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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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일본 소설 중에 가장 뇌리에 박힌 소설은 <유령인명구조대>다. 유쾌하게 읽히지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기에 주변에도 많이 소문을 냈던 책이다. 그 책을 통해 작가의 이름을 외우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예전에 쓴 작품을 ‘13계단’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데 이 소설은 <유령인명구조대>와는 다른 색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의 신작 소식을 접했다. <제노사이드>. 물론 이 소설 역시 유령인명구조대가 아닌 13계단의 분위기가 풍겨졌다. 그러나 작가에 대해 하나둘 알게 되면서 원래 이것이 그의 장기임을 알기에 쉽게 결정내릴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 <제노사이드>.

미국, 콩고, 일본을 배경으로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과 비밀기관, 민간 용병, 일본 바이러스 학자, 콩고에 있는 미국 인류학자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인간의 종말을 예견한 30년 전 쓰인 하이즈먼 리포트.

1. 우주적인 규모의 화재 -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

2. 지구적인 규모의 환경 변동 - 지구 자기 소실이나 역전 현상.

3. 핵전쟁.

4. 역병 : 바이러스 위협 및 생물 병기.

5. 인류의 진화 - 초인류 등장.

이 중 다섯 번째 요인이 콩코 밀림에서 발생했다. 제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 제 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을 소유한 초 인류는 각종 파괴를 일삼는 현 인류를 말살할 것이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언제나 진실을 감춰진 채 작전 <가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바이러스 창궐로 콩고에 사는 피그미 족 말살임무가 실행된다. 그러나 그 안에 실질적인 작전은 <네메시스>로 이미 태어난 세 살배기 초 인류를 죽이고, 앞으로의 가능성마저 없애기 위해 그 부족을 말살하며 그 작전을 실행한 요원들마저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작전 <네메시스>는 초 인류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고 오히려 작전을 실행하려는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아프리카 탈출을 시도한다.

 

작가는 놀라웠던 데뷔작 ‘13계단’에서 치밀한 구성과 사건으로 독자들을 매료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매번 작품을 하나 끝낼 때마다 놀랍게 성장했다. ‘유령인명구조대’는 가볍게 읽히지만 그 내용과 감동은 결코 가볍지 않아 오랜 여운으로 독자들을 맞이한다. 이번 작품 역시 작가는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방대해진 스케일에 더 많아진 등장인물을 다뤘지만 결코 난잡하거나 허술하게 다루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치밀하게 모이며 개연성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보너스로 허를 찌르는 양념 같은 이야기, 인물이 깜짝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제 한 인간을 바라보던 시각을 점점 키워나가, 이제는 인류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겉모습에서 내면을 살피던 그가 이제는 전 인류을 떠안은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하나씩 써나가면서 결코 같은 이야기, 같은 관점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싶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할 수는 없지만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쓴 작품을 볼 수 있다.

<제노사이드>.

한 동안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없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작가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더욱 놀라운 작품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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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김필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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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미술 교과서를 의무적으로 보는 기간이 지나고 나서는 찾아서 보려는 의지도 없었던 세계. 음악과 미술은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세계다. 그러나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내 주변에 있는 음악과 미술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에 목마른 갈증을 느끼게 되고, 직접 찾아가서 볼 수는 없지만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책을 보기 시작했다. 해설이 곁들인 책은 미술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작품을 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한 번 보고난 작품의 이름과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권의 책을 접하다보니 하나씩 눈에 익는 작품이 생기고, 한 명, 두 명, 작가의 이름도 작품의 제목도 외워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만난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은 그 중에서도 작품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큰 사이즈에 친절한 작품 해설로 가히 내가 접한 책 중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경험한 것들을 나열해본다면, 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또 한 권의 책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도 예를 들어본다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최후의 만찬’과 달리 처음 봤다.

‘아, 나의 얕은 미술 수준이 들통 나는 경험이다.’

