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비밀 서재 - 한 독서광의 기이한 자기계발
티머시 W. 라이백 지음, 박우정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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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히틀러의비밀서재 #히틀러 #서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어떤 책을 읽어왔고 어떤 책을 소장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은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근거가 될까. 적어도 1만6천권의 장서를 개인소장했고, 그의 사상과 행동이 역사를 뒤흔든 사람이라면 그의 독서이력과 서재는 큰 힌트가 된다는데 이견은 없겠다. 사실 나는 그보다 자취가 작은 일반인, 한국같은 작은 나라의 대통령이라거나 평범한 갑남을녀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애서가를 자처했고 늦은 밤까지 하루 한권의 책을 읽어내는 것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의 제3제국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철학자로 니체나 쇼펜하우어를 들먹인 것도 주효했을 거다. 지독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뒤범벅된 그의 이른바 민족사회주의는 그래서 더욱 파악하기 어려워보이는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대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어떻게 엮어내겠단 건지, 거기서 파생되는 논리적 귀결들이 서로 절그럭거리는 건 어떻게 해소하겠단 건지. 유대인은 왜 이렇게 늘 인류의 적이 되어 왔으며, 아리아인종이란 건 대체 어디서부터 순수하고 어디서부터 '오염'된 건지도. 등등, 끝이 없다.

그렇지만 과연 그가 그만큼의 소화력을 갖고 있었는가 하면, 아니었단 게 이 책의 일관된 메시지다. 그는 체계적인 독서를 한 적이 없고, 그의 사고는 독서와 함께 부딪히고 발전하고 변화한 게 아니었단 이야기다. 문제는 그의 독서법. 그는 자신의 근거없는 신념과 망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조각들을 찾는 방식의 독서를 했고, 개별 철학이 진지하게 구축하려 한 세계와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그런 아전인수식의 발췌독은 현란한 수사와 웅변에 필요한 벽돌은 제공할지언정 본인의 사고와 사상을 위한 자양분은 뽑아내지 못한단 이야기렸다.

이 대목을 아전인수식으로 다시 인용해보자면, 글쎄. 양보다 질이다. 몇권을 봤는지가 아니라, 개개의 책들이 어떤 맥락과 통찰력을 갖추고 본인에게 도전해왔는지가 중요하단 말이다. 교양을 진열하기 위한 지대넓얕식의 지식 소비가 갖는 위험성은, 혹은 장학퀴즈/일대백식의 퀴즈쇼에 특화된 암기지식이 갖는 위험성은 전혀 본인을 흔들지 못하는 그 무독한 지식에 있다. 백번을 흔들리고, 아프고 또 아파야 하는 건 청춘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개개인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지식이라면 결국 애서가이자 웅변가 '히틀러'가 되는 게 고작일 테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 독서 경험과 서재의 구비를 통해 히틀러의 뼈대가 될 신조와 인생을 짚어준다는 것. 사실 지금까지 과문한 바 히틀러의 삶과 그의 신념에 대해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었다. '나의 투쟁'을 읽어보는 건 고사하고 그가 외계인도 남장여자도 사이코패스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런 반인류적인 짓을 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조각 하나 찾지 못했으니깐. 그렇지만 그의 사고퍼즐을 담당한 책들이 직조되면서, 그 역시 평범한, 혹은 다소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성찰력이 부족한, 그래서 결단력만 가득한 멍청이였지 않을까 상상하고 이해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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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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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셰익스피어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유명하지만 그만큼 알듯말듯한 이 문장. 뒤미처 오는 대사들을 보면 자살을 고민하는 자의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죽는 것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영원한 잠이라면 기꺼이 그리 하겠다, 그런데 그 깨지못할 잠에 불순한 꿈이라도 끼어들면 어쩌지.

극중 햄릿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그 고민은 더욱 복잡하고 무거워진다. 이미 선왕을 시해한 숙부, 그리고 두달만에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심증은 굳어지고 선왕의 혼령에 복수를 맹세한 상태. 그렇지만, 과연 복수로 충분할까. 그가 계속 토로하듯 나라의 기강과 도덕이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하나의 복수와 징벌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무기력감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이리 살아 뭐할끼고. 에라 절이 싫음 중이 떠나야지, 다시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결말로 갈수록, 모두가 죽어버리는 비극으로 치달을수록, 사건의 전개는 그 누구 하나의 의지나 생각에 따르지 않는다. 주변인물들은 그저 과녁에 어긋나는 화살만 줄창 쏘고들 있을 뿐이다. 각자의 의지가 서로 충돌하고 융합하며 만들어지는 거대한 흐름이 운명 혹은 신의 의지라면, 결국 햄릿은 그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다해내면서 비로소 그 오랜 질문을 끊어냈다. 어느순간부터 죽느냐사느냐의 질문을 스스로 되새기지 않으며 그저 흘러가듯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젠 더이상 그 질문 자체가 필요없게 된 상황, 극을 하나 완성시켜낸 후의 뿌듯한 안식을 맞이하게 된 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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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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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따위엿이나먹어라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아니다. 아픈 건 청춘의 한때가 아니다. 흔들리는 것 역시 한때가 아니다. 그렇게 삶은 얊팍하지 않다.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 있는 증거다." "산 자에게 평온한 장소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드보일드하고 터프한 말투라니. 게다가 "자유와 고독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유로워지고 고독해져라, 그러지 않고 어떻게 살아 있다고 말하랴.

