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보내는 상자 - 믿고, 사랑하고, 내려놓을 줄 알았던 엄마의 이야기
메리 로우 퀸란 지음, 정향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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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많은 종교가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서로 다른 종교 때문에 제노사이드(특정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대량 학살하는 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고, 그 반대편엔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앞세워 나서고 있다.

나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 시절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하고 매주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지 않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 귀퉁이엔 하느님이 있다. 그러나 가톨릭 이외의 종교에 대한 시선은 무관심, 배척도 아니다. 나는 절대 신이 각자의 모습에 맞게 부처로, 알라, 하느님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종교에 대해 일방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을 볼 때면 오히려 불편하다.

<하늘에 보내는 상자 GOD BOX>는 작가 메리 로우 퀸란의 어머니 메리 핀레이슨이 20년 동안 하느님께 보낸 쪽지들이 담긴 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어찌 보면 이것 역시 종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보면 불편할 수 있지만 다행히 나에겐 이런 편견은 없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만의 ‘GOD BOX'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옷장 위 선반에서 발견된 나무와 판자, 유리와 도자기 등을 된 상자 7개와 여름에 그녀가 빌렸던 컴퍼밴에서 발견된 3개, 도합 열 개의 상자에 가득 담긴 쪽지들은 포스트 잇에서 영수증, 화장지까지 가히 오합지졸 메모지들의 집합체들이다. 하느님께 보내는 쪽지들이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녀의 생각을 접하며 오히려 겉치레를 벗은 그녀의 모습에서 순수함과 진실함이 보였다.

또한 결혼관에 대한 그녀의 생각(딸에게 말했던 좋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은 이미 세상에 없는 그녀가 내게 건네는 충고처럼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아이들보다 부부가 1순위라는 그녀의 삶의 태도는 이미 결혼 전 남편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눴었다. 자녀들에게 가장 큰 교육은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유아관련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뼈저리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의 어머니가 좋은 결혼생활을 위한 조언(p63) 중 ‘항상 자신이 행복의 51%를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문구는 많은 것을 내 가슴에 남겼다.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작가는 큰 슬픔을 느꼈겠지만 그 두 분의 행복한 결혼생활의 마침표는 아직 출발선에서 헤매는 많은 부부들에겐 부러움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 난 남편과 함께 “언제나 함께, 천국에서든 어디서든 …”이란 문구를 서로의 가슴에 새겨본다. 그리고 나만의 ‘GOD BOX’를 상상해본다. 그것이 굳이 하느님을 향한 것이 아닐지라도, 소원을, 갈망을 담은 것이 아닐지라도, 내 삶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그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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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취하다 - 쌤의 앵글에 잡힌 부산의 진짜 매력 99 매드 포 여행서 시리즈
조현주 지음 / 조선앤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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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부산을 처음으로 갔다. 책방 골목을 섭렵한 후 깡통 시장 주변을 돌면서 씨앗호떡도 먹고, 충무김밥, 비빔당면도 먹고, 족발 골목에서 냉채 족발도 즐겼다. 1박 2일의 코스가 무척이나 짧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제 2의 도시로서 스케일 큰 부산은 시장 하나 구경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함께 갔던 남편과 함께 우리는 바로 부산여행을 또 다시 계획했다. 그리고 만난 책이 바로 <부산에 취하다 Mad for Busan>다.

 

이 책은 보너스 가이드까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부산의 바다, 바람 따라 걷는 해안길

2장 부산의 거리, 시장과 골목

3장 클로즈업 부산

4장 부산의 축제와 예술

5장 입안에 감도는 부산의 맛

6장 부산의 카페&바

보너스 가이드 부산의 숙소&대중교통 가이드

얼핏 차례를 보고 2장은 그냥 넘기려고 했다. 지난 여행에서 충분히 우리는 그 곳을 파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영도 다리, 할매 유부 전골,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 등 우리가 놓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두 번 정도는 부산을 더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그 계획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절실히 느꼈다. 좀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보고 싶은 곳이 추가되고, 먹고 싶은 목록이 늘어난다. 해동용궁사도 가야하고, 상어투명보트도 타고 싶고 추리소설 도서관, 장난감 도서관도 가야하고, 완당이 어떤 맛일까 궁금하고 놀랄 만큼 싸고 맛있는 순두부찌개는 정말로 놀랍도록 싼지, 맛은 어떤지 먹어보고 싶고, 육회비빔밥, 올드보이 만두집, 억수로 매운 생짬뽕도 도전해보고 싶고, 미슐랭도 인정한 정갈한 한정식집, 예이제도 가보고 싶고, 동래한정식, 가빈한정식도 먹어보고 비교해보고 싶고, 부산의 카페는 모두 섭렵해보고 싶다!

작가가 사진을 잘 찍은 건지, 아니면 부산에 있는 곳은 모두 매력적인 것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목적에 맞게 지리적인 위치까지 파악하며 제 2, 제 3의 부산여행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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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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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악의 추억, 그리고 <별을 스치는 바람>.

