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간 - 초라하고 눈부신
아거 지음 / KONG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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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을 읽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인간 군집 속에서 타인의 행동 양식을 본능적으로 배워 답습합니다. 이런 사회화의 과정에 유사 복제가 가능한 사람은 인간 사회의 한 일원으로 무난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건 이런 흉내 내기가 무난하게 안되는 인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인간에게 타인은 불편함 또는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아거님은 쉽지 않은 미로 같은 인간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기대하는 대로 삶이 잘 풀려나가지 않을 때,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혼란하고 난감한 인생의 문제 앞에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정답을 추구하고 그 해답을 인간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이런 일련의 태도는 답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들 모두가 언제나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속이고 괴롭히고 배신하고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가 되어 위축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좋은 인간들 사이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인간도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인간과 부대끼며 답을 찾아나가야 하지만 대책 없이 마냥 부딪히기는 위험 부담이 큽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책입니다. 책을 통해 저자의 생각과 주장, 경험을 간접 흡수할 수 있습니다. 소설 작품 속 등장인물이 사건을 겪으며 형성되는 자아와 타인과의 관계 등을 통해 인간을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책 속 인물 그 자체를 통해 인간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을 배우는 것은 인간을 읽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 [어떤 인간]을 통해 28권의 책 속에서 만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때로는 책의 내용에 집중하고 때로는 책 속 특정 문장에서 얻은 본인의 영감을 풀어내기도 합니다. [어떤 인간]은 책을 통해 습득한 간접 경험과 저자의 직접 경험이 어우러진 인간 탐구 보고서와 같습니다. 이 책의 구성 자체만으로 인간을 읽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됩니다.



2. '나'를 읽다.

인간을 알아가기 위해 책으로 학습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고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간을 배우기에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배웠어요"는 실제와 동떨어진 이론만 습득한 어설픈 인간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속에서 영감을 얻고 다양한 배경지식을 얻는 것은 좋으나, 쓸모 있는 지식이 되려면 '현실 속 인간'과 '나'에 대한 성찰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나'를 이해하는 과정은 오롯이 본인의 몫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책을 통해 얻은 영감은 서서히 흩어지는 모래가 되어 단단한 이론으로 형성되지 못합니다. [어떤 인간]이 좋은 점은 개개인이 책임지고 각자도생으로 해나가야 할 인간에 대한 성찰의 과정조차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가 책 속에 서술한 방식을 각자에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독서를 통해 책 속에 나타난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만납니다. 이들에게서 캐치한 인간의 면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28편의 에피소드를 차례차례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인간을 배워나가는지 학습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복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흉내 내기를 통해 배워나가는 존재입니다. 독자보다 앞서 먼저 고민해둔 저자의 흔적을 핥핥하며 빨아먹을 수 있어 꿀입니다.


다양한 매체, 이를테면 관찰 예능 같은 경로를 통해 가볍고 매력적인 인간들을 볼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통통 튀는 매력적인 인간들도 통상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하고 우울한 경우가 많습니다. 관찰 예능 속 모습이 본연의 모습일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매체를 통해 만나는 인간들은 대체로 만들어진 자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간을 알고 싶다면 본연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저자는 매우 본연에 가까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장에는 그 인간의 지문처럼 숨길 수 없는 자기만의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 책 속에 드러난 저자의 사고 체계가 좋습니다. 솔직히 쿨하고 재미있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진중하고 모범적인 모습이 느껴집니다. 바른 것을 추구하는 태도가 좋습니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통해 독자인 저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 '책'을 읽다.

책이라는 매체는 참 골치가 아픕니다. 나에게 허락된 아주 짧은 독서의 시간을 어떤 책으로 채울지 결정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좋은 책인 것 같은데 재미는 없을 것 같고, 잘 읽힐 것 같은데 남는 것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투자해야 할 물리적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확인하려면 끝까지 읽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나쁜 책을 골라내는 방법은 가능하기는 합니다. 서문만 읽어보아도, 책은 전반부만 읽어도 더 이상 읽을 이유가 없는 책으로 판정을 내릴 경우도 있습니다. 한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목차만 훑어봐도 끝까지 독파할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서의 속도도 점점 빨리 지게 됩니다.


여기서 책이 좋다, 나쁘다는 절대평가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누가 대신 정해주기도 어려운 것이지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리뷰처럼 이 책을 높이 평가했는데 어느 누군가는 같은 책을 읽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누가 맞다고 말할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평서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책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며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대하면서 저자가 어떻게 읽었고, 어느 지점에 주목했는지, 어떻게 해석해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관찰해나가면서 독자들이 읽어봐야 할 책인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저자의 서술이 독자인 나에게도 울림이 된다면 저자가 소개한 책은 나의 독서 목록에 리스트업하면 됩니다. 그중 더 강렬하게 와닿는 책이 있다면 리스트의 상단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이라는 책이 양서를 선택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이 이미 읽은 작품이라면 저자의 이야기가 더 깊이 와닿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아직 읽은 적이 없는 책이라면 추후 읽어보면서 저자의 평가와 생각, 착안점이 나와는 어느 지점이 유사한지, 또는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이 있는 독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나에 대한 통찰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해 정의하기 어려운 분들, 나에 대해서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으신 분들, 인생이 힘들고 괴로운 분들이 계신다면 이 책과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 책에 어떤 작품이 소개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 줄도 인용을 하지 않고 마무리하는 저 같은 규격 외 리뷰를 읽으시면서 책 내용이 드럽게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한 번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혹시 읽으시고 기대와 달랐다면 저를 원망하지 마시고 인간이 원래 그렇게 다양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으시니 어떻게 해도 손해는 아닌 장사일 거라 생각됩니다.



덧) 책 제목이 [어떤 인간]이다 보니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부득불 "인간"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어색하지만 나름 책 제목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고 "인간"이라는 용어만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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