<아테네 학당>은 눈에 익은 작품이지만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뛰어난 화가였던 라파엘로의 작품이라는 사실과 작품 속에 수많은 철학자와 미켈란젤로를 찾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해설이 없었다면 <시스티나 마돈나>의 경우, 구름 뒤 수많은 인간의 영혼들은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비너스와 큐피트가 있는 알레고리>(아그놀로 브론치노)는 해설을 읽기 전에 큐피드를 다른 인물로 오해했다.

데생 없이 직접 캔버스에 물감을 그리는 화가 카라바조, <매장>은 해설을 통해 등장인물을 파악하고 나니, 그림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그림도 처음이지만 동방박사의 여러 가지 설과 미술적 표현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뜻하지 않은 지식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

물론 모든 작품이 생소하지는 않다. 그 전에 이미 내 안에 가득 담긴 램브란트, 피카소, 밀레, 마네, 세잔, 고갱, 고흐, 클림프, 달리 같은 화가와 작품이 모두 익숙한 경우들도 있었지만, 화가보다 작품만 기억하는 진주귀걸이 소녀,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벌거벗은 마야,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미적 호감도를 알게 되었다. 모네, 드가, 르누아르에 이어지는 인상주의는 시력이 나빠지는 느낌이 들어 별로였지만, 후기 인상주의인 앙리 마티즈의 <푸른 누드Ⅳ>는 심플함과 블루 느낌을 좋았고, 반면에 너무나 단순한 <검은 원>은 별로였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예전에 처음 봤을 때도 익숙했는데, 아프리카 가면, 조각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그 영향을 함께 받은 화가와 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기를 통해 작가가 이 전에도 한정 출판하여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줬다는 책이 있었고 그 2탄으로 이번 책까지 그렇게 배분될 예정이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 훌륭한 책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뻔 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구어체 문구에 손자, 손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화자의 친절한 설명은 나 같은 미술 문외한에게도 낮은 문턱으로 미술계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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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쉘 실버스타인 지음 / 살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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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very Thing On It.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지극히 아이적인 감성을 담은 책이다. 마치 영화 <마이키 이야기>의 소년 버전을 본다고나 할까?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을 담은 것 같은 이 책은 사실 셸 실버스타인이라는 보통의 어른이 쓴 책이다. 출판의 경험이 있는 그가 미발표작을 모아 이런 책을 낸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고리타분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책 먼저 읽었다.

흥분, 놀라움, 황당, 신선함….

다양한 감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 심오한 감동, 여운을 남기는 것도 있었다.

<해피엔딩?>

행복한 결말이란 건 없어.

끝나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거든.

그래서 나는 행복한 중간이나 아주 행복한 시작이 좋아.(p22)

황당한 아이들의 행동을 보여주는 듯한 <이게 아니야>에서 ‘내 몸을 목까지 모래 속에 묻어줘’에 대한 이야기엔 ‘팡’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것 중에 하나였다. 게다가 근시 노만이 우유를 짜려다가 소뿔에 박혀 날아가는 모습을 왼쪽 페이지엔 성난 소의 모습을, 오른쪽 페이지엔 멀리 날아가는 근시 노만의 모습은 아무 말이 없어도 충분했다.

하루하루 어른이 되어가며 모든 것이 신선했던 경험은 익숙함, 나른함으로 변해 버리고 그것이 어른스러움이란 모습으로 포장된다. 그런 우리들에게 작가는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기를, 어린이들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부자라는 것, 작은 것에 행복해지는 것.

그것은 모두 순수한 동심에서 멀어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채 어른이 되어가면서 잊혀졌던 우리의 동심을 이제는 다시금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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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들 ㅣ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1
주원규 지음 / 작가정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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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농.

도.

