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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길이 있단다 - 민족과 교육을 사랑한 으뜸 기업가 대산 신용호 ㅣ 샘터 솔방울 인물 13
김해등 지음, 김진화 그림 / 샘터사 / 2013년 8월
평점 :
우리 사회를 위해 큰 일을 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위인을 찾아 소개하는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에 대한 믿음때문에 신간이 나오면 언제나 설레고 기대를 하게 된다. 전형필, 손보기, 올리버 R. 에비슨이 그랬다. 인물에 대한 감동 뿐만 아니라 흡인력 있는 글과 편집은 이야기 속으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며, 한 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종이나 제본은 책의 품격을 높여주면서 인물을 더 무게감을 더해준다. 그런데 이 시리즈의 신간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한껏 기대를 하고 과연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하면서 책을 만나게 되었다.
'민족과 교육을 사랑한 으뜸 기업가 대산 신용호 회장'의 이야기였다. 책의 제목은 [책에는 길이 있단다]. 우리나라 최대의 서점 '교보문고'의 설립자 답게 신용호 회장을 가장 잘 표현한 한마디는 기업도 보험도 아닌 바로 '책'이었다. 책에 대한 관심과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신용호 회장이 걸어온 길과 정신은 누구보다도 공감이 갔고, 더 깊은 감동의 여운을 주었다.
사실 신용호 회장에 대해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지만 근래들어 종종 접하게 되었다. 아니, 혜택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용호 회장의 뜻을 받들어 설립된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두 번 농촌체험을 다녀왔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 있었나? 들어보지는 못했는데...'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교보생명'의 창립자였던 것이다. 의식있는 기업가구나 정도가 당시에 알게된 신용호 회장의 전부였다.
그것이 벌써 5~6년 전이었으니 한참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48분 기적의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신용호 회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책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로 잠깐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윤을 마다하고 책에 대한 그의 신념을 실천했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래서 기회가 닿으면 신용호 회장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히 접하게 된 신용호 회장을 불과 두어 달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반갑고 신기한 마음도 잠시 마음 한 편으로는 훌륭한 분이기는 하지만 책 한 권을 엮을 만큼의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하며 책을 받자 마자 묵직한 표지를 넘기고는 서둘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일러스트가 신용호 회장의 사진으로 된 콜라주 기법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생략이 많이 된 장난스런 그림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사진이 조화를 이루며 사실적이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 낸다. 마치 그 옛날의 신용호 회장을 직접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준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한복판에 대형 서점을 열고 누구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했던 신용호 회장이 돈이 없어 책을 훔친 아이를 감싸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매정하게 대했던 직원에게 자신의 신념이 담긴 지침을 내리면서 가난해서 제대로 배우기 어려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 떠올리게 된다.
1917년 8월 11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신용호 회장은 부친의 항일 운동으로 인해 집안이 가난하기도 하였지만, 입학 전 걸린 폐병으로 인해 학교도 못간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죽음의 문턱을 들락거리던 신용호 회장은 어머니의 지극한 간호와 정신력으로 치사율 높았던 폐병을 이겨내게 된다.
학교에 갈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였다. 신학문의 열풍과 학교를 통해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던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라 입학할 나이가 한참 지난 신용호 회장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신용호 회장이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괴로워할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신 분이 바로 신용호 회장의 어머니였다. 그의 가슴에 꿈의 씨앗을 심어주셨고, 신 회장은 독서로 성공했던 링컨을 롤모델 삼아 독서와 독학으로 그 씨앗의 싹을 키워 나갔다.
독학으로 자기 또래의 그것도 중상위권 실력을 갖추게 된 신용호 회장은 병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천 일 독서'를 시작하게 된다. 말이 독학이고, 천일독서이지 일을 하면서 그것도 뚜렷히 눈에 보이는 목표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는지 그 의지력이 놀랍기만 했다.
학문에 대한 문리가 트이게 되니 세상 돌아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상깊게 읽었던 '카네기 전기'를 통해 그는 카네기같은 사업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 현재의 서울인 경성으로 와서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곧 일본인들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경성에서 만난 친척뻘 되는 아저씨인 '신갑범'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도움으로 만주로 건너가 꿈을 펼칠 기회를 찾는다. 그곳에서 그는 끊임없는 연구와 부지런함, 그리고 뛰어난 사업적 수완을 발휘해 그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방법으로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말이 쉬워 성공이지 일본인 회사에서 시기와 질투, 냉대를 받으며 성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발로 뛰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는 부지런함과 치밀함 그리고 마음 먹은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 덕분이었다.
작은 성공에 취해 있는 그를 채찍질한 것은 바로 신갑범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중국 땅으로 발을 옮긴다. 그곳에서도 신용호 회장은 가장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예리한 눈으로 시장을 파악하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때를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어김없이 그 기회를 낚아챈다. 아니,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찾는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간다!"
그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되새기던 이 문구는 책에서 보고 마음에 새긴 그의 좌우명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 좌우명처럼 현실이 막힐 때마다 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갔다. 학교도 나오지 못한 그가 독학이라는 새로운 길로 지혜를 얻은 것도, 경성이 아닌 만주에서 그의 길을 찾은 것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도매상을 운영해서 성공을 거둔 것도 모두 그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중국땅에서 홀로 시작하는 것 역시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그가 새롭게 만들어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중국에서도 해내고 만다. 철저한 시장 파악을 통해 세운 곡물회사는 직원 5명으로 출발해 20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성장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에게 성공의 꿀맛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숱한 고비도 있었으나 그는 특유의 철저한 준비와 배포로 위기를 넘기며 마침내 직원 100명이 훌쩍 넘는 베이징 제일의 곡물 회사로 키워낸다.
