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2 - 2세의 귀환 유정천 가족 2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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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디즈니 플러스(OTT)에서 에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을 몹시 흥미롭게 보았다. 이 책을 읽는데 자꾸만 그 에니메이션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유정천 가족 1]에서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덴구의 2세가 귀환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둔갑술이 풀려 퐁! 하고 튀어나오는 퐁실퐁실한 너구리 꼬리들 때문일까. 첫 번째 시리즈 만큼이나 재미있는 두 번째 시리즈였다. 왜 일본에서 에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되었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인간은 추잡하고 무섭다.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에서 서로 속고 속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력을 갈고닦아 ’세상만사 속느냐 속이느냐‘라고 어중간하게 깨달음을 얻은 인간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덴구들이 험준한 오만의 산에서 침을 뱉고 너구리들이 바보의 평야를 때굴때굴 굴러다니는 동안, 묵묵히 사기 기술을 연마해온 인간들을 얕보면 안 된다. (138p)


📍“자신로부터 도망쳐 다시 자신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너구리였다는 사실을 잊고, 고향을 잊고, 그리운 어머니 얼굴을 잊고,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 얼굴을 잊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무엇이 남나. 그저 불어가는 바람이 있고, 반짝이는 숲이 있고, 쏟아지는 비가 있을 뿐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버릴 각오가 있어야 본디의 자신이 보이는 법.” (348p)


두 권의 시리즈를 읽으며 건져올린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삶에 대한 철학이었다. 우스꽝스럽고 바보의 피가 흐르는, 그래서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이 다채로운 너구리들의 삶을 가벼이 따라가다보면, 어라? 마음이 일렁이는 지점들을 만난다. 지난 번에는 가족의 사랑, 유대를 주로 떠올렸다면 이번에는 사랑이었다. 꼭 이성과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고 마는 모든 형태의 사랑 말이다.


상당히 가독성이 높다. 책의 두께에 겁 먹은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매우 빠른 속도로 완독이 가능하다. 첫 번째 시리즈보다 두 번째 시리즈를 더 빠르게 읽은 걸 보면, 다음 시리즈는 보나마나 훨씬 더 몰입할 것임에 분명하다. 벌써부터 세 번째 시리즈가 내게 풀어낼 이야기가 궁금하다. 머리가 짧아져 울상짓던 반 인간, 반 덴구 벤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풀리지 않을까 홀로 상상도 해 본다. 즐겁게, 그러나 가볍지는 않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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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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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말고 검색부터 했다. 책에는 단 한 번도 유정천이라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유정천은 불교 용어로, 기뻐서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다, 너구리 가족이다. 일명 ‘바보의 피’가 흐른다는 시모가모 너구리 일가 말이다.


인간으로 둔갑한 너구리들, 일본 요괴의 텐구, 그리고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교토. 너구리와 텐구, 인간들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캐릭터가 펼치는 기상천외한 코미디가 이 책 그 자체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가족애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을 기록하고 싶다. 처음 책을 펼칠 때만 해도 낯선 소재와 배경을 따라잡기 급급했으나 중반부를 넘길 때쯤엔 그 속에 담뿍 스며들어 고개를 주억거리는 내가 있었다.


📍이 세상에 널린 ’고민거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어찌 되건 별 지장 없는 고민. 또 하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 이 두 부류 고민의 공통점은 괴로워하는 만큼 손해라는 사실이다. 애써서 해결될 일이라면 고민할 시간에 노력하는 것이 최고다.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노력해봤자 헛수고다.(78p)


📍이 세상과 작별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위대한 그 피를 정확하게 넷으로 나누어 주었다. 큰형은 책임감만 이어받았고, 작은형은 느긋한 성격만 물려받았으며, 동생은 순진함만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러움만. 완전히 제각각인 형제들을 이어주는 것은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사랑과 위대한 아버지와의 이별이다. 위대한 이별 하나가 남은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도 있다.(220p)


