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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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설명 없이 글만을 읽고도 그 글을 쓴 이가 번뜩 떠오르는 것만큼 작가에게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만큼 고유의 빛이 가득하다는 것인데,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 바로 김멜라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번 책, 환희의 책도 그랬다.


글을 끌고 나가는 화자가 인간이 아니다. 톡토기와 거미, 그리고 모기가 연구원이자 저술가가 되어 연인인 ‘버들’과 ‘호랑’의 사계절을 곤충의 시점으로 관찰한다. 인간을 ‘두발이엄지’라고 부르는 그들은 매우 상세하고도 깊이 있게 둘을 살피고 기록하고 또 궁금해한다. 그들의 관찰기를 엿보는 우리는 또 무엇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


📍죽고 싶은 호랑의 마음을 재단하거나 멸시하지 않았지. 내팽개치거나 어서 등 뒤로 감추라고 겁을 주지도 않았어. 호랑의 가슴에 흐르는 흙탕물이 고여서 썩지 않게, 다시 굽이쳐 흐르게, 태산 같고 하마 같은 궁둥이로 죽음을 깔고 앉아 서로가 원하는 걸 채워주었지. (50p)


📍세상엔 한시라도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돌이’가 많았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라도, 세상은 버들을 만들어 호랑의 곁에 보내주었다. 그것이 호랑이 이 세상이 증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였다. 그것이 호랑이 버들의 옷과 신발을 정리하며 버들의 욕망과 버들의 상처, 버들의 조증을 이해하려는 이유였다. (107p)


묵직하고도 더없이 순수하고 투명한 사랑의 결정체를 길어올린다. 서로가 서로의 무덤이 되어주고 서로의 존재를 믿어주는 호랑과 버들이라는 두발이 엄지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면밀히 살피고 기록하는 곤충들의 시선에도 묵묵히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곡해없이 읽어주고 믿어주는 사랑이 묻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가진 시선과 마음으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생각을 내내 했다. 이윽고 ’환희의 책‘이라는 제목이 조금 더 선명하게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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