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 이야기 이숲의 과학 만화 시리즈
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 함병주 / 이숲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생각보다 더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 정신질환..

 

   와우북때 망설이다가 못사서 아쉬웠던 [정신병동 이야기]를 이제야 만났습니다. 워낙 제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특히 노여사가 흥미있어 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대릴 커닝엄은 책의 말미에도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밝히지만 저자 스스로도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워낙 심약한 사람입니다. 오랜 기간 세상에 적응 못하고 살아가다가 정신병동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온라인을 통해 그림을 올려던 것이 사람들의 폭팔적인 반응과 지지를 얻으면서 일약 스타가 된 케이스입니다.

 

   세상에 일이 되려고 하면 이런식으로 풀려나가는 것인가 봅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오는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여튼 그런 이유로 이 만화가 탄생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실상 저자는 상당히 간단한 만화들을 욕심없이 그려나갔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 출간되면서 짧은 만화 에피소드 뒤에 해설이라는 형식으로 고대안암병원 정신과 의사이신 함병주 박사님(대충 박사겠지뭐..)의 설명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 해설이 사실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짧고 간결한 만화의 사족이 될 수도 있고, 좀더 폭넓은 이해를 돕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사정을 덧붙여 설명하기 때문에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이 [정신병동 이야기]이니 만큼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들은 대표적인 정신병리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치매, 망상, 자해, 정신분열, 조울증, 자살충동 등입니다. 이 책은 정보전달에 목적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짧고 간결하게 각 현상에 대해 정확한 정의와 실제적인 증상, 치료양상 등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에피소드들은 소개하면서 저자는 정신질환도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시선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 하는 듯 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치매 에피소드를 보다보니 얼마전 읽었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가 떠올랐습니다. 페코로스에서는 주인공이 치매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따뜻하고 긍정적이어서 밝은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독특한 만화였다면(그러고 보니 둘다 만화 스토리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치매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우울합니다. 아마도 저자의 성향과 태도와 관계가 있는 듯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정신질환들이 좀더 객관화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너무 심각하지 않게 처리하려는 노력도 옅보이곤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견과 선입관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정신질환에 고통받으면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정신질환이라는 것이 이를테면 그냥 감기나 관절염, 당뇨병 등등 당연히 치료받는 질환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의외로 정신질환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런 멘트를 하면서 '혹시 나를 미친놈인가? 또는 정신질환이 있나?'하고 생각할까봐 걱정한다던지 하면 안된다는 말이라니까는...)

 

 

#2. 이상하게 매료되는 그의 그림체와 에피소드들...

 

   이 분의 그림이 참 독특합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적인 회화체도 아니고 상당히 절제되고 생략된 형태의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이 책의 분위기는 이 그림체가 좌우하는 듯합니다.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단순화된 그림으로 캐릭터를 살리고 느낌을 살린다는 것은 상당한 재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만화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단순 간략화된 그림과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글이 어울려 정보전달 기능을 충실히 해줍니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들에 녹아있는 등장인물간의 대화가 은근히 매력적이고 때로는 상당히 웃음을 자아냅니다. 유머 코드가 살짝 숨어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저자의 성향이라 생각됩니다. 사람들을 대하면 말할 수 없이 수줍어하지만 사실은 위트와 유머가 넘칩니다. 그러기에 조심스럽게 에피소드속에 이런 코드를 녹여두는 것이죠. 대놓고는 못하니깐^^

 

   이상하게도 매력이 있고 거부감이 안드는 것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경험담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히 쓰고 그렸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저자가 일하면서 환자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고 마음을 썼다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본인이 비슷한 어려움을 충분히 겪어 보았기 때문에 통상 직업인이 가지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웠겠지만 오히려 그런 사실 때문에 독자에게 충분한 공감을 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 쉽게 설명해서 알아듣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설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전문용어 없이, 어려운 표현 없이 꼭 필요한 사항만 정확히 전달해주는 간결성입니다. 여러가지 정신질환에 대해서 한번쯤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합니다.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을 그 환자의 관점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저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저 환자의 가족이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자연히 하게 만들어 줍니다. 참 쉽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내가 이런 정신질환의 증상들이 나타나면 꼭 초기에 정신과를 찾아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내 주변에 저런 전조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꼭 치료받도록 권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열린 마음과 태도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을 들여 읽은 책 치고는 상당한 정보와 태도의 변화를 갖게 해준 것 만으로도 이 만화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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