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이 사라졌다! 서사원 저학년 동화 1
윤선아 지음, 노아(조히) 그림 / 서사원주니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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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어도 아이는 때때로 재미있는 말실수를 한다. '갑작스럽게' 대신 "깜작스럽게"라는 말을 불쑥하고, '깜빡깜빡' 대신 "빠까빠까"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이의 그런 실수 앞에 나는 와르르 무너지며 함박미소를 터뜨린다. 지금 아니면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은 귀여움을 1초라도 더 붙잡고 싶어 글로, 사진으로 기록한다. 잠깐만.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갑자기, 이런 식의 장난스러운 실수가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ㄱ이 사라졌다]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상상과 연결되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가방은 나방이 되고 개미는 매미가 되었고 강아지는 망아지가, 고기는 오이가 되어버렸다. 하루아침에 날벼락같이 일어난 변화. 거기에는 'ㄱ'이 숨어있다. 이 세상의 'ㄱ'이 모두 사라졌다. 아이들이 글자를 배울 때 아마도 높은 확률로 빨리 접하고 배우게 될 그 'ㄱ' 말이다. 왜? 어째서? 'ㄱ'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걸까? 나의 벗, 강아지는 평생 망아지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할까? (엔딩은 비밀! 책으로 읽어보아요!)


얼마 전 아이는 [글자 먹는 고양이]를 읽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이 책을 연달아 읽으며 글자 그러니까 활자 그 자체에 대해서, 그리고 그 활자가 표현하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다른 감각들로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ㄱ' 대신 들어온 자음들이 만든 신박한 단어 장난에 깔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ㄱ'을 마음대로 바꾸어 다른 단어로 변신하는 놀이도 시도했다(물론 꽤 어려워서 금방 포기했다). 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 에 몰입한 나머지 급히 이야기를 읽어가는 나와는 달리(결론이 궁금했다!) 아이는 매 순간 그 상황들에 머무르며 만끽하고 즐겼다. 이제 막 글자를 접할 시기의 아이들에게도 재미있는 접근이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도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글자들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고 또 즐겨 쓰기 시작한 아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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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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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설명 없이 글만을 읽고도 그 글을 쓴 이가 번뜩 떠오르는 것만큼 작가에게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만큼 고유의 빛이 가득하다는 것인데,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 바로 김멜라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번 책, 환희의 책도 그랬다.


글을 끌고 나가는 화자가 인간이 아니다.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가 연구원이자 저술가가 되어 연인인 ‘버들’과 ‘호랑’의 사계절을 곤충의 시점으로 관찰한다. 인간을 ‘두발이엄지’라고 부르는 그들은 매우 상세하고도 깊이 있게 둘을 살피고 기록하고 또 궁금해한다. 그들의 관찰기를 엿보는 우리는 또 무엇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


📍죽고 싶은 호랑의 마음을 재단하거나 멸시하지 않았지. 내팽개치거나 어서 등 뒤로 감추라고 겁을 주지도 않았어. 호랑의 가슴에 흐르는 흙탕물이 고여서 썩지 않게, 다시 굽이쳐 흐르게, 태산 같고 하마 같은 궁둥이로 죽음을 깔고 앉아 서로가 원하는 걸 채워주었지. (50p)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그것이 호랑이 이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였다. 그것이 호랑이 버들의 옷과 신발을 정리하며 버들의 욕망과 버들의 상처, 버들의 조증을 이해하려는 이유였다. (107p)


묵직하고도 더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사랑의 결정체를 길어올린다. 서로가 서로의 무덤이 되어주고 서로의 존재를 믿어주는 호랑과 버들이라는 두발이 엄지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면밀히 살피고 기록하는 곤충들의 시선에도 묵묵히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곡해없이 읽어주고 믿어주는 사랑이 묻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가진 시선과 마음으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생각을 내내 했다. 이윽고 ’환희의 책‘이라는 제목이 조금 더 선명하게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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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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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의 등대지기, 섬의 유일한 인간, 70대 노인, 그의 이름은 새뮤얼. 오랜기간 혼자였음에도 전혀 외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다가 육지에서의 사회생활보다 자신만이 일구어낸 섬 생활에 대한 자부심까지 느껴지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자와 행간에 고독과 고집이 어둡게 그리고 촘촘히 깔려 있다고 느끼며 읽었다. 그래서일까, 내내 긴장한 상태로 마음 졸이며 읽었다. 눈과 머리를 재촉하며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넘어갔다. 끝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사회 및 정치에 대한 풍자가 그득하지만 그 부분은 논외로 한다. 내게 더 짙게 남은 정서는 다른 쪽이다. 이 책은 내내 나에게 한 사람이 어떻게 섬이 되어가는지에 대해 말했다. 구석인간을 자처하듯 섬이 되기를 자처한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쫓는다. 거칠고 생생한 질감으로 그 모든 감정과 사유가 흐른다. 어느 날, 낯선 이의 등장으로 그의 세계가 송두리 째 흔들린다. 이 섬에 흘러든 젊고 커다란 생명. 새뮤얼은 그와 함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고립된 삶으로 나아갈까.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해당 내용은 책을 꼭! 읽어서 마주하시기를!)


