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발의 시대 - 경제혁명, 종교개혁, 르네상스, 그리고 세계를 뒤흔든 40년의 역사
패트릭 와이먼 지음, 장영재 옮김 / 커넥팅(Connecting)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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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7월 천둥과 폭풍우를 헤치며 말을 달리던 22살의 젊은 마르틴은 두려움에 떨며 광부의 수호 성인을 부르며 찾았다.

'성안나여! 이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는다면 곧 바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사되겠습니다' 라고 맹세를 한다.

기적과 같이 천둥번개가 멈추자 이 젊은 마르틴은 경건함과 금욕으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로 들어간다. > 책의 내용 일부 요약.

이 사람이 바로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 대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으로 시작하는 95개조 선언문을 못으로 박아 종교개혁의 첫 도화선을 이끈 '마르틴 루터'  이다.

이책에서는 이와 같은 형식으로 여러 대표적인 인물들을 만날수 있다.

이책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자세히 보면 사실 그 시대를 만드는 일에 서로 연결되어 이어져 있음을 알수있다.

'상상을 현실화한 '콜롬버스', 운명을 개척한 '이사벨라 여왕', 역전의 용사 '베를리힘엔', 최고의 투자자 '아코프 푸거', 출판업자 '마누티우스', 양모상인 '존 해리티지', 오스만투르크 '쉴레이만 대제', 유럽 최고의 금수저이자 주걱턱 대제 '카를 5세' 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책속에서 우리가 잘아는 역사적 인물들로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처음들어 보는 생소한 사람들도 만날수 있다. 마치 <사마천 사기 열전>의 서양 중세판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이책엔 현대에 이르러 <서양이 어떻게 동양보다 더 잘살게 되었나?> 라는 수많은 동서양의 학자들이 갖는 의문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겨져있다.

작가의 이에 대한 대답, <낙후됐었던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 될수 있었던 이유는 1490년에서 1530년 까지 40년의 기간동안에 경제, 정치, 기술, 문화, 사회, 종교가  동시다발적인 발전과 변화가 충돌하고 연결하면서 창발을 일으켰기 때문에 현대 세계의 토대가 되었음>을 제시한다.

즉 작가의 요지는 1490년에서 1530년, 이 40년의 시기가 창발이 일어난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작가의 통찰에 공감할수 있는점은 혁명적인 기술이나 참신한 사건들은 대개 단순히 한가지 원인만으로는 발생할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개의 원인이 동시에 합쳐지고 반응하여 발생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양이 급속도로 앞서나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창발의 시대라 일컫는 시기부터 빌드업을 했다고 통찰한것이다.

이시기에 유럽전체가 르네상스 시기의 인간중심의 사상이 싹을 텄고, 신대륙 발견으로 항해술과 무역업이 발전했으며, 또한 더불어 인쇄술로 인한 지식보급의 확산,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인한 화포의 발달, 게다가 그 모든것의 뒷받침이 될수 있는 금융업이 발달하고 마지막으로 종교개혁까지 이어진것이다.

책의 작가 '패트릭 와이먼' 은 현재는 역사 팟케스트 진행자이다. 

한때는 대학원에서 유전학, 법의학적 분석,동위원소 분석, 전염병 연구를 통해 과학적 분석론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경력이 창발의 시대라는 통찰을 지닌 책으로 나올수 있게 된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에서의 창발의 시기에 우리 동양은 어떠했을까?

작가의 책에는 당시 동양의 상황이 없는것이 유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별도로 동양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먼저 내가 생각하는 동양은 동남아시아를 무시하는것은 아니지만 동양이라 하면 어쩔수 없이 한,중,일 세나라가 중심으로 본다. (물론 인도로 포함할수 있지만 오늘은 일단은 제외하기로 하고...)

그래서 한중일 위주로 살펴보았다.

이 시기때(1490~1530) 우리나라 조선은 9대 성종, 10대 연산군, 11대 중종으로 3대가 이어지는 시기였다.

옆의 명나라도 9대 홍치제, 10대 정덕제, 11대 가정제로 역시 신기하게도

똑같이 3대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이때 일본은 조선과 명처럼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각 지방의 사무라이들의 세력 싸움으로 얽혀있었다. 히데요시가 통일(1585)하기 전까지 혼란의 전국시대였었다.

즉 일본과 달리 조선과 명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조선 임금과 명 황제의 집정시기와 두나라 왕실과 황실의 성향도 서로 이상하리 만치 비슷하게 겹쳐보인다. (둘이 운명 공동체냐? )

이때만 해도 명나라는 단연 세계 최고의 국력이였다.

'창발의 시기'보다 70~80년이나 앞선 시기에 명나라의 환관 '정화' 는 군단(2만 7천명 규모) 을 이끌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원정을 다녔다. (그것도 7차례나.)

명은 콜럼버스가 유럽왕실의 재정을 지원받아 겨우 마련한 몇척의  항해와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로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했다.

조선과 명의 국가초기는 왕권이 안정됐었고 이때 유럽의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국력은 앞선것으로 봐도 될것 같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자세히 조선부터 살펴보면 먼저 9대 성종재위시기 (1469~1495)는 세종대왕 이후의 성군으로 칭송 받을만큼 나라를 안정시키고 잘 다스렸다.

그러나 10대 연산군 재위시기(1495~1506)는 임금이 조선역사상 유래 없는 막장과 폭군짓을 해버린다.

참다못한 신하들에 의해 결국 중종 반정(1506)이 일어난다.

