박순의 정성에 감동하여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태조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태종이 뚝섬에 나가 태조를 맞이했는데, 태종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오른 태조가 태종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태종이 차일을 치기 위해 세웠던 큰 기둥 뒤로 몸을 피하여 화살은 그 기둥에 꽂혔다. 이에 태조가 "천명이로다"라고 말하면서 이곳을 '살곶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p.376

 

이제는 뚝섬을 지나갈 때 그 친구와 함께

화살을 피해 목숨을 건진 태종도 떠오를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고금에서 지금으로 이어진 그 역사 속에 자리했던 서울, 그 서울이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서울이 내일, 그 내일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이어나갈까." ---p.391

 

서울 어디를 가도 변하지 않은 곳이 없다.

시간이 멈춘 듯 흘러가는 유럽의 고도시들을 보면

서울도 저렇게 옛모습을 간직한 채 변화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지금 남아있는 옛 모습 만이라도

유지하고 보호하면서 조금은 덜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키려는 노력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것같다.

더 변하기 전에 이 책을 들고 찬찬히 찬찬히 둘러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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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홈 카페 - 한번쯤 따라 해보고 싶은 카페 음료 레시피
전예량 지음 / 비타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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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너무 즐겨서 하루에 5~6잔은 기본이고

그 이상으로 마실 때도 있다.

한 때는 커피를 줄여보고자 여러 차로 대체를 해봤지만

역시나 커피를 대체할 음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셨는데

요즘은 거의 라떼를 마신다.

 

요즘 까페의 메뉴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는 것을 보면서

다른 선택을 해볼까 잠시 고민도 해보지만

역시나 마지막의 결정은 라떼로 귀결된다.

실패를 하고 싶지 않아 익숙한 맛을 찾게 되지만

그 선택의 폭이 조금 넓어질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과

다른 메뉴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무허가 홈 카페]라는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눈이 번쩍 뜨였던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저자는 그야말로 온전히 취미로

전국 카페의 다양한 음료의 맛을 찾아다니며

집에서 직접 구현해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소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현재도 10만 팔로워를 자랑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정신없이 바빴어요. 직업 특성상 여유를

즐길 틈이 많지 않았거든요. 여유는 사치라고 여겨질 만큼 몸도 마음도

메말라갔던 거 같아요.

-중략-

휴일이 생기면 전국에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아마 수백 곳을 다녔던 것 같아요.

유명하다는 곳부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은 카페까지 찾아다니며

그곳의 음료와 디저트를 먹어보았죠.

하루에 커피만 4잔, 5잔 마셨던 날도 있었어요.

같은 메뉴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더라고요.

그래도 상관없이 다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한 번은 '나도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봐두었던 에스프레소 기계도 선물 받았던 참이었어요.

한 잔, 두 잔...

도전해보는 커핏잔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무참히 실패한 적도, 너무나 황홀할 정도로 맛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이렇게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음료를 만드는 기술도 안정을 찾게 되었고요.

다른 지역의 카페를 다녀와 그곳에서 맛보았던 음료를 따라 만들어보기도 하고,

이를 응용해 색다른 메뉴를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p.5~6 <프롤로그> 中

 

책은 핸디북 사이즈로 깔끔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책판형보다 살짝 작은 북커버는

감각적이고 예쁜 음료들의 사진들과 잘 조화를 이룬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무허가 홈 카페를 시작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사항들부터 먼저 안내한다.

홈 카페에서 자주 활용되는 제품들,

가정용 머신으로 진한 에스프로소 추출하는 방법,

에스프레소 머신 없이 에스프레소 만드는 방법,

우유 거품을 쫀쫀하게 내는 법,

휘핑기 없이 비엔나 크림 만드는 방법.

 

 

전문가나 상용이 아니기때문에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재료를 구해서

비슷하게 흉내내볼 수 있는

노하우나 팁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꼭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지 않아도

동네 슈퍼에만 가면 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로도 맛과 모양을 비슷하게 낼 수 있는 것이다.

약간의 조합이나 비율이 결정적인데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저자만의 비법을

아낌없이 공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작은 '커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늘 집에서 이용하고 있던

네스까페 크레마 아메리카노 미니에 우유를 섞어마시는

간이 라떼와 비슷한 <마블링 라떼>.

보기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은 것 같다.

 저자는 '에스프레소'를 사용했지만 콜드브루로도 가능하다.

단지 얼음과 물만 있으면.

어떻게 하면 예쁜 마블링을 만들 수 있는지,

콜드브루를 사용할 경우 양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와 같은

실질적인 팁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알려준다.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하는 감탄을 자아냈던 <큐브 라떼>.

드립커피를 얼린 후 우유를 부어서 녹여 먹는

그야말로 냉장고만 있다면 초간단으로 만들 수 있는

비주얼 만큼은 고급 까페의 커피 부럽지 않은 메뉴다.

올 여름 베스트 메뉴로 찜.