이 정명 작가는 어느 덧 내 뇌리에 깊이 박힌, 몇 안 되는 한국 작가로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누구의 작품인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베스트셀러라는 이름만으로 서점에서 집어 들었던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은 한국 팩션 소설의 거대한 힘을 느끼는 작품이었다. 그런 기대 속에 만난 ‘악의 추억’은 작가의 이름을 외우고, 높아진 기대만큼 조금은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글로벌한 도전으로 배경도, 등장인물들도 한국적인 것을 버린 작품이었기에 ‘이 정명’이라는 이름을 외우게 했던 동기가 사라진 작품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아쉬움을 느끼는 나와 같은 독자들의 외침을 들은 듯 또 다시 한 국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별을 스치는 바람>을 들고 나타났다.

 

1권.

“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소설의 첫 시작부터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일제치하시절을 다룬 소설의 주인공(화자로써 주요 인물)이 독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국인도 아닌 젊은(또는 어린) 일본인이며,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는 자신이 지키던 감옥의 간수에서 죄인이 되어 갇힌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의 화자는 갓 스물이 되는 일본 하급 전범, 와타나베 유이치다. 이렇듯 소설은 처음부터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리고 드디어 본 사건으로 들어가는 시간여행이 화자를 통해 시작된다.

후쿠오카 형무소의 폭력 간수 ‘스키야마 도잔의 죽음’. 이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려는 소장의 의도로 나이 어린 유이치가 이 사건을 맡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유이치는 죽은 도잔의 다른 모습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된다. 잔혹하게 죄수들을 다뤘던 스키야마 도잔은 폭력 간수라는 모습 뒤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피아노 조율사가 되었던 순수한 청년이었고, 그 누구보다 글쟁이를 혐오했던 도잔은 사실 윤 동주가 인정했던 ‘시인’이었다.

이러는 와중에 독방에서 발견된 탈출 땅굴.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던 도잔을 어쩔 수 없이 죽였다는 최 치수. 범인이 밝혀지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유이치는 승진까지 한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 유이치에게 하나같이 조선인 죄수들은 더 이상 캐지 말 것을 권한다. 감당하지 못할 진실이라는 듯.

진실처럼 포장해도 거짓은 거짓, 속속들이 모르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유이치는 계속 진실을 파헤치는데….

2권.

도잔의 죽음의 비밀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단 331번 최 치수가 도잔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비밀을 파헤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윤 동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도잔과 동주가 함께 만들었던 비밀의 도서관을 알게 되면서 유이치 역시 도잔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조선인들을 향한 위생검열의 실체가 밝혀지고, 최 치수는 도잔의 살해범으로 사형이 집행된다. 유이치는 어느 것 하나 감당할 수 없는 말단 위치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양심마저. 그렇게 모든 진실은 감춰진 듯했다. 그런데 여전히 검열관의 업무를 하던 그의 앞에 소장 앞으로 온 발신 주소가 없는 이상한 물건이 도착한다. 소장의 것이기에 굳이 검열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발신인의 특이한 이름, 그리고 331을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에 최치수를 떠올리고 소장의 물건을 뜯는다.

 

모리오카 교수의 후쿠오카 형무소의 입성은 731부대의 실체를 아는 우리로서는 예측 가능한 사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도잔의 죽음보다 살아 있는 도잔의 실제 모습을 찾아가는데 독자는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며, 히라누마 도주, 즉 윤 동주의 모습을 접하게 됨으로써 저항 시인의 이미지에서, 인간으로서 매력적인 한 사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제 모습을 잃어가는 동주의 모습에서 유이치와 함께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보여주는 소설 속의 이런 이야기가 자세한 조사와 함께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음을 ‘윤동주 연표’를 보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을 때마다 ‘소설이니까~’하며 애써 위로했던 울분이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화자 유이치를 비롯해서 스키야마 도잔, 최 치수, 윤 동주, 이 네 사람이 주요 인물이다. 전면에 내세울 것 같았던 동주보다 오히려 도잔, 최치수의 이야기가 표면을 넓게 차지하며 유이치가 그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독자는 물론 도잔, 유이치를 울리고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단연 ‘동주’다. 그리고 도잔도 그랬듯이, 유이치도 그랬듯이 우리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작가는 <별을 스치는 바람>을 통해 지켜주지 못한 동주를 향한 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후손으로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을 마치 독자에게 전달해주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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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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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일본 소설 중에 가장 뇌리에 박힌 소설은 <유령인명구조대>다. 유쾌하게 읽히지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기에 주변에도 많이 소문을 냈던 책이다. 그 책을 통해 작가의 이름을 외우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예전에 쓴 작품을 ‘13계단’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데 이 소설은 <유령인명구조대>와는 다른 색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의 신작 소식을 접했다. <제노사이드>. 물론 이 소설 역시 유령인명구조대가 아닌 13계단의 분위기가 풍겨졌다. 그러나 작가에 대해 하나둘 알게 되면서 원래 이것이 그의 장기임을 알기에 쉽게 결정내릴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 <제노사이드>.

미국, 콩고, 일본을 배경으로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과 비밀기관, 민간 용병, 일본 바이러스 학자, 콩고에 있는 미국 인류학자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인간의 종말을 예견한 30년 전 쓰인 하이즈먼 리포트.

