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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완성하는 미술관 - 10대의 정체성, 소통법, 진로, 가치관을 찾아가는 미술 에세이 ㅣ 사고뭉치 6
공주형 지음 / 탐 / 2013년 12월
평점 :
청소년의 시기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해도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 혼란의 시기를 겪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였다.
사실 불혹을 넘긴 지금도 '나'를 아직도 모른다. 단지,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것일 뿐 성장기 청소년과 다를 바 없이 아직도 나에 대한 탐색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하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 너무 많은 쥐려는 욕심에 오히려 하나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아득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생각을 몸이 따라가지 못할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마음보다 몸이 앞서는 그 싱싱한 젊음이 가끔은 부럽기 시작했다.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을 점점 줄어들게 한다. 그래서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수 있는 그 생기가, 용기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10대'는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 수평에서 바라 보게 될 '10대'를 생각하면....여전히 다시 그 혼란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성장할 때는 특히나 '나'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방법도 몰랐고, 필요성도 몰랐다.
'나'가 올라올 때마다 나라와 민족, 가족을 생각하며 꾹꾹 눌러 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개인'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이하면서 '나'를 고찰할 기회도, 방법도 몰랐던 그 때의 혼란은
지금 청소년이 겪는 혼란 못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 들어 청소년 대상의 철학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다. 다양한 테마와 형식으로 풀어 쓴 그 책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바로 '나'에 대한 탐색이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을 때 건강한 성장을 할 수 있으며, 세상과의 소통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성장과 더불어 정신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충분한 '나'에 대한 고찰은 그만큼 살의 든든한 기둥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황금같은 성장의 기회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이 지나 온 시간을 돌아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참 많이 부러운 것이다.
[나를 완성하는 미술관]에서는 예술 작품을 통해서 '나', '너', '우리' 그리고 '세상'에 대해 탐색을 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표현 행위 중에 하나인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이 책은 '자아 성장'의 관점으로 예술 작품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챕터의 구성 역시 '나'에서 출발해 '세상'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점진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성장 과정에 발맞추어 작품들을 소개하고 해석하고 있다.
1장은 '나'에서 출발한다. '자아 정체성 찾기 : 나를 사랑하다'
'자아'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환경의 역할에 따라 다르게 정의내릴 수 있다. 그 수없는 역할 중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저자는 예술가들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든 것이 바로 화가 자신이 스스로를 그린 '자화상'이다. 저자는 타인이 그린 모습과 스스로가 그린 모습 혹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의 비교를 통해서 진정한 '나'를 찾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우리에게는 낯선 프랑스의 모델이자 화가였던 '수잔 발라동'의 각기 다른 관점으로 화폭에 담긴 모습은 주관적인 시각에 따라 얼마나 타인이 다르게 규정되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칫 그 기준에 맞추게 될 때 흔들리게 될 '자아'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누구의 관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첫번째 출발점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주제에 따라 소개되는 작품과 작가는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생소한 작품과 작가도 많다. 주제를 떠나서 낯선 작품과 맞닥뜨린 즐거움, 그리고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긴장감을 가지고 유려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에 감탄을 하면서 한작품 한작품 만나다 보니 어느새 '나'에 대한 탐구를 끝낸다.
2장은 '소통법 발견하기 : 너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작품을 만난다.
"진짜 나의 모습을 안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에요.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모습에 깜짝 놀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내 옆에 있는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웃과 함께 나눈다면 충격을 받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을 거예요.
예술가들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마음과 생각을 나누면서 어떤 사람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는지 예술가들의 소통법, 소통 과정을 살짝 엿볼까요?"
--- p.67 <2장 서문>
2장은 이렇듯 가족, 공유, 소통, 이해, 공감, 신뢰, 갈등, 나눔의 키워드로 '너'와 진정한 소통을 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이러한 주제를 살펴 보는데 꼭 미술 작품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유'는 '프랭크 워렌'의 비밀 고백 프로젝트 '포스트시크릿'로 안내한다. 엽서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고 우표를 붙여서 보내는 형식의 이 프로젝트는 온라인 사이트가 생길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를 외칠 때의 후련함을, 그것을 들어 줄 대상에 대한 갈망이 큰 호응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예술을 통해서 '너'를 만나는 법을 살펴 본다.
3장은 '함께 성장하기 :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까?'는 마음을 열고 더불어 성장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디즈니를 통해서 '진로 탐색'을 하고,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호언했던 세잔을 통해 집념을 배운다.
'성공'에서는 현대 사회의 충격적인 인간상을 보여 주는 작품을 통해서 '함께 하는 승리'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스컬피라고 불리는 재료로 민머리의 공허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승자나 패자나 모두 지치고 허탈한 모습은 '성공'의 열망에 사로 잡힌 현대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4장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가치관 완성하기 :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어야 할까?'
가치 창조, 과학 기술로 살펴보는 가치 중립, 그리고 다양성을 넘어서 '생명 존중'까지 생각해본다.
그 중에서 가장 무게가 느껴지는 주제는 '생명 존중'이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전쟁'을 향해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독일의 여성 판화가 '케테 콜비츠'는 작품으로 절규한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이들이 더이상 고통 받아서는 안된다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생전 마지막 작품은 엄마로서, 예술가로서 비장하게 외친 마지막 외침이었다.
'나'로 시작했던 고민이 책의 막바지에 이르면 '우리'로 시야가 확대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정체성'에서 머물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으로 향해가는 것이야 말로 건강한 성장임으로 책은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그 성장의 과정을 멋진 작품들과 정갈한 글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