📍바보라서 숭고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긍지로 삼는다. 춤추는 바보로 보이는 바보. 같은 바보라도 춤추는 바보가 낫다고 한다. 그렇다면 멋지게 춤추면 된다. 우리 몸속에 매우 진한 ’바보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한 번도 창피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이 태평성대를 살아가며 맛보는 기쁨이나 슬픔도 모두 이 바보의 피가 가져다주는 것이다.(274p)


< 유정천 가족 > 시리즈는 모두 3부작으로,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개정판 『유정천 가족 1』과 신작인 『유정천 가족 2 - 2세의 귀환』을 내놓았다. 3권은 현재 작가가 열심히 집필 중이라고 한다. 부디 이 시리즈가 많은 사랑을 받기를, 그래서 남은 3권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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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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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춥다. 서서히 추워지지 않고 단 번에 영하의 기온을 훅 찍어대는 바람에 그 추위가 더 유난스럽게 느껴진다. 양 손 손가락 끝 두 개 마디가 동상에 걸린 경험이 있는 나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다. 가을부터 코 끝은 진즉에 냉랭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툴툴거림 없이 묵직하게 겨울을 보내는데, 어김없이 돌아올 봄을 알기 때문이다.


조해진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이토록 멋진 작가를 나는 왜 이제야 만났을까, 아쉬움이 가득하다. 계속해서 내 머리를, 심장을 강렬하게 내려치는 표현들에 말초신경까지 저릿저릿하게 아찔함이 울려 퍼졌다. 어쩌면 지독하게 무거운 슬픔을, 고즈넉한 분위기로 나열할 수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한없이 아름답고 고요하다.


엄마의 죽음 이후 춥고 쓸쓸한 겨울에 내던져진 첫째 딸 정연의 시간을 함께 걸었다. 기억 속이든 실재하는 세상에서든 다양한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는 엄마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당도한 길의 끝에는 결국 햇살과도 따스한 봄의 기운이 수줍게 피어오른다. 진정한 의미의 애도에 관하여, 홀 로서기를 가능케하는 힘에 관하여, 언제고 찾아올 인생의 겨울과 봄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다듬고 또 마음 다해 껴안았다. 처절하고도 고독한 슬픔이 전부일 줄 알았던 이 책은 그 무엇보다 반짝이는 희망으로 남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내 코 끝에 봄 내음이 몽근하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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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6 - 하품이의 가족을 찾아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6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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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기부터 쭉 이어지던 그림책 독서는 아이가 8살이 되어도 여전했다. 그림책으로 가득한 우리만의 독서 시간이 쌓이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책이 [고양히 해결사 깜냥]이었다. 마침 아이는 텔레비전 만화 중에 추리물(코난, 괴도)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참이었다. 아이가 사랑하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해결사라니. 아이의 이목을 끌기에 딱이었다.


혹시나, 하고 펼친 책은 아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림보다 글의 비중이 훨씬 많은 책인데도 아이가 내 곁을 지키고 앉아 이야기게 오랜 시간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볼 거리가 없으면 금방 집중력이 떨어질 거라던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가 처음 펼친 책은 깜냥 시리즈 2권이었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우리는 그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었다. 아이와 나눌 수 있는 책의 범위가 한층 더 넓어진 셈이었다. 그 날부터 아이의 깜냥 앓이가 시작됐다. 도서관에서 무조건 대출예약을 걸고, 눈에 보이는 대로 빌려와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깜냥 시리즈 5권을 마지막으로 덮을 때 아이가 얼마나 깊이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동시에 “그럼 다음 6편은 하품이도 함께 나오겠네? 같이 여행 떠나는 거 맞지?” 기대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기나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기다리는 동안 비슷한 두께와 양의 책들을 제법 섭렵했다. 새로운 사실들도 발견했다. 그림책은 마냥 웃기고 재미있는 걸 좋아했다면 동화는 조금 다르다. 아이는 추리물을 특히 좋아한다. 귀여운 생명체는 더더욱 좋아한다. 혹시 추천해주실 책이 있다면 언제든 대환영입니다!)