등대지기로서의 삶은 새뮤얼, 그가 온전히 만끽하고 누리는 평화가 아니었을까. 자꾸만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기회이자 터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뮤얼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가 떠올랐다. 전반적인 상황이나 서사,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립되기를 자처한 한 인간의 생은 더없이 모순적이고 쓸쓸하다. 가을 초입에 무척이나 어울릴 만한 이야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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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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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과의 관계를 질투한 아테나의 저주로 머리에 여러 마리 뱀이 달린 괴물, 메두사. 눈이 마주치면 돌로 변해버리고 만다는 무서운 이야기. 페르세우스의 손에 머리가 잘리고 만 비운의 괴물. 메두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정말 메두사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을까? 이 이 책을 펼치고 나면 그 너머의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아니, 바라보아야만 한다.


📍기억은 축복이면서 또한 저주다. 나쁜 기억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후회 없는 삶이란 제대로 살지 않은 삶뿐.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그것이 당신을 당신답게 한다. (109p)


메두사라는 이름의 어원은 ‘지배하는 자’라고 한다. 책에서 들려주는 메두사 이야기도 곧 그 어원과 결이 같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가 단숨에 쏟아져 내린다. 흥미로운 신화 이야기의 비하인드 혹은 재미있게 상상해 보는 신화 같은 것들을 기대하지 않기를. 사회 고발에 가까운 무수한 단어, 문장, 서사를 따라가며 자꾸만 세로로 길게 벌어지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틀에 나를 끼워 맞추고 싶었겠지. 그래야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 (83p)


📍“페르세우스, 어떤 여자가 아름다우면,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이 자기들 소유라고 생각해. 그 여자가 자기들 쾌락을 위해 존재하고, 자기들이 그 아름다움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당연히 그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86p)


부당하게 벌 받은 모든 여성들에 부치는 편지. 진한 울림으로 전하는 단단한 응원의 메세지. 낡고 비루한 신화를 벗어나 진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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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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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얇다란 책에 실려있는 6편의 단편(TV 피플, 비행기,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 가노 크레타, 좀비, 잠) 중 어느 것 하나 평범한 단편이 없다. 읽는 내내 현실과 환상 그 어드메를 헤매고 있는 착각을 일으켰다.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가 갑자기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예고도 없이 불쑥 끼어든다. 불청객 같은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손끝과 발끝이 저릿해짐을 느낀다. 어지럽다.

문학적 가치 같은 것을 논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럴 깜냥도 없고. 다만 그간 읽었던 몇 안 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감정가로 끄집어내고 보니 그것은 공포이기도, 불안이기도 했다. 문제는 '자, 지금부터 널 괴롭힐 거야!' 작정하고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침 식사했어요?' 일상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속에 이질적인 장치들이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는 것이었다. 머리카락 끝까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낀다.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도, 피할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저자는 개인적으로 <TV 피플>과 <잠>을 자신의 최고 단편으로 꼽았다는데 내게는 <비행기>와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가 보다 인상 깊게 남았다. 마음에 남는 잔상이 짙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스무 살 남자가 스물일곱 살의 결혼한 여자와 나눈 밀회를 회상하며 그 여자가 남자 자신도 새카맣고 모르고 있던 자신의 혼잣말을 들려주는 이야기 <비행기>, 1960년대 고등학생 시절 순결을 굳게 지키려던 첫사랑 여학생과의 연애가 끝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자유, 과거, 사랑, 고독, 단절 같은 단어들이 시나브로 샘솟는 것을 그저 지켜보며 즐겼다.

책을 덮자마자 누구든 좋으니 당장 이 책을 읽은 다른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길어올린 단상들에 대해 글을 써 내려가고 싶은 충동도 올라왔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열어 환기시켜 준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게 이 책은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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