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텔레패스
가미조 가즈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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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한 결을 가진 호러를 좋아한다. 끝없이 유령에게 쫓기기만 하는 이야기보다,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따라가게 만드는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다. <심연의 텔레패스>도 그런 이유로 선택한 책이었다.

귀신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방식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어떤 조건에서 반복되는지, 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끝까지 좇아가는 구조가 흥미롭다. 일본 호러 특유의 눅눅한 긴장은 유지되는데, 그 안에서 추리처럼 원인을 짚어 가는 흐름이 이어져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붙는다.

책을 볼 때 가장 먼저 표지를 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문 앞에 선 인물과 바닥에 번진 물기,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공간만으로도 이미 이야기의 방향을 먼저 보여주고 있었다.


가미조 가즈키는 일본 호러 문학에서 주목받는 신예 작가로 알려져 있고, 이 작품은 데뷔작부터 강한 반응을 얻었다. 시작은 의외로 평범하다. 회사 일 외에는 거의 관심 없이 살아온 영업부장 카렌이 부하 직원의 권유로 괴담 행사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여성에게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된다.

밤이 되면 뭔가가 바닥을 끌며 걷는 듯한 철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눅눅하고 비릿한 냄새가 따라온다. 처음에는 집 문제인가 싶어 점검도 하고 전문가도 불러보지만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다 이 현상이 어두운 곳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을 켜면 조용해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집안을 환하게 만들어 두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작품은 곧 생각보다 어둠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옷장 안, 서랍 속, 방문 틈, 방 한쪽 구석처럼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던 작은 공간마다 어둠이 남아 있고, 그곳마다 다시 같은 소리가 시작된다.

이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불을 켜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일상적인 공간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어둠까지 공포의 통로로 만든다. 그래서 익숙한 집안이 갑자기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결국 카렌은 스탠드까지 총동원해 집안을 밝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빛이 하나씩 꺼지고 어둠이 다시 만들어진다. 그 순간 철퍽 거리는 소리가 더 가까워지는데, 처음에는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점점 압박감이 커진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이 현상이 카렌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리고, 옆에 있던 동료 역시 냄새를 맡고 반응한다.

혼자만 듣는 환청이나 착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면서 공포의 결이 달라진다. 보통 저주나 괴이는 당사자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주변 사람도 같은 현상을 감지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중반 이후부터는 하루코라는 인물이 중심으로 들어온다. 처음에는 카렌이 이야기의 중심처럼 보이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하루코가 이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이상 현상을 찾아다니고, 필요하면 주변 사람들을 모아 조사를 이어간다. 경찰 출신 구라모토, 특수한 감각을 지닌 인물들까지 합류하면서 사건은 점점 체계를 갖춘다.

눈에 들어온 것은 이들이 현상을 대하는 태도다. 영적인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어떤 조건에서 반복되는지, 인간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없는지 계속 확인한다. 작품 안에서 초심리학이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자연 현상을 무조건 믿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해명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본 호러이면서도 있는 감각이 조금 다르다. 설명 없이 불안만 남기는 쪽보다 사건의 원인을 따라가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분명하다. 물론 끝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정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접근하려는 과정이 있다.

후반부는 장면 전환이 빠르고 거의 영화처럼 읽힌다. 불이 꺼지는 순간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현상을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영상이 떠오른다. 그래서 읽는 동안 영화로 만들어지면 꽤 긴장감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체적으로는 갑자기 놀라게 하기보다 조금씩 조여오는 심리적 압박이 중심인 작품이었다. 공포와 함께 구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서, 이유 없는 공포보다 과정이 있는 일본 호러를 좋아한다면 꽤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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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달리기 - 승복 입은 러너의 11,450킬로미터 마음 수행기
지찬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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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스님의 달리기>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스님'과 '달리기'라는 조합이었다.

스님이라고 하면 보통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요함과 절제, 좌선과 자기 성찰 같은 정적인 수행이다. 그런데 달리는 스님이라니 어딘가 낯설고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행 역시 몸을 바로 세우는 일에서 시작되니 달리기가 아주 어색한 일만은 아니다. 지찬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수행과 글쓰기를 함께 이어오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꾸준히 이야기해왔다.

<스님의 달리기>는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달리기가 마라톤 도전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느낀 몸과 마음의 변화를 기록한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달리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상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록을 줄이거나 속도를 높이는 일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호흡이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질 때 어떻게 자신의 리듬을 지켜가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달리다 보면 중간에 멈추고 싶은 순간도 오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올라온다.