 

 

민트시럽과 다크초콜릿, 코코아파우더와 우유로 만드는

<모카 민트>는 색감 뿐만 아니라

컵 주위를 흐르게 하는 자연스러운 초콜릿이

멋스러우면서도 입맛을 돋운다.

역시나 꼭 만들어보고 싶은 위시리스트다.

 

 

두 번째 장은 맛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먹는

비주얼 메뉴들을 소개한다.

커피를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메뉴 일순위는

<리얼 딸기 우유>

"생크림과 딸기 조각을 같이 떠먹다가 섞으면 중간중간 씹히는

생딸기의 식감이 기절할 정도로 맛있어요. 두 잔도 거뜬하답니다"

라는 설명이 더더욱 맛을 궁금하게 한다.

생딸기로 딸기콩포트만 만들면 과정은 간단하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색감의 <몰디브 에이드>.

모히토가 먹고 싶은데 애플민트가 없어 고민하다가

민트시럽에 100% 라임즙을 섞어 시도해봤는데

영롱한 에머랄드빛 색감과 맛이 그만이었다고 한다.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메뉴중의 하나.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저자의 특성상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맛의 조합이 종종 눈에 띈다.

<토커리 주스>의 토마토와 치커리의 조합도 그렇다.

토마토의 식감과 치커리의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하는데

상상이 되면서도 상상하기 힘든 그 맛이 궁금해진다.

 

 

달콤 쌉쌀한 초콜릿 크림과 쑥의 조화가 환상이라는

<초코나무 쑥>도 의외의 맛의 조합이다.

시중에 파는 쑥차 가루를 이용했다고 하니

재료의 준비와 만드는 과정도 어렵지 않다.

조화를 이룬 그 맛이 상상하기 쉽지 않은 메뉴다.

꼭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씁쓸한 초콜릿과 달콤한 마시멜로라면

초코파이의 맛이 연상된다.

<다중인격 코코아>

과연 그 맛의 느낌과 비슷할까?

여러가지 얼굴 표정을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는 취미로 하다보니 형식과 맛의 조합을

좀더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쁜 그릇에 담는 것, 예쁜 모양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더욱 시너지를 냈던 것 같다.

푹 쉬고싶은 휴일 오후,

누군가에게 대접하지 않더라도

나만을 위한 맛깔스런 음료 한 잔을 만드노라면

그 과정에서 이미 힐링이 될 것 같다.

이미 시작된 폭염의 날씨.

이런 더운 날씨에는 어떤 음료가 어울릴까?

고민하는 것부터 힐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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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T로 낫지 않는 통증은 없다 - 마음 고쳐 몸 고치는 한의사 최인원의
최인원 지음 / 몸맘얼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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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에 대해서는 서점에서

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었다.

심리치료기법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 관련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잊혀졌었다.

 

 

그러다가 국내 EFT 전문가이자 한의사인 저자가

[EFT로 낫지 않는 통증은 없다]를 새로 출간했다고 해서

이번에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년 동안 EFT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이미 4권의 책을

저술한 바 있는데 이 책을 다시 낸 이유는

환자들이 갖고 있는 EFT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건 그런데 다른 병도 정말 나을 수 있냐고요?"

나는 마지못해 "당연히 낫지"라고 답하며 대화를 끝냈지만, 이 질문은 계속 내 마음속에 내내 남았다. 왜냐하면 동생은 EFT 워크숍을 3단계까지 총 6일 동안 나에게 배운 데다 병원에서 불치로 진단받은 허리 통증까지 EFT로 고쳤기 때문에 당연히 이젠 어떤 병이든 EFT로 나을 수 있다고 믿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 동생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다음의 몇 가지가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EFT의 효과를 완전히 믿기에는 아직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

-사람들은 마음이 몸의 병을 만들고 고친다는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사람들은 마음과 몸 또는 의식과 물질의 관계를 증명해주는 과학적 증거들을 모른다.

 

이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이 EFT를 경험했지만, 아직 EFT의 원리에 대한 패러다임이 없다.""

---p13~14

 

저자의 기출간 저서 [5분의 기적 EFT]에서

EFT의 기본적인 원리와 기법을 소개했다면

이번 저서에서는 그 효과를 알지만

완전히 신임하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서

생생한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EFT의 원리를

증명해보이고자 하는 것이었다.

왜 치료가 되는가, 왜 병이 낫는가에 대한

과정의 패러다임을 사례와 함께 설명해줌으로써

우연히 혹은 신통력으로 나은 것이 아니라

실제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치료된 것임으로

믿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EFT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서문에 EFT의 역사와 기본적인 EFT의 정의에 대한 안내를 해준다.

 

"EFT는 해결하고 싶은 증상을 말로 표현하면서 경락의 경혈점을 두드려 거의 대부분의 심리적인 문제와 육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법이다." ---p.27

 

 

저자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

EFT에 관한 전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가장 EFT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고,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의 

치료 프로세스를 이해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1. 경락이 막히면 부정적 감정이 생긴다.

