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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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말고 검색부터 했다. 책에는 단 한 번도 유정천이라는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유정천은 불교 용어로, 기뻐서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다, 너구리 가족이다. 일명 ‘바보의 피’가 흐른다는 시모가모 너구리 일가 말이다.


인간으로 둔갑한 너구리들, 일본 요괴의 텐구, 그리고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교토. 너구리와 텐구, 인간들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캐릭터가 펼치는 기상천외한 코미디가 이 책 그 자체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가족애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을 기록하고 싶다. 처음 책을 펼칠 때만 해도 낯선 소재와 배경을 따라잡기 급급했으나 중반부를 넘길 때쯤엔 그 속에 담뿍 스며들어 고개를 주억거리는 내가 있었다.


📍이 세상에 널린 ’고민거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어찌 되건 별 지장 없는 고민. 또 하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 이 두 부류 고민의 공통점은 괴로워하는 만큼 손해라는 사실이다. 애써서 해결될 일이라면 고민할 시간에 노력하는 것이 최고다.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면 노력해봤자 헛수고다.(78p)


📍이 세상과 작별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위대한 그 피를 정확하게 넷으로 나누어 주었다. 큰형은 책임감만 이어받았고, 작은형은 느긋한 성격만 물려받았으며, 동생은 순진함만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러움만. 완전히 제각각인 형제들을 이어주는 것은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사랑과 위대한 아버지와의 이별이다. 위대한 이별 하나가 남은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도 있다.(220p)


📍바보라서 숭고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긍지로 삼는다. 춤추는 바보로 보이는 바보. 같은 바보라도 춤추는 바보가 낫다고 한다. 그렇다면 멋지게 춤추면 된다. 우리 몸속에 매우 진한 ’바보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한 번도 창피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이 태평성대를 살아가며 맛보는 기쁨이나 슬픔도 모두 이 바보의 피가 가져다주는 것이다.(274p)


< 유정천 가족 > 시리즈는 모두 3부작으로,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개정판 『유정천 가족 1』과 신작인 『유정천 가족 2 - 2세의 귀환』을 내놓았다. 3권은 현재 작가가 열심히 집필 중이라고 한다. 부디 이 시리즈가 많은 사랑을 받기를, 그래서 남은 3권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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