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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영화관에 가다 ㅣ 탐 철학 소설 6
조광제 지음 / 탐 / 2013년 8월
평점 :
'탐 철학 소설 시리즈'는 얼마 전에 읽은 [장자, 사기를 당하다]로 처음 접했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에 끌려 보았었는데, 추상적인 철학의 개념들을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어렵지 않게 철학에 다가갈 수 있었게 해주고, 모호한 개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용만 철학적일 뿐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제대로 갖춰진 소설의 구조는 긴장감과 흥미를 더해준다. 공자, 퇴계, 루소 등 이미 5권이 출시가 되었고, 여섯 번째로 나온 책이 바로 [플라톤, 영화관에 가다]이다.
[장자, 사기를 당하다]에서는 동양을 대표하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데 모여 각자 주장한 사상에 맞게 생활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장자'의 사상을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현대화 된 동양 철학의 주인공들이 한 곳에 모인다는 상상이 재미있고도 신선했었다.
그렇다면, [플라톤, 영화관에 가다]는 서양 철학의 굵은 핵심 줄기인 '플라톤'의 사상을 과연 어떻게 전달하고 있을까? 몹시 궁금했다. 플라톤이 영화관에 간다고 하니 마찬가지로 현대가 배경인가본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될까?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플라톤의 모습은 몸은 현재에 있으나, 과거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트는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서양 철학사에 플라톤이 끼친 영향을 막대하다. 평생 철학을 연구하면서 집필한 수많은 저서에서 주장한 방대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다 다룰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어떤 주장을 어떤 배경에서 펼치게 되었는 가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SF 영화와 같은 흥미로운 스토리로 살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특이하게도 '프롤로그'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성헌'은 친구이자 스승같았던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는다. 현재는 완쾌가 된 상태이지만 엄마마저 우울증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성헌은 '죽음'과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죽음 후에 세상은 어떤 것인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진짜 세상인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이제 막 세상으로 시선이 뻗어나가기 시작한 중학생 소년에게 이러한 철학적인 질문들은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내가 보는 세상은 진짜일까?'라는 수수께끼같은 메일 한 통이 성헌 앞으로 전달된다. 성헌이 알고 싶어했던 그 질문,,,어쩌면 그 답에 근접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성헌은 무심코 삭제했던 메일을 복원하여 찬찬히 들여다 본다.
발신자는 '나골'이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사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
인생에 있어서 더 없이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임.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까지 철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면 누구나 응모 가능.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심사하여 단 한 명을 선택함.
*주의 :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음. ---p.9~10
부작용에 주춤할 수도 있지만, 성헌은 곧 자신이 줄곧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험자 지원을 하여 나골 선생을 만나게 된다.
나골 선생은 자신의 연구실인 '나골리스'에서 가상현실을 연구하여 성공한 후 마지막으로 최종 점검을 위해 지원자를 모집한 것이었다. 가상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처리하는 약품 때문에 가상 현실에서 빠져 나오면 메스껍고, 체력이 급격이 저하되며, 너무도 실감나는 가상 현실로 인해 현실에서도 가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기도 한다. 처음 나골 선생이 추신에 붙였던 바로 그 부작용이었다.
그럼에도 성헌은 체험을 강행하기로 하고, 결국 고대 아테네로 들어가 '플라톤'을 만나게 된다. 나골 선생도 함께 동행하면서 플라톤의 사상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며, 때로는 사상 흐름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이데아를 두고는 의견 대립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나골과 성헌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있던 20대 청년 시절부터 80세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주요한 시기에 직접 찾아가 그의 학문의 방향과 배경, 그리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상의 실체를 직접 들어본다.
더 재미있는 것은 플라톤이 과거 아테네로부터 현재로 날아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분명 다른 환경에서 그의 생각은 과연 달라질 것인가. 순간적이며, 반복되지 않는 것이 현실 세계인데 '반복'해서 나타나는 '영화'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의 경험과 생각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거듭거듭 생각을 해서 제 나름대로 이거야말로 진리라고 여겨 이데아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또 한번 신묘한 경험을 하고 나니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플라톤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간단히 말하며, 세상의 일이란 것이 한 번 있다가 없어지면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는 제 생각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 오래된 일조차 이렇게 꼭 같이 반복될 수 있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의 일이 그렇게 허망한 것만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태어나 저 세상으로 간다면, 여기에서의 신묘한 경험을 살려 전혀 다른 강의를 하고 전혀 다른 책을 쓰게 될 것 같군요."
다소 침울하기까지 한 플라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침묵하고 있던 나골 선생이 입을 열었다.
"한 번 있었던 세상의 일이 꼭 같이 반복된다고 해서 그것들이 허망하지 않다는 법은 없지요.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결국 죽음으로 마감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허무한 것일 테지요. 플라톤 선생의 말처럼 이 세상 역시 허무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삶을 동경하게 마련이고요. 영원을 향한 열망을 플라톤 선생처럼 위대하게 철학적으로 구현해 낸 인물은 결코 없었습니다. 설사 선생을 공격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선생님 워낙 위대한 탓일 것입니다. 아무튼 플라톤 선생, 덕분에 아주 즐거운 여행을 했습니다. 선생의 철학 사상이 어떤 것인지 실감나게 알 게 된 것이 무엇보다 보람이군요. 과연 선생은 불세출의 위대한 철학자이십니다. 자, 이제야말로 영원히 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p.193~194
플라톤 이론의 한계점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보여줌으로써 설명하는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놀랍다. 또한 동굴의 그림자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지는 현실의 세계는 허상이라고 주장한 플라톤의 철학을 가상 현실을 배경으로 접한다는 것 자체가 플라톤 철학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와 의미가 모두 포함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다시금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플라톤의 모든 사상을 접할 수는 없지만 이제 막 철학을 접하기 시작한 청소년들에게는 플라톤을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의 뒷부분 부록에서는 플라톤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으며, 책의 내용 중 꼭 알아야 하는 부분에 대한 간단한 확인 문제도 풀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