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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채식주의자 #한강 #책스타그램
이중의 망연함. 그다지 말수가 없는 아내가 문득 변화해버린 모습이 맥을 탁 놓아버린 망연함을 떠올리게 만든다면,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과 주변인들의 당혹스러움과 낯섦은 또 그것대로 망연하다. 채식주의자와 일반인간의 괴리, 내 식습관을 끔찍하게 여길 상대에 대한 불편함이 깊어지면 그런 망연함이 되는 걸까.
아내의 변화는 단순히 채식을 고집하는 그것이 아니라 망상, 편집증, 불면증, 혹은 귀신들림이라고 부름직한 그 무엇일 텐데. 그렇지만 그녀는 그가 고르고 골라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었단 말이다. 혹시 그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난 평범하지 않아, 난 당신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외치고 싶은 뒤늦은 반항.
아닐까. 분명 특이점들은 있었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라 할 만한, 채식주의자로의 예비점들. 어려서부터 칼질을 무서워했다거나, 가슴이 답답해 브래지어를 차지 못했다거나. 그렇지만 그녀의 독백은 어디로 전달되지도 발전되지도 못한 채 사그라든다.
그런 망연함들은 이내 폭력으로 비화되고 만다. 남편을 비롯한 주변가족들의 아내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들,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대한, 그녀 자신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들. 그렇게 지옥도로 말려들어가는 풍경.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이들이 나를 알아낼 수 있을까. 그렇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자신과 상대를 상처내게 되는 걸까. 그런 류의 망연함이 그득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