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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대가 -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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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버는 기계, 기업들은 경쟁을 좋아할까. 그럴 리가. 특허와 로비로, 치킨게임과 같은 몸집불리기로 다른 기업이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자신만의 성을 쌓아올리기를 시도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한 이익추구 행위의 결과로 사회적인 총후생이 감소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시장의 관리감독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상식의 영역에 들어선지는 오래다.
문제는 그 정도의 차이. 스티글리츠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을 믿는 경제학자로서, 사실 지금 기업들의 이익추구행위는 사회의 총후생이 늘어나는데는 보탬되지 않는 그들만의 지대추구행위로 전락했다고 진단한다. 시장 포식자들이 정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통해 규제를 점차 완화시켰고 그 결과 공정한 경쟁이 약화되고 사기 행위가 늘어나, 지대 추구 행위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민영화는 몇몇 기업의 지대 추구 행위를 지원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도로나 철도, 통신 같은 사회인프라는 경쟁이 불가능하고 승자가 독식하기 쉬운 구조다. 미국의 악명높은 의료인프라 역시 민간에 이전된 공공서비스로 비효율의 극치를 보이며 국내총생산(GDP)의 숫자만 키우고 있다. (백원에 살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천원에 팔려 규모만 키웠다는 의미의 시니컬한 지적처럼.) 이러한 민영화를 밀어붙인 저변에는 정부의 공공부문 운영에 대한 비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옳지 않다, 그리고 그게 수익성과 서비스 경쟁력 면에서 시장에 맡기는 것(이라 쓰고 기업에 넘긴다고 읽는다)보다 뒤떨어진다, 고 쉼없이 떠들어댄 시장 포식자들과 그들의 나팔수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그게 맞는 비판인가. 앞선 도로, 통신, 의료 등의 사회 인프라는 물론이고 복지, 환경, 주택 등은 어떠한가. 심지어 IT산업의 기초가 된 인터넷이 정부 주도의 투자로 처음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공공부문과 시장 인프라에 대한 투자야말로 정부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이런 부문의 투자수익은 민간영역보다 높은 수익율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만연한 지대추구행위는 시장을 약화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대체 대기업 CEO들은 수십억의 연봉만큼 기업에 가치를 더하는가 말이다. 그리고 금융산업에 지원된 천문학적인 금액의 공적부조엔 누구의 세금이 투입되는가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지 않으며 시장 역시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이 구조적인 불평등을 교정할 경로나 방법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스티글리츠의 주장이다. 이로써 기회의 땅이라는 아메리칸드림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이야기.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이라고 하면 우선, 기업의 지대추구행위를 용인하는 건 결국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빚을 텐데 이를 금하는 것이 일국 차원에서 가능하며 또한 바람직한 게 맞을지에 대해서다. 특히 뒤미쳐 떠오르는 질문, 미국에 비해 작은 경제규모인데다 무역수지에 민감한 한국의 상황을 좀더 자세하게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더 절망적인 '불평등' 결과가 나올지까지 고려할 때 정부의 선택지는 뭐가 남을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1%라고 뭉뚱그리는 시장 포식자들을 하나의 의식화된 공동운명체인 양 묘사하고 묶어내는 것은 다소 선정적인 전략이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