그런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깜냥 시리즈 6권을 만났다. 단짝 하품이와 함께인 깜냥이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아이는 단숨에 책을 완독했다. 깜냥의 어린 시절을 보며 끼양!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고, 하품이가 꼭 친절한 가족을 찾으면 좋겠다고 발을 동동 거리며 잔뜩 긴장하기도 하고, 그러다 갑자기 하품이가 떠나면 깜냥은 다시 혼자냐고 속상해하기도 하면서 매 순간 매 에피소드마다 깊이 빠져들었다. 단숨에 다 읽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고 또 다음 7편까지 얼마나 더 기다림이 이어질 지 아득하다. 아이는 특히 마지막에 실리는 편지글을 애정한다. 다음 편의 예고편이라도 되는 듯 여러 번 편지글을 읽던 아이는 하품이와 깜냥이 이제는 서로에게 소중한 “새로운 가족”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은근히 다정하고 한없이 귀엽고 일상 속 소소한 사연들이 가득한 동화. (아이와 별개로 어른인) 내게 깜냥은 그런 동화이다. 아이와의 독서 거리를 훨씬 더 가까이 끌어 당겨준 고마운 책이 이 깜냥 시리즈여서 더없이 행복하다. 스스로 일을 헤아리는 능력, 깜냥. 자신의 힘을 다한다는 의미의 깜냥깜냥. 깜냥 시리즈에 나오는 다양한 동물과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맡은 일들을 깜냥깜냥 해낸다. 그래서 하나같이 끝간데 없이 사랑스럽다. 아이의 이야기주머니 역시 깜냥 책과 함께 깜냥깜냥 자란다. 이제 귀여운 하품이도 함께 할, 우리 앞에 놓은 수많은 여행길을 고대한다. 영영 끝나지 않을, 계속해서 여행과 모험이 펼쳐지기를 욕심내 본다. 깜냥, 그리고 하품아.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줘.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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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엄마 말의 힘 - 자기주도가 가능한 초등 공부습관 잡아주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은지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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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책의 표지에 적힌 몇 가지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공부전문가의 특급노하우’라든가, ‘자기주도가 가능한 초등 공부습관 잡아주기’ 같은 표현이 그랬다. 마치 100일 간 이러저러한 말들을 쏟아내기만 하면 극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특히 공부에서 성적 향상 같은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염려에서였다. 그럼에도 책을 펼친 이유는 최근 아이와의 대화에서의 변화 때문이었다.


내 아이는 늘 말이 많고, 질문이 많고, 그 안에서 쏟아내는 통찰력이 반짝이는 아이다. 덕분에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시간이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아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특히 최근 들어 대화의 내용과 깊이에 찾아온 크나큰 변화들을 느꼈다. 그 어떤 시기, 그 어떤 지점에서든 아이에게 필요한 응원과 지지의 말을 전해주고 함께 고민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쩐지 이 책에서 그런 방향들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책 앞으로 이끌었다.


결론은, 표지만 두고 떠올린 염려들은 괜한 기우였다. 삶의 여러 지점을 관통하는 지혜, 다양한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응원, 곧고 확실한 가르침의 방향,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큰 힘, 구체적인 의사소통의 대안까지 … 책에서 안내하는 엄마의 말들은 꼭 아이에게가 아니라 그 어느 누구에게나,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따뜻하고 정돈된 강한 힘이 묻어 있었다. 이 책 덕에 잊고 있었던 육아 중심을 새로이 환기할 수 있었고, 직접 필요한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어보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DAY1에서 DAY100까지, 제목마다 날짜가 붙어있지만 그저 1번에서 100번까지 100가지의 조언들로 보아도 무방하다. 굳이 100일이라는 표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공부, 운동, 다이어트 등 원하는 방향으로 습관을 잡기까지 적어도 100일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접근하면 이 제목과 구성의 근거를 받아들이기가 더 수월하다. 덕분에 책을 덮은 지금 내게 이 책은 아이에게 건네는 용기와 지지의 말, 응원과 반듯한 가르침의 말의 참고서로 남았다. 때마다 목차를 훑으며 지금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한 마디를 찾아 펼쳐본 뒤 마음을 환기하며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아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두고두고 여러 번 펼쳐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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