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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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의 등대지기, 섬의 유일한 인간, 70대 노인, 그의 이름은 새뮤얼. 오랜기간 혼자였음에도 전혀 외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다가 육지에서의 사회생활보다 자신만이 일구어낸 섬 생활에 대한 자부심까지 느껴지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자와 행간에 고독과 고집이 어둡게 그리고 촘촘히 깔려 있다고 느끼며 읽었다. 그래서일까, 내내 긴장한 상태로 마음 졸이며 읽었다. 눈과 머리를 재촉하며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넘어갔다. 끝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사회 및 정치에 대한 풍자가 그득하지만 그 부분은 논외로 한다. 내게 더 짙게 남은 정서는 다른 쪽이다. 이 책은 내내 나에게 한 사람이 어떻게 섬이 되어가는지에 대해 말했다. 구석인간을 자처하듯 섬이 되기를 자처한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쫓는다. 거칠고 생생한 질감으로 그 모든 감정과 사유가 흐른다. 어느 날, 낯선 이의 등장으로 그의 세계가 송두리 째 흔들린다. 이 섬에 흘러든 젊고 커다란 생명. 새뮤얼은 그와 함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고립된 삶으로 나아갈까.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해당 내용은 책을 꼭! 읽어서 마주하시기를!)


등대지기로서의 삶은 새뮤얼, 그가 온전히 만끽하고 누리는 평화가 아니었을까. 자꾸만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기회이자 터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뮤얼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가 떠올랐다. 전반적인 상황이나 서사,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립되기를 자처한 한 인간의 생은 더없이 모순적이고 쓸쓸하다. 가을 초입에 무척이나 어울릴 만한 이야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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