그렇지만 격동하는 역사의 한 중간에 있었던 그에게도 역사의 소용돌이는 피해가지 않았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소란스럽던 중국은 외국인들의 재산을 동결해버렸고, 신용호 회장은 모든 재산을 두고 귀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돈마저 귀국을 준비하던 어려운 동포들을 위해 모두 써버렸다.
그의 이러한 행동의 배경에는 나라의 독립과 약자의 권익을 위해 싸웠던 아버지와 형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만주로 떠날 때 도움을 주었던 신갑범의 당부가 있었다.
"내 말 한마디만 명심하게. 독립운동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네. 자네처럼 사업가가 되어서 조선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조선인의 자부심과 희망이 되어 주는 것도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하네. 스스로 일으킨 사업으로 사업가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p.60~61
이후 신용호 회장은 이를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해나갔다. 또한 독립운동가이자 유명한 시인이었던 이육사를 만나면서 그의 이러한 생각은 더욱 단단해졌다.
"신 군, 일본이 조선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짓이 뭔 줄 아는가?
총칼부터 들이댄 게 아니라네. 일본은 조선의 상권부터 먼저 빼앗아갔네.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은 진기하고 새로운 물건을 조선에 들여와 상점을 열었다네. 코딱지만 한 조선 상점들이 버텨 내질 못했지. 일본 상점들은 순식간에 조선의 상권을 쓰러뜨리고 재물을 끌어모았지. 조선은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야." ---p.84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빈손이 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절망에 빠져 허우적되고 있을 때 그는 또다시 철저한 분석과 시장조사를 통해 힘을 내어 직물회사를 세워 또다시 성공을 맛봤다. 그러나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을 치루면서 기업가라는 이유하나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가 하면, 대출금의 갑작스런 중단으로 사업이 엎어지면서 또다시 그는 큰 시련을 맛봐야했다.
어떻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허탈하고, 힘들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외친다.
"시련은 절대 공짜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는 또다시 일어선다.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칭할 정도로 온 가족의 재산을 팔아서라도 가르치려는 교육열이 팽배해 있던 시절, 그는 세계 어디에도 없던 '교육보험'을 만든다. 개척이라는 말과 꼭 어울리게 수많은 시행착오와 편견, 실패를 딛고 일어서며 당당히 그의 좌우명대로 그는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1958년 8월 7일 창립한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는 창립 9년 만에 1,500명의 직원을 둔 거대한 회사로 성장했으며, 1983년에는 보험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1979년, 신용호 회장은 처음 창립 당시 직원들에게 '25년 안에 서울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사옥을 짓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킨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종로 한복판에 최첨단의 22층 빌딩을 우뚝 세운 것이다.
신용호 회장의 기업가로서의 신념은 그 이후부터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종로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형서점'을 만든 것이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1981년 6월 1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를 연 것이다. 678평이나 되는 서점에 60만 권의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서점에서 신 회장은 이익을 내기 보다는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마음대로 책을 볼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잘 팔리는 불량 서적을 전량 철수시키고,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분야별로 고르게 비치해놓도록 지시한 것만 봐도 이윤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듯 하다. 처음보다 비좁아진 매장의 공사를 위해 1991년 1년간 문을 닫을 때에도 직원의 월급은 그대로 지불하게 했으며, 오히려 해외연수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게하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있어 '교보문고'는 '책'이라는 상품을 팔기 위한 공간이 아닌,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었다.
책을 좀더 가깝고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므로써 사회가 책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되고, 이렇게 성장한 인재가 다시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그는 사회와 나라에 책을 통한 꿈의 씨앗을 심고자 했던 것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를 들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책 속에서 길을 찾았던 신용호 회장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언니들의 손을 잡고 교보문고를 자주 방문했었다. 처음에는 숨막히게 높은 건물에 압도되어 놀랐고, 다음에는 서점에 펼쳐진 수많은 책들의 향연에 다시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책 한 권을 골라 사고서는 읽고 또 읽으며 책과 가까워졌었다.
그때 입구에 붙어 있던 노벨상 수상자들과 아직 채워지지 않았던 빈 자리, 이를 보면서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작은 몸짓이었지만 커다란 희망으로 다가왔던 기억. 교보문고는 내게 그런 꿈의 장소였다.
두 딸의 엄마가 된 지금, 나는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보문고를 찾는다. 두 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지금의 교보문고는 내 어릴 적 들렀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많은 책들에 놀라며 뛰어다닌다. 그리고는 각각의 취향에 맞는 책 한 두 권씩을 골라오며 뿌듯해 한다. 이렇게 신용호 회장이 사회에 건넨 책의 향기는 대를 이어 퍼져 나간다. 이제는 강남점을 비롯 전국에 매장이 생기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뜻이 전달되고 있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만들어가며 기업을 세우고, 그 기업의 수익을 아름답게 사용할 줄 알았던 대산 신용호 회장, 그는 진정 아름다운 으뜸 기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