1. 우주적인 규모의 화재 -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

2. 지구적인 규모의 환경 변동 - 지구 자기 소실이나 역전 현상.

3. 핵전쟁.

4. 역병 : 바이러스 위협 및 생물 병기.

5. 인류의 진화 - 초인류 등장.

이 중 다섯 번째 요인이 콩코 밀림에서 발생했다. 제 4차원의 이해,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 제 6감의 획득,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 특히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을 소유한 초 인류는 각종 파괴를 일삼는 현 인류를 말살할 것이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언제나 진실을 감춰진 채 작전 <가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바이러스 창궐로 콩고에 사는 피그미 족 말살임무가 실행된다. 그러나 그 안에 실질적인 작전은 <네메시스>로 이미 태어난 세 살배기 초 인류를 죽이고, 앞으로의 가능성마저 없애기 위해 그 부족을 말살하며 그 작전을 실행한 요원들마저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작전 <네메시스>는 초 인류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고 오히려 작전을 실행하려는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아프리카 탈출을 시도한다.

 

작가는 놀라웠던 데뷔작 ‘13계단’에서 치밀한 구성과 사건으로 독자들을 매료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매번 작품을 하나 끝낼 때마다 놀랍게 성장했다. ‘유령인명구조대’는 가볍게 읽히지만 그 내용과 감동은 결코 가볍지 않아 오랜 여운으로 독자들을 맞이한다. 이번 작품 역시 작가는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방대해진 스케일에 더 많아진 등장인물을 다뤘지만 결코 난잡하거나 허술하게 다루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치밀하게 모이며 개연성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보너스로 허를 찌르는 양념 같은 이야기, 인물이 깜짝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제 한 인간을 바라보던 시각을 점점 키워나가, 이제는 인류를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겉모습에서 내면을 살피던 그가 이제는 전 인류을 떠안은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하나씩 써나가면서 결코 같은 이야기, 같은 관점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싶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할 수는 없지만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쓴 작품을 볼 수 있다.

<제노사이드>.

한 동안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없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작가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더욱 놀라운 작품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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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김필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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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미술 교과서를 의무적으로 보는 기간이 지나고 나서는 찾아서 보려는 의지도 없었던 세계. 음악과 미술은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세계다. 그러나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내 주변에 있는 음악과 미술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에 목마른 갈증을 느끼게 되고, 직접 찾아가서 볼 수는 없지만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책을 보기 시작했다. 해설이 곁들인 책은 미술에 대한 지식과 다양한 작품을 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한 번 보고난 작품의 이름과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권의 책을 접하다보니 하나씩 눈에 익는 작품이 생기고, 한 명, 두 명, 작가의 이름도 작품의 제목도 외워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만난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은 그 중에서도 작품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큰 사이즈에 친절한 작품 해설로 가히 내가 접한 책 중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경험한 것들을 나열해본다면, 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또 한 권의 책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도 예를 들어본다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최후의 만찬’과 달리 처음 봤다.

‘아, 나의 얕은 미술 수준이 들통 나는 경험이다.’

<아테네 학당>은 눈에 익은 작품이지만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뛰어난 화가였던 라파엘로의 작품이라는 사실과 작품 속에 수많은 철학자와 미켈란젤로를 찾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해설이 없었다면 <시스티나 마돈나>의 경우, 구름 뒤 수많은 인간의 영혼들은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비너스와 큐피트가 있는 알레고리>(아그놀로 브론치노)는 해설을 읽기 전에 큐피드를 다른 인물로 오해했다.

데생 없이 직접 캔버스에 물감을 그리는 화가 카라바조, <매장>은 해설을 통해 등장인물을 파악하고 나니, 그림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그림도 처음이지만 동방박사의 여러 가지 설과 미술적 표현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뜻하지 않은 지식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물론 모든 작품이 생소하지는 않다. 그 전에 이미 내 안에 가득 담긴 램브란트, 피카소, 밀레, 마네, 세잔, 고갱, 고흐, 클림프, 달리 같은 화가와 작품이 모두 익숙한 경우들도 있었지만, 화가보다 작품만 기억하는 진주귀걸이 소녀,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벌거벗은 마야, 같은 것들도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미적 호감도를 알게 되었다. 모네, 드가, 르누아르에 이어지는 인상주의는 시력이 나빠지는 느낌이 들어 별로였지만, 후기 인상주의인 앙리 마티즈의 <푸른 누드Ⅳ>는 심플함과 블루 느낌을 좋았고, 반면에 너무나 단순한 <검은 원>은 별로였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예전에 처음 봤을 때도 익숙했는데, 아프리카 가면, 조각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그 영향을 함께 받은 화가와 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기를 통해 작가가 이 전에도 한정 출판하여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줬다는 책이 있었고 그 2탄으로 이번 책까지 그렇게 배분될 예정이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 훌륭한 책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뻔 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구어체 문구에 손자, 손녀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화자의 친절한 설명은 나 같은 미술 문외한에게도 낮은 문턱으로 미술계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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