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수학 A 데카 융합수학 1
켈리 피어슨 지음, 강미선 옮김 / 서사원주니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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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가상이지만)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각자의 생김새를 따라 갈이, 살구, 요미, 여우라고 이름도 붙였다. 입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5주간 이 고양이들의 임시 보호처가 되어주기로 했다.


한글 공부를 공룡이름으로 정복한 적 있다. 아이는 확실히 제가 좋아하는 것에는 (그것이 공부라고 특별히 인식하기보다는) 높은 흥미를 보인다. 이번에는 고양이 키우기로 즐겁게 수학을 한다. 평소 같으면 분량을 따지거나 시계를 보기 바빴을 아이가 잔뜩 신나서 더, 더를 외친다. 깔깔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고양이 수학 A는 초등 2학년과 3학년이 대상이다. 날짜 계산, 두 자리 수 덧셈, 어림, 그래프, 나눗셈, 시간, 비율, 뺄셈을 다룬다. 이 책 덕에 날짜나 달력에 관한 수학적 접근을 제법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고양이의 생일과 입양 가능일을 찾는 과정에서 일주일 뒤의 날짜는 7씩 더해진다는 것이라든가, 매 달의 마지막 날이 30일인지 31일인지는 어떻게 기억하는지 하는 것들을 시나브로 익혔다. (아직 그래프까진 안 갔는데 … 기대된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수학책이다.


학습으로서의 공부는 사실 인생에서 접할 공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기왕 해야만 하는 기본 학습, 피할 수 없다면 즐겁고 신나게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고양이 필통까지 찾아와 고양이 표정을 따라하는 아이의 얼굴에서 이 교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잘’ 하는 것보다 ‘즐겁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학습 장기전. 이 책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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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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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귀여울 필요가 있나 싶게 귀엽고 가벼운 판형의 책을 손에 들면 괜히 기분이 들뜬다. 달콤하고 쫀득한 디저트들을 하나 둘 떠올리다 보니 입 안이 달큼해진다. 체중 조절이나 건강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다지 달콤한 것을 즐기지 않지만 이건 책이니까. 이런 소재의 책은 몹시 구미가 당긴다.


다섯 작가가 한 권에 모였다. 각기 다른 매력의 디저트로 중무장하고서. 입 안 가득 문 달콤한 디저트들이 녹아내릴 때까지 그것들을 가득 머금고 차분히 기다리면 그 속에 숨어있던 고통, 슬픔, 상실, 후회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정체를 드러낸다. 달콤함 뒤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하나씩 맛볼 수 있는 소설, 여러모로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 후 가볍게 달콤한 젤리를 입어 털어 넣듯 심드렁하게 또 편안하게 펼쳤다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들에 마음이 일렁일 책이다. 몸이 살찌는 디저트 대신 마음이 살찌는 이 책,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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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이 사라졌다! 서사원 저학년 동화 1
윤선아 지음, 노아(조히) 그림 / 서사원주니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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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어도 아이는 때때로 재미있는 말실수를 한다. '갑작스럽게' 대신 "깜작스럽게"라는 말을 불쑥하고, '깜빡깜빡' 대신 "빠까빠까"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이의 그런 실수 앞에 나는 와르르 무너지며 함박미소를 터뜨린다. 지금 아니면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은 귀여움을 1초라도 더 붙잡고 싶어 글로, 사진으로 기록한다. 잠깐만.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갑자기, 이런 식의 장난스러운 실수가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ㄱ이 사라졌다]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상상과 연결되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가방은 나방이 되고 개미는 매미가 되었고 강아지는 망아지가, 고기는 오이가 되어버렸다. 하루아침에 날벼락같이 일어난 변화. 거기에는 'ㄱ'이 숨어있다. 이 세상의 'ㄱ'이 모두 사라졌다. 아이들이 글자를 배울 때 아마도 높은 확률로 빨리 접하고 배우게 될 그 'ㄱ' 말이다. 왜? 어째서? 'ㄱ'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걸까? 나의 벗, 강아지는 평생 망아지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할까? (엔딩은 비밀! 책으로 읽어보아요!)