2. 부정적 감정이 신체화되어 육체 증상을 일으킨다.

3. 부정적 사건의 기억이 쌓이면 부정적 신념이나 태도를 형성한다.

4. 부정적 감정이 제거되면 신념과 태도가 바뀐다.

5. 경락이 잘 소통되면 기가 잘 돌아 신체 증상이 낫는다.

6. 생각이나 말은 치료의 핵심 요소다.

7. EFT는 어떤 증상에든 적용 가능하다.

8. 치료의 관건은 무의식이다.

 

저자는 서문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확언과 EFT는 무의식을 탐색하고 변화시키는 가장 탁월한 도구이다. 지금은 이 말이 낯설어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무렵에는 독자분들도 수긍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무의식이 변화될 때 내 몸은 변화된다." ---p.32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나도 낯설고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무의식과 통증, 병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은 상식처럼 되어있다.

스트레스가 마음의 병이니 결국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일반적인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미 생긴 병을 약물이나 의학이 아닌 

무의식을 변화시켜 치료한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이런 의문과 의심때문에 저자는 사례 중심으로

이 책을 저술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거의 2/3가 되는 시점까지는

사례와 EFT의 단계적 치료 과정,

그리고 마음의 힘의 근거와 이를 보여주는 국내외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채우고 있다.

 

처음에는 설마하는 의심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수많은 사례들을 접하면서 조금씩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주술이 아니라 마음이 어떻게 몸의 병을 유발하기도 하고

낫게도 하는지 촘촘한 단계적 접근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서서히 그 원리가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5장에 도달해서야 비로서 EFT 기본 과정 익히기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주관적인 고통지수를 측정하면서

치료하고 싶은 문제 확인을 한다.  

다음으로 가슴압통점을 문지르거나 손날 두드리기를 하면서

"나는 비록 _______________ 하지만 마음속 깊이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합니다."라는 수용확언을 한다.

 

장면을 생생히 떠올려 무의식 속에 패턴화된 감정과 신념을

수용확언을 통해 받아들이면서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이를 영화처럼 생생하게 떠올려 적용한다고 해서

'영화관 기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경헐을 두드리면서 감정과 신념을 삭제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통증도 줄어들고 병도 낫는다는 것이다.

유전에 의한 병이 아니고서는

마음에 의한, 기억에 의한 병은 이처럼

EFT를 통해서 완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책에서 일러주는 방법대로 시도해봤다.

정식으로 한 것이 아니라 효과를 확연하게는 못 느끼겠지만

두드리는 동작으로 회상을 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것도

훨씬 수월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통증에 얽혀있는 기억이 고통스러울수록

상기시켰을 때 감당할 수 있는 폭이 다르다고 한다.

너무 큰 고통은 혼자 있을 때 터져 나오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코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게 기억을 끄집어 내고

주관적인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두드리고, 수용하고 확언하는 과정을 통해서

고통이 줄어들면서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는 마음으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죄책감으로 혹은,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 위해서

또는 그 방법밖에 없어서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고

통증을 택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더더욱 심리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통증을 고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환자의 진짜 심리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을 책에서 소개해주고 있다.

 

 

저자가 처음 EFT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의학'이라는 학문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한다.

 

"두통이나 발목 뻠이나 요통 등은 임상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면 침이나 부항이나 뜸으로 상당히 치료가 잘 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렇게 안심하고 있을라 치면 꼭 치료되지 않는 환자들이 나타났다. 발목 삔 지 몇달이나 심지어 몇 년이 지났는데도 낫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치료하지 않고 자연회복력만으로도 벌써 나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임상을 하면 할수록 이런 병은 더욱 많아졌다. 쉬운 병이 다시 쉽지 않게 되면서 나는 어찌할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많았다. 교과서 상에서나 나의 경험상으로나 정말 심각한 병인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나아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각했던 디스크나 좌골신경통이 침과 약 몇 번에 나아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았다고 해서 내가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나의 예측을 벗어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뭔가가 작용했고, 다시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너무 잘 나아도 나는 혼란에 빠질수밖에 없었다.

-중략-

쉬운 병인데 낫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과도한 긴장이나 두려움이나 우울감이나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에 빠져 있었고 나의 설명이나 지시를 불신하거나 거부하거나 의심했다." ---p.326~327

 

그는 핵심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연히 알게 된 'EFT'를 통해서 해법을 찾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몸의 통증을 일으키는 고통스런 기억이 아니더라도

현대인들은 불안은 늘 안고 산다.

그 불안은 통증을 유발할 것이고,

그 통증은 다시 새로운 불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치유되지 않는 마음의 병은 없다는 것,

마음으로 모두 고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두드리면서 믿을 가지고 불안을 다독이니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는

나의 선택인 것이고, 결국 나는 믿는 편을 선택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제는 EFT를 다시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저자의 다른 책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책부터 탐독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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