때론 연극적이거나 오글거린다 싶을 만큼 과하기도 하고, 때론 이렇게 날카롭고 시니컬해서야 반발심만 들고 말겠다 싶기도 하다. 왠지 과장스런 말투와 행동의 일본 시대극같은 걸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때마다 적절히 중심을 잡아주는 마법같은 말.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합소리이기도 하고, 맘대로 못 산 인생에 대한 경계심을 유발할 수도 있겠고, 후회할 꺼리만 잔뜩 남긴 자의 말로를 응축한 말일 수도 있겠고.

다만 그의 뜨거운 말들은 그 열기에 취해 여전히 독단적이거나 독선적이기도 한 뒷맛을 남긴다. 많지만 몇가지만 들어보면-온라인 게임은 국가가 말랑한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음모라는 지적은 한국에선 전혀 맞지 않다. 직장인이 되지 말고 자유로운 자영업자가 되는 길도 고려하란 것 역시 너무 나이브하다. 국가나 가족 간의 권력관계에 대한 지적 역시 섬세한 감각으로 잡아냈긴 하지만, 적잖이 선정적이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누가 이렇게 호쾌하게 던질 수 있을까. 그 거침없는 독설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불쾌감이나 부담스러움보다 작지 않다면 쉽게 술술, 재미있게 넘어갈 수 있는 책. 멍청하고 생각이 없으니 그냥 그따위로 그렇게 살다 죽으란 말에서 얻는 쾌감은 다소 도착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책이라기보단 즉각적인 행동을 독려하는 팜플렛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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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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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셰익스피어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shakespeare #tempest

그의 극들은 대체로 비극에 기울어져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인간은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결론이라니.

그에 대해 인생의 곡절을 겪은 아비 푸로스퍼로의 입을 빌어 셰익스피어가 슬쩍 끼워놓은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아직 사회를 겪지 않은, 사람들을 겪지 않은 자로서 신세계라는 표현은 맞춤하기도 하지만, 또 '찬란한'이란 수사를 제한 채 동의하는 모습이니깐.

그건 어쩌면 자녀의 미래를 축복하면서도, 당연히 닥치게 될 우환들까지 슬몃 걱정하는 성숙한 부모의 모습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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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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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문학동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아이돌 #덕통사고

연예인 뒷꽁무니 쫓아다니는 일, 빠순이, 팬질, 덕통사고 운운. 그걸 가리키는 단어들은 대개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 짝사랑, 롤리타 콤플렉스, 세렌디피티, 종소리가 뎅뎅뎅. 심지어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자연스런 끌림에서 출발한다는 점까지, 일반인의 일반인에 대한 사랑을 묘사하는 단어들과 다를 바 없는데도.

그러게. 왜 그렇게 그녀들은 매도당했던 걸까. 힘없고 어린 여성집단에 대해 함부로 훈수두고 딱지붙이는 주류 남성문화의 비열함일 수도, 왜 현실적인 짝짓기 대신 생산적이지 못한데 에너지를 낭비하냐는 효율지상주의적인 안타까움일 수도, 혹은 아이돌 옆에선 그저 오징어일 뿐인 일반 남성 스스로의 열등감과 위기감이 촉발한 공격성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그녀들도 안다. 한번의 아이컨택을 위해 하루를 고스란히 내바치는 비효율. 갖고 있는 가장 비싼 것을 전부 내다팔아도 이뤄질리 없는 관계. 그저 자신은 아이돌에 기억되기는 커녕 그런 사람이 존재한단 것조차 알려질 수 없는 사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어질 가능성이 0으로 수렴하는 그것은 관계란 단어조차 과하다.

그렇지만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 '씨발, 죽어도 좋아'랄 만큼의 고양감을 주는 건 그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고 열렬하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죽은 단어들이 그를 표현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하루의 기억과 기록이 온통 그와 나만의 암호문이 되어버리고, 기다리는 시간조차 데이트의 일부인 행복한 시간이 되는 일. 대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어쩌면 그들은 그만큼 마음 계산에 밝지 않아서, 대책없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서, 비극으로 끝날 아픈 과정을 뻔히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만 이들인 거다. 사랑이란 감정에 충실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어쩌구저쩌구' 정의 그대로의 사랑을 그대로 구현하는 사랑꾼들. 소설은 그런 입덕한 자들의 사랑이 일반인의 사랑과 같거나 혹은 더 순도높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부러움 한 조각. 일본만화 H2에 나왔던 저 멋진 대사와 정서가 유효할 수 있는 기간이 내겐 얼마나 길었더라 싶어서. 기다림이 설렘으로 충만할 수 있는 기간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게 덕질이구나 싶어서. 아이돌, 나만의 신을 세우고 사랑하는 건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구나 하는 조그만 부러움과 질투. (그렇지만 역시 난 안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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