얼마 전 아이는 [글자 먹는 고양이]를 읽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이 책을 연달아 읽으며 글자 그러니까 활자 그 자체에 대해서, 그리고 그 활자가 표현하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다른 감각들로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ㄱ' 대신 들어온 자음들이 만든 신박한 단어 장난에 깔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ㄱ'을 마음대로 바꾸어 다른 단어로 변신하는 놀이도 시도했다(물론 꽤 어려워서 금방 포기했다). 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 에 몰입한 나머지 급히 이야기를 읽어가는 나와는 달리(결론이 궁금했다!) 아이는 매 순간 그 상황들에 머무르며 만끽하고 즐겼다. 이제 막 글자를 접할 시기의 아이들에게도 재미있는 접근이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도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글자들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고 또 즐겨 쓰기 시작한 아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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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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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설명 없이 글만을 읽고도 그 글을 쓴 이가 번뜩 떠오르는 것만큼 작가에게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만큼 고유의 빛이 가득하다는 것인데,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 바로 김멜라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번 책, 환희의 책도 그랬다.


글을 끌고 나가는 화자가 인간이 아니다.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가 연구원이자 저술가가 되어 연인인 ‘버들’과 ‘호랑’의 사계절을 곤충의 시점으로 관찰한다. 인간을 ‘두발이엄지’라고 부르는 그들은 매우 상세하고도 깊이 있게 둘을 살피고 기록하고 또 궁금해한다. 그들의 관찰기를 엿보는 우리는 또 무엇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


📍죽고 싶은 호랑의 마음을 재단하거나 멸시하지 않았지. 내팽개치거나 어서 등 뒤로 감추라고 겁을 주지도 않았어. 호랑의 가슴에 흐르는 흙탕물이 고여서 썩지 않게, 다시 굽이쳐 흐르게, 태산 같고 하마 같은 궁둥이로 죽음을 깔고 앉아 서로가 원하는 걸 채워주었지. (50p)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그것이 호랑이 이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였다. 그것이 호랑이 버들의 옷과 신발을 정리하며 버들의 욕망과 버들의 상처, 버들의 조증을 이해하려는 이유였다. (107p)


묵직하고도 더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사랑의 결정체를 길어올린다. 서로가 서로의 무덤이 되어주고 서로의 존재를 믿어주는 호랑과 버들이라는 두발이 엄지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면밀히 살피고 기록하는 곤충들의 시선에도 묵묵히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곡해없이 읽어주고 믿어주는 사랑이 묻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가진 시선과 마음으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생각을 내내 했다. 이윽고 ’환희의 책‘이라는 제목이 조금 더 선명하게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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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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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의 등대지기, 섬의 유일한 인간, 70대 노인, 그의 이름은 새뮤얼. 오랜기간 혼자였음에도 전혀 외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다가 육지에서의 사회생활보다 자신만이 일구어낸 섬 생활에 대한 자부심까지 느껴지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자와 행간에 고독과 고집이 어둡게 그리고 촘촘히 깔려 있다고 느끼며 읽었다. 그래서일까, 내내 긴장한 상태로 마음 졸이며 읽었다. 눈과 머리를 재촉하며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넘어갔다. 끝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사회 및 정치에 대한 풍자가 그득하지만 그 부분은 논외로 한다. 내게 더 짙게 남은 정서는 다른 쪽이다. 이 책은 내내 나에게 한 사람이 어떻게 섬이 되어가는지에 대해 말했다. 구석인간을 자처하듯 섬이 되기를 자처한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쫓는다. 거칠고 생생한 질감으로 그 모든 감정과 사유가 흐른다. 어느 날, 낯선 이의 등장으로 그의 세계가 송두리 째 흔들린다. 이 섬에 흘러든 젊고 커다란 생명. 새뮤얼은 그와 함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고립된 삶으로 나아갈까.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해당 내용은 책을 꼭! 읽어서 마주하시기를!)


등대지기로서의 삶은 새뮤얼, 그가 온전히 만끽하고 누리는 평화가 아니었을까. 자꾸만 불쑥불쑥 튀어오르는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기회이자 터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뮤얼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가 떠올랐다. 전반적인 상황이나 서사,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립되기를 자처한 한 인간의 생은 더없이 모순적이고 쓸쓸하다. 가을 초입에 무척이나 어울릴 만한 이야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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