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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로다 화연일세 세트 - 전3권
곽의진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8월
평점 :
역사 속 인물을 다루는 소설이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재탕 삼탕되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지나온 세월만큼 잊혀져있던 인물이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다산 정 약용, 추사 김 정희.
국사 교과서에서 친숙한 그들이 등장하는 <꿈이로다 화연일세>.
그런데 여기에는 소치 허 련이라는 생소한 인물이 등장한다. 추사를 다룬 이야기에서 얼핏 한 줄씩 등장했던 인물이라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이리라. 거기에 작가 곽 의진이 펼치는 소설 <꿈이로다 화연일세>는 역사 속 새로운 인물의 조명과 그와 더불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들과의 관계, 에피소드는 그 자체만으로 아주 즐거웠다. 애초에 6개월 연재로 계획됐던 것이 장장 2년의 연재로 이어졌고 그것을 모아 이번에 총 세 권의 소설로 태어났다. 그렇게 소치 허 련은 대중에게 자신의 모습을 알렸다.
1권 꿈을 품은 소치.
1권 전체가 소설의 도입부 같다.
허 련이 그림에 꿈을 품고, 그 과정에서 스승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비쳐진다. 초의 스님, 추사 김 정희와 인연이 닿고 그들을 스승으로 삼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모든 이야기를 허 련에 집중하지 않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초의, 추사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어진다. 세 사람의 배경, 삶을 어우러지게 표현하며 이야기는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닥 큰 일 같은 것은 벌어지지 않고 잔잔하다. 작은 물결이라면 허 련을 향한 처녀 은분의 짝사랑 정도.
작은 섬 출신인 허 련이 재물로도 가문으로도, 어디 하나 밀어 줄 능력 없는 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승을 찾고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은 너무나 순탄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공한 주인공으로 고난과 역경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살림을 맡은 아내는 홀로 모든 것을 감내하며 집안 경제와 아이를 맡아 키울 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한 그 어떤 원망조차 없다. 한편으론 이런 허 련의 처지를 부러워할 남자들이 현실에서 많을까 싶다.
2권 문자향으로 오는 소치
1권에서 허 련이 스승이 내린 소치라는 호를 받고 나날이 일취월장 성장하더니 2권에서는 드디어 한양을 넘어 대궐에까지 그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추사의 아들이 뛰어난 소치의 능력으로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함에 낙향까지 결심했던 소치였지만 제주 유배 간 스승 추사를 만나러 감에 연경을 오가며 수많은 석학들의 소식을 전해주고, 소치와 같은 환쟁이가 아니라 시를 평하는 우선을 시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치의 인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인간적이었을까!
잔잔했던 1권과 달리 2권에서는 소치로 하여금 두 여인의 삶이 망가진다. 은분은 소치와의 단 한 번의 사랑으로 머리만 올려주기를 간청하였다가 소치의 거절로 인해 스스로 스님으로 입적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소치는 방황하고 그런 소치를 달래려 청아 스님(은분)은 소치를 찾아 나선다. 방황의 끝자락에 만난 소치는 일지암으로 가자는 청아의 청을 또 거절하고 청아 홀로 남겨두고 떠난다. 그리고 그 새벽 청아는 겁탈을 당하고 스스로 천년의 업을 씻기 위한 삶을 선택한다.
소치의 승승장구에 한양에서 그를 모시는 미소년으로 인해 흉흉한 소문이 일자 첩실을 둘 것을 친구가 권한다. 때마침 은분을 찾는 소치는 은분이 속세에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는 소식에 오히려 여자의 언약은 믿지 못할 것이라며 친구의 청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얼떨결에 조강치저와 사별한 것으로 이야기가 맞춰진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조강지처는 오히려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 사실에 나중에 밝혀지면 서방님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무서워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는데….
3권 운림산방의 소치
며칠 꿈자리가 안 좋았던 소치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온다. 아내의 죽음을 알고 오히려 아내를 원망하는 소치의 모습은 독자들의 화를 돋운다. 시대가 시대이고 남자란 동물이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작품에 너무 몰입한 대가인 듯싶다. 아버지를 원망하던 아들과 딸이 금세 풀어지는 모습은 오히려 속상했다. 자신의 뒤를 잇게 하기 위해 아들 은을 데리고 한양을 떠나며 홀로 딸을 두고 떠나는 소치의 모습은 정말이지 정 똑 떨어지는 아버지라고 해야지 싶다.
한 편 속세의 삶을 살던 은분과 다시금 마주친 소치. 아이를 팽개치고 두 사람은 초의 몰래 떠난다. 그러나 후회가 찾아오고 둘은 또다시 이별한다. 뒤늦게 아이를 생각해 돌아온 은분에게 차가운 아이의 시신만이 남고, 은분은 무병을 앓는데…
<꿈이로다 화연일세>는 작가의 정성과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치 허 련을 끄집어 낸 것은 물론 제주 유배 갔던 추사의 삶에서 산방굴사에 이야기를 찾아내고, 조강지처의 죽음에서 굿을 세밀하게 다루며, 초의 스님과 청아(소치를 짝사랑했던 처녀 은분) 스님을 통해 불교적인 측면, 다과의 모습을 정밀하게 보여줬다. 또한 추사, 초의, 우선은 물론이요 연경에 있는 학자들과의 교류 모습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 역시 소개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시를 곁들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시를 한글로 표현하다보니 한시에서 느낄 수 있는 운의 멋, 음의 멋이 사라져 그 시들이 얼마나 우수한 것을 알 수 있는 계기마저 아예 차단해 버린 것 같아 아쉬웠다. 소치를 중심으로 다산, 추사, 초의는 물론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펼쳐짐으로써 대서사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작가 곽 의진의 작품을 처음 읽는 나로서는 작가가 참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가 싶다가도 풍속 소설처럼 사건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다.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친다는 작가의 근황이 아쉽다. 그녀가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작가를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은 독자의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