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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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 #문학동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아이돌 #덕통사고

연예인 뒷꽁무니 쫓아다니는 일, 빠순이, 팬질, 덕통사고 운운. 그걸 가리키는 단어들은 대개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 짝사랑, 롤리타 콤플렉스, 세렌디피티, 종소리가 뎅뎅뎅. 심지어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자연스런 끌림에서 출발한다는 점까지, 일반인의 일반인에 대한 사랑을 묘사하는 단어들과 다를 바 없는데도.

그러게. 왜 그렇게 그녀들은 매도당했던 걸까. 힘없고 어린 여성집단에 대해 함부로 훈수두고 딱지붙이는 주류 남성문화의 비열함일 수도, 왜 현실적인 짝짓기 대신 생산적이지 못한데 에너지를 낭비하냐는 효율지상주의적인 안타까움일 수도, 혹은 아이돌 옆에선 그저 오징어일 뿐인 일반 남성 스스로의 열등감과 위기감이 촉발한 공격성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그녀들도 안다. 한번의 아이컨택을 위해 하루를 고스란히 내바치는 비효율. 갖고 있는 가장 비싼 것을 전부 내다팔아도 이뤄질리 없는 관계. 그저 자신은 아이돌에 기억되기는 커녕 그런 사람이 존재한단 것조차 알려질 수 없는 사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어질 가능성이 0으로 수렴하는 그것은 관계란 단어조차 과하다.

그렇지만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 '씨발, 죽어도 좋아'랄 만큼의 고양감을 주는 건 그 마음이 그토록 간절하고 열렬하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죽은 단어들이 그를 표현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하루의 기억과 기록이 온통 그와 나만의 암호문이 되어버리고, 기다리는 시간조차 데이트의 일부인 행복한 시간이 되는 일. 대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어쩌면 그들은 그만큼 마음 계산에 밝지 않아서, 대책없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서, 비극으로 끝날 아픈 과정을 뻔히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만 이들인 거다. 사랑이란 감정에 충실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어쩌구저쩌구' 정의 그대로의 사랑을 그대로 구현하는 사랑꾼들. 소설은 그런 입덕한 자들의 사랑이 일반인의 사랑과 같거나 혹은 더 순도높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부러움 한 조각. 일본만화 H2에 나왔던 저 멋진 대사와 정서가 유효할 수 있는 기간이 내겐 얼마나 길었더라 싶어서. 기다림이 설렘으로 충만할 수 있는 기간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게 덕질이구나 싶어서. 아이돌, 나만의 신을 세우고 사랑하는 건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구나 하는 조그만 부러움과 질투. (그렇지만 역시 난 안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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