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도 분명 고양이가 있을 거예요 - 25년간 부검을 하며 깨달은 죽음을 이해하고 삶을 사랑하는 법
프로일라인 토트 지음, 이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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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은 염을 마치고 관에 들어가는 그 모습이다. 실은 그래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인사일 거라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며 어린 나에게도 혼자 할아버지와 보낼 시간을 준 병원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염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잘 돌볼게요. 걱정마세요."라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못 전했다. 사랑한다는 흔한 말도 못 했다. 의식이 왔다갔다하는 와중에도 내 목소리에 활처럼 몸을 휘며 반응하는 할아버지였는데,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지도 못 했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다시 마주한 할아버지의 얼굴은 몹시도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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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에 마음의 준비 없이 할아버지를 염 하는 과정에 생생하게 노출되었던 입장에서, (너무나 힘든 경험이었지만) 나는 아이가 장례식이나 염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찬성한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한 설명과 함께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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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매 순간 죽음과 함께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복잡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고, 순리이고,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그렇다면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죽음 앞에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자연스럽고 일상적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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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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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이고,

마음이란 어디에 있으며,
의식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이고,
또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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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코스모스를 읽은 바로 직후여서일까.
그냥 읽었다면 난해하거나 불편했을 대화들이 비교적 더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들도 있었고, 그간 외계인과 소통이 불가했던 이유라던가, 긴 시간 후 인간 진화(정확히는 종말 혹은 멸종)에 대한 작가님의 상상력에는 머리가 찌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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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이고, 나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었지만 끝내 답은 알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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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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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전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니 내 존재감이 하루살이의 날개짓만도 못 한 존재인 듯 하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작아지고 겸허해지다가도, 별의 자손이자 코스모스의 자녀로서 나를 생각하니 심장이 끝 간 데 없이 끓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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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우주에 대한 막연한 로망도, 또 다른 행성으로의 테라포밍도,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도, 은하 대백과 사전도 모두 좋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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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이 말하는 과학하기. 심리학도로서의 과학하기를 조금은 벗어나 광범위한 의미의, 일상 속에서도 과학하기가 가능해지기를 바란다.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열심히 기록하고, 소통해보자. 내 개인이 작은 도서관이 되어보자. 다시 별이 되어 돌아가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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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가 사랑을 기억하는 법 - 사랑과 기억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탐구
이고은 지음 / 아몬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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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깊이 빠졌던 적이 있다.
개인적인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러했겠지만)
희도와 이진의 사랑에 자꾸만 겹쳐지는 과거의 추억이 컸다.
20대 초반, 그 때의 나여서 가능했던 많은 사랑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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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또다시 사랑의 기억에 잠겼다.
시간을 설명하고 우리의 삶을 정의하는 기억.
내게 기억은, 내가 기억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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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 연애를 훔쳐보는 것만 같아 은근한 재미가 쏠쏠했고
무엇보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마음실험실, 이고은, 심심 출판사)
심리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저자 특유의 편안하고 위로의 인사를 건네는 듯한 따뜻함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유머러스함이 반짝여서 참 좋았다.
(신에게 선물받고 싶은 게 유머라던데, 이미 지니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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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했던 과거의 사랑의 기억에 잠기고픈 누군가도,
현재의 치열한 사랑의 순간에 살아가는 누군가도,
앞으로의 사랑을 고대하고 있을 누군가도,
위로와 유머 그리고 심리학 한 스푼씩 얹어 편히 읽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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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랫동안 못 갈 줄 몰랐습니다 - 신예희의 여행 타령 에세이
신예희 지음 / 비에이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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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가 아닐 수도(한참 유행이 지난 말일 수도 있지만)

'여행 마려운' 상태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맞은 코로나는 생각보다 그 타격이 컸다.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신랑 덕에 

그 동안 내가 일본을 그야말로 내 집 드나들듯 왔다갔다 했다는 것을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야 새삼스레 깨달았다.

아이의 생일이 있는 12월마다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도 지금에야 깨닫는다.

차곡차곡, 여행자금을 위한 통장은 돈이 쌓여가지만 언제 이 돈으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갈 줄이야. 모두가 생각이나 했을까.


신예희만의 문체가 참 편안해서 좋았다.

옆집 언니(언니라고 해도 되는지 전혀 모르겠다. 실례일게 분명하다.)와 나란히 누워

얘, 그 때는 그랬잖아. 어머, 저번에 그건 어땠는지 아니? 장난 아이었어. 

도란도란 수다 떨듯 편안하게 풀어나가는 문체 덕에 앉은 자리에서 여러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갔다.

그리운 여행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눌 상대가 생긴 기분이라

왠지 모를 위안감, 안도감까지 느껴졌다. 

책이란 이런 거지.

여행과는 또 다른 이런 힘이 있지.

코로나 네가 아무리 버텨봐라, 책까지 뺏을 수 있나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여행이 그리운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정말정말 여행 타령 에세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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