11대 중종 재위시기(1506~1544) 때 왕은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서 조선은 서서히 당파싸움으로 내부의 힘이 결속이 안되고 그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어야 했다.

즉 이시기 부터 조선은 서서히 왕권이 약화되기 시작한것이라 봐도 될것같다.

명도 살펴보면 9대 홍치제 때(1487~1505)는 명의 역대 황제중 성군으로 칭송을 받는다.

이때는 조선의 9대 성종이나 명의 9대 홍치제도 똑같이 성군이란 칭호로 평가한다.

하지만 명도 조선과 비슷하게 그의 아들 10대 정덕제 시기 (1505~1521) 부터 황제가 국정보다 '어떻하면 재미있게 놀까?' 에만 심취한다.

예를 들어 황제가 스스로 1인 2역 놀이에 빠져버린다.

자기가 자기한테 벼슬을 내려 스스로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전쟁에 나가 오랑캐에 직접 토벌하고 공을 세우기까지 한다. 그리고 또 자신에게 상을 내린다. 역대 중국 황제중 가장 독특한 인물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또 막무가내로 황궁을 벗어나 기행을 하고 말리는 신하들을 벌하기도 한다. 그렇게 황제놀이도 질렸는지 뱃놀이를 하다 어찌 물에 빠져 결국 창창한 나이 30에 후손도 없이 황당하게 죽어버렸다.

자손이 없으니 직계도 아닌 방계인 사촌 '가정제(1521~1567)' 가 11대 황제로 등극하게된다.  가정제는 재위기간 내내 도교술에 빠져버린다.

명나라 역사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암군(暗君) 의 시기로 점차 국력이 쇠퇴하는 시기로 향해간다.

결국 서양이 창발의 시대를 겪는동안 일본은 혼란중이고 조선과 중국은 안정기에서 혼란스러운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그 이후 역사를 보면 일본은 노부나가가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으나 '혼노지의 변' 으로 죽게 된다. 바로 그때 혼란한 틈을 탄 그의 부하 히데요시가 일본을 순식간에 장악해 해버린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과한 망상으로 인해 임진왜란을 일으키는 패악질로 한중일 삼국이 혼란에 휩싸인다. 결국 7년 전쟁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다시 통일된다.

그후 막부시대를 거쳐 메이지유신시기 혼란, 일본 제국주의, 일본패망, 다시 현대 일본순으로 거쳤다.

한편 명은 임진왜란을 겪고난 후 얼마 안가서 완전히 멸망해 버린다.

오랑캐 이민족 청이 들어서고 100년간 전성기를 유지하는듯 하다가 외세에 의해 혼란, 결국 청이 망하고, 또 혼란, 그러다 중국이 내전으로 혼란, 최후엔 공산당이 대륙을 차지하여 지금까지로 이어진다.

조선은 임진왜란 시기에 망하지는 않았으나 곧 병자호란을 겪고 이후 쇠망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다가 근대엔 결국 일본에게 치욕적인 식민지 지배, 후에 해방됐으나 다시 6.25사변등을 혼란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게지금까지 이어진 역사이다.

좀 멀리 나가긴 했지만 이렇게 전체를 보면 세상의 이치가 조금 보이는것 같다.

세상의 이치는 혼란과 안정, 다시 혼란, 다시 또 안정으로 반복되는것 아닌가 싶다.

서양적인 사고에서는 시간과 역사는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나 동양적인 사고에서는 시간과 역사는 순환한다. '발전과 쇠퇴', '혼란과 안정' 이란 식으로 길게 보면 세상은 순환하는것이다.

혼란이 있으면 질서가 생긴다. 질서라고 해서 늘 고정된것은 아니다.

물리학의 엔트로피 법칙처럼 다시 또 시간이 흐르면 무질서로 되어 버린다.

혼란은 나쁘고 질서는 좋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게 아니다. 모든것은 변한다.

항상 고정된게 아니다. 혼란속에서 질서를 찾고 , 그 질서를 계속 유지하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동양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게 세상이치라고도 볼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현대 시점으로 봤을때 동양이 서양보다 뒤쳐졌다는 의문은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 아닐까 싶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결국 다 똑같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기근, 전염병을 극복한 현대시기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시대였다면 이제 곧 혼란의 시기를 맞이하는 준비를 해야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이시기(2023)를 우리 후손들이 미래에서 돌아본다면 제 2의 창발의 시기로 부를수도 있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과  GPT와 인공지능의 부상, 지구 온난화와 기후문제, 탈원전문제, 탄소중립문제,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등등 이미 겪고 있는 문제와 다가올 문제들로 혼란을 겪게 되었다. 또한 경제의 성장 둔화, 가짜 뉴스의 범람, 정치와 사회의 양극화, 물질 만능주의의 심화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넘치고 또 넘친다.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절망이 더 앞서 보인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시기인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헤쳐나온것 처럼 역사속에서 답을 찾아보는것도 좋은 방법일것 같다.

안정은 지속되지 않고 곧 무질서가 찾아왔고 혼란스러울 수록 오히려 변화를 통한 발전이 있었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워 보이는 지금이 곧 변화와 발전의 시기일수도, 그러니 절망은 하지 말자.

세상에 대한 공부와 자신을 성찰하는 길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Deus enim et proficuum
(신과 이익을 위하여)
중세 상인의 장부에 흔히 기록된 문구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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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들이 2023-10-04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공이 느껴지며 상당히 알찬 글이네요. 적극 공감합니다.

마힐 2023-10-09 11:10   좋아요 0 | URL
글쓰기가 서툴러 너무 길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 주시고 공감까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