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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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춥다. 서서히 추워지지 않고 단 번에 영하의 기온을 훅 찍어대는 바람에 그 추위가 더 유난스럽게 느껴진다. 양 손 손가락 끝 두 개 마디가 동상에 걸린 경험이 있는 나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다. 가을부터 코 끝은 진즉에 냉랭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툴툴거림 없이 묵직하게 겨울을 보내는데, 어김없이 돌아올 봄을 알기 때문이다.


조해진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이토록 멋진 작가를 나는 왜 이제야 만났을까, 아쉬움이 가득하다. 계속해서 내 머리를, 심장을 강렬하게 내려치는 표현들에 말초신경까지 저릿저릿하게 아찔함이 울려 퍼졌다. 어쩌면 지독하게 무거운 슬픔을, 고즈넉한 분위기로 나열할 수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한없이 아름답고 고요하다.


엄마의 죽음 이후 춥고 쓸쓸한 겨울에 내던져진 첫째 딸 정연의 시간을 함께 걸었다. 기억 속이든 실재하는 세상에서든 다양한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는 엄마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당도한 길의 끝에는 결국 햇살과도 따스한 봄의 기운이 수줍게 피어오른다. 진정한 의미의 애도에 관하여, 홀 로서기를 가능케하는 힘에 관하여, 언제고 찾아올 인생의 겨울과 봄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다듬고 또 마음 다해 껴안았다. 처절하고도 고독한 슬픔이 전부일 줄 알았던 이 책은 그 무엇보다 반짝이는 희망으로 남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내 코 끝에 봄 내음이 몽근하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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