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악의 추억, 그리고 <별을 스치는 바람>.

이 정명 작가는 어느 덧 내 뇌리에 깊이 박힌, 몇 안 되는 한국 작가로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누구의 작품인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베스트셀러라는 이름만으로 서점에서 집어 들었던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은 한국 팩션 소설의 거대한 힘을 느끼는 작품이었다. 그런 기대 속에 만난 ‘악의 추억’은 작가의 이름을 외우고, 높아진 기대만큼 조금은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글로벌한 도전으로 배경도, 등장인물들도 한국적인 것을 버린 작품이었기에 ‘이 정명’이라는 이름을 외우게 했던 동기가 사라진 작품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아쉬움을 느끼는 나와 같은 독자들의 외침을 들은 듯 또 다시 한 국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별을 스치는 바람>을 들고 나타났다.

 

1권.

“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소설의 첫 시작부터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일제치하시절을 다룬 소설의 주인공(화자로써 주요 인물)이 독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국인도 아닌 젊은(또는 어린) 일본인이며,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그는 자신이 지키던 감옥의 간수에서 죄인이 되어 갇힌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의 화자는 갓 스물이 되는 일본 하급 전범, 와타나베 유이치다. 이렇듯 소설은 처음부터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리고 드디어 본 사건으로 들어가는 시간여행이 화자를 통해 시작된다.

후쿠오카 형무소의 폭력 간수 ‘스키야마 도잔의 죽음’. 이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려는 소장의 의도로 나이 어린 유이치가 이 사건을 맡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유이치는 죽은 도잔의 다른 모습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된다. 잔혹하게 죄수들을 다뤘던 스키야마 도잔은 폭력 간수라는 모습 뒤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피아노 조율사가 되었던 순수한 청년이었고, 그 누구보다 글쟁이를 혐오했던 도잔은 사실 윤 동주가 인정했던 ‘시인’이었다.

이러는 와중에 독방에서 발견된 탈출 땅굴.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던 도잔을 어쩔 수 없이 죽였다는 최 치수. 범인이 밝혀지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유이치는 승진까지 한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 유이치에게 하나같이 조선인 죄수들은 더 이상 캐지 말 것을 권한다. 감당하지 못할 진실이라는 듯.

진실처럼 포장해도 거짓은 거짓, 속속들이 모르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유이치는 계속 진실을 파헤치는데….

2권.

도잔의 죽음의 비밀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단 331번 최 치수가 도잔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비밀을 파헤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윤 동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도잔과 동주가 함께 만들었던 비밀의 도서관을 알게 되면서 유이치 역시 도잔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조선인들을 향한 위생검열의 실체가 밝혀지고, 최 치수는 도잔의 살해범으로 사형이 집행된다. 유이치는 어느 것 하나 감당할 수 없는 말단 위치에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양심마저. 그렇게 모든 진실은 감춰진 듯했다. 그런데 여전히 검열관의 업무를 하던 그의 앞에 소장 앞으로 온 발신 주소가 없는 이상한 물건이 도착한다. 소장의 것이기에 굳이 검열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발신인의 특이한 이름, 그리고 331을 뜻하는 중의적인 표현에 최치수를 떠올리고 소장의 물건을 뜯는다.

 

모리오카 교수의 후쿠오카 형무소의 입성은 731부대의 실체를 아는 우리로서는 예측 가능한 사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도잔의 죽음보다 살아 있는 도잔의 실제 모습을 찾아가는데 독자는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며, 히라누마 도주, 즉 윤 동주의 모습을 접하게 됨으로써 저항 시인의 이미지에서, 인간으로서 매력적인 한 사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점점 제 모습을 잃어가는 동주의 모습에서 유이치와 함께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보여주는 소설 속의 이런 이야기가 자세한 조사와 함께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음을 ‘윤동주 연표’를 보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을 때마다 ‘소설이니까~’하며 애써 위로했던 울분이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화자 유이치를 비롯해서 스키야마 도잔, 최 치수, 윤 동주, 이 네 사람이 주요 인물이다. 전면에 내세울 것 같았던 동주보다 오히려 도잔, 최치수의 이야기가 표면을 넓게 차지하며 유이치가 그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독자는 물론 도잔, 유이치를 울리고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단연 ‘동주’다. 그리고 도잔도 그랬듯이, 유이치도 그랬듯이 우리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작가는 <별을 스치는 바람>을 통해 지켜주지 못한 동주를 향한 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후손으로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을 마치 독자에게 전달해주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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