세 명의 10대(이제 갓 스물이 된) 인물들이 서울 한 복판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3류 양아치의 대표인물로 성장할 것 같은 기는 여자 친구의 명품 백을 사기 위해 300만원이 필요하다. 거기에 농이 제안한 일을 선뜻 받아들인다. 국회의사당에 가방만 갖다 놓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농은 세상을 구원하기로 마음먹고 정신적 지도자 구루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긴다. 거기에 행동대장 기와 도를 합류시킨다. 도는 농이 만든 수제 총기로 그를 내쫓았던 클럽 정크를 처단하려한다. 물론 농이 시킨 일은 아니지만 그녀가 시키는 일과 이 일의 우선순위는 오로지 도의 선택에 달렸다.

이 세 청춘이 펼쳐 놓은 일은 계획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도의 클럽 정크 도발이 유일한 승리라고나 할까. 농의 명령(?)대로 가방을 국회의사당에 갖다놓기만 했다면 기도 성공했겠지만 기의 양아치 성향을 무시한 결론이다. 결국 친구들과 난투 끝에 버스터미널 화장실에 잠시 들린 기. 까맣게 잊고 나온 가방은 터미널 화장실을 날려버린다. 가방 안에 있던 것이 폭탄인 줄 몰랐던 기는 친구들과 난투에서 그 가방을 마구 휘둘렀던 걸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그러나 농에게 300만원을 못 받는다면 예쁜 여자 친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 기에게는 순정이겠으나 지켜보는 독자는 기의 연애의 시작도 끝도 참 허무맹랑할 뿐이다. 게다가 농의 정신적 지주 구루의 정체는 농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민조차 사라지게 한다.

기, 농, 도.

세 캐릭터의 구성은 신선하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너무 비약한 기분이 든다. 신선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나 할까. 나 역시 이제는 이미 기성세대로 자리 잡은 지 한참인 나이가 되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생각은 ‘보수다, 진보다’를 넘어 그 나이에 맞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도 갖고 있지만 나쁜 상황도 경험해야 하는 시기를 살아가는 그들이 젊다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어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매도되지 않았으면 싶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 세 인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기, 농, 도라는 인물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전반적으로 펼쳐놓은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확실히 떨어진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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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랑은 - 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황주리 지음 / 예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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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 주리의 그림을 곁들인 소설 <그리고 사랑은>.

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키위 새가 난다

짜장면에 관한 명상

빨간 입술

그녀의 마지막 남자

스틸라이프

네 인생의 청문회

그대와 함께 춤을

나 하나의 사랑

총 아홉 개의 단편 같은 사랑 이야기가 담긴 <그리고 사랑은>.

질리도록 질린 사랑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작가 황 주리는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영원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영원 따위 없어도 아무 상관없었다.’(p21)

영원도 사랑도 작가 황 주리는 결코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결말 없는 이야기, 사랑은 언제나 시작되고, 끝이 나고 또 시작될 뿐임을 작가는 아홉 개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준다.

또한 상식을 벗어나려는, 평범함을 못 견디는 듯, 작가는 아홉 개의 모든 이야기에 어느 하나 쉬운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론도 없다. 처음에 이런 부분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또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인가, 마음 졸이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데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아무리 앞뒤를 살펴봐도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었다. 허무하나 당황스럽고 한동안 멍한 채 그 다음 이야기를 읽지 못했다.

 

사랑의 끝은 이별인가, 결혼인가!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작가는 ‘미제’로 남겼다. 얽히고설킨 사랑의 실타래에서 이야기 속 인물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 지 독자도 작가도 알지 못한 채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키위 새가 난다’에서 키위 새에서 번지점프까지 소재에 이야기를 얹히는 작가의 절묘함도 보이지만 대다수의 이야기는 결론 없는 사건의 나열이 있을 뿐이다. 막상 결론을 내려야하는 것은 독자에게 넘어왔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생소하다. 그리고 어색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첫 이야기 ‘그리고 사랑은’이 끝나고 남은 아쉬움에 다음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이 겹치거나 뭔가 더 있을 거라는 기대를 끝내 버리지 못한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가 중간 중간에 삽입한 그림이 이야기를 쉽게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 하나의 이야기를 찾아야 하는 과제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작가 황 주리의 그림소설 <그리고 사랑은>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채워야 할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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