그런데 스님은 그런 감정조차 흘려 보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본다. 흐트러진 호흡을 다시 고르고 발걸음을 이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수행의 태도와 닮아 있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반복의 의미였다. 비가 오든 피곤하든 정해진 길을 꾸준히 달리는 일이 책 안에서 여러 번 강조된다. 같은 길을 계속 걷고 달리는 동안 몸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마음은 불필요한 생각을 덜어낸다.

거창한 깨달음보다 작은 실천이 쌓이는 과정이 차분하게 전해진다. 그래서 달리기는 기록을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 자신을 돌보는 리듬으로 익히게 된다.

흥미로웠던 부분는 달리기 속에서 좌선 중 느끼는 삼매와 비슷한 감각을 경험했다는 대목이다. 반복되는 걸음 속에서 생각이 줄어들고, 몸은 분명 힘든데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러너스 하이도 이 지점과 연결된다. 오래 달릴 때 통증은 남아있는데 마음은 가벼워지고 감정은 맑아지는 상태다. 운동을 즐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설명을 읽다 보면 왜 누군가는 고된 달리기를 계속 이어가는지 조금 이해하게 된다.


책 속에서 떠오른 단어 가운데 하나는 레프기움(refugium) 이었다. 삶이 흔들릴 때 잠시 물러나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 복잡한 생각에서 떨어져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달리는 동안 일정하게 이어지는 호흡과 발걸음이 그런 공간을 만든다. 스님이 말하는 달리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 좋았던 점은 스님이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더 멀리 달리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생긴다. 단지 그 욕심을 언제 놓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달리기든 일상이든 자기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 오래가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스님의 달리기>는 운동 이야기면서 몸과 마음을 함께 돌아보게 하는 기록으로 읽힌다.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 조용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익숙한 일상에서도 작은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스님의달리기 #지찬 #유노북스 #달리기에세이 #마음수행기 #책리뷰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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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대가 - 안전이 빼앗아 간 당신의 진짜 가능성에 대하여
체이스 자비스 지음, 최지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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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릴 때는 이상할 만큼 겁이 없었다. 잘 될지 아닐지를 오래 계산하기보다 일단 해보는 쪽에 가까웠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서툰 점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주저함은 적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서 그 감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정해진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틀렸다는 말을 들었고, 실수는 배우는 과정이라기보다 곧바로 평가의 대상이 됐다.

몇 번의 실패를 지나면서부터는 새로운 시도보다 안전한 선택을 먼저 하게 됐다. 체이스 자비스의 <안전이 대가>는 바로 그런 마음 앞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조심하며 살아온 결과, 정말로 안전해졌는가.





책의 첫 장에서 저자는 안전은 실체라기보다 우리가 붙잡고 싶어 하는 환상에 가깝다고 말한다. 자연에는 완전히 고정된 안전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 역시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직장도 관계도 익숙하다고 해서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반드시 삶을 지켜주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 익숙함이 가능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전한 길을 반복해서 선택하는 삶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자리할 수 있다는 시선이었다. 실패를 피하려고 익숙한 기준 안에 머물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정말 원하는 방향은 점점 흐려질 수 있다.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기준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하고 싶은 일보다 무난한 선택을 먼저 계산하게 되고, 결국 자기 목소리를 점점 작게 만들게 된다.

책은 삶을 바꾸는 일곱 가지 지렛대로 관심, 시간, 직관, 제약, 놀이, 실패, 실천을 제시한다. 그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관심은 무엇에 주의를 두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저자는 관심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에 시선을 빼앗기고, 다른 사람의 속도와 기준을 보느라 정작 내 앞의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관심을 분산시키는 습관을 줄이고,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일에 집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시간에 대한 부분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늘 바쁘다고 느끼지만 저자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방향을 놓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는 짧은 시간도 깊게 남고,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졌는가보다 어디에 두었는가에 가깝다.

실패를 바라보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실패는 잘못된 결과가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일 수 있다. 체이스 자비스는 넘어지지 않는 삶보다, 넘어졌을 때 다시 중심을 찾는 힘이 결국 사람을 밖으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말한다.

실패를 피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직관과 제약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직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경험이 빠르게 판단하는 방식이고, 제약은 불편함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방법을 찾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완벽한 환경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가진 조건 안에서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읽고 나면 이 책이 말하는 안전은 그저 위험을 피하는 상태가 아니라,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제한하는 심리와도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안전의 대가>는 무조건 모험을 권하는 책이라기보다, 익숙함 속에서 멈춰 있는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질문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보다,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안전의대가 #체이스자비스 #오픈도어북스 #책리뷰 #안전한선택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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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개의 포춘쿠키 - 사람은 스스로를 찾기 위해 길을 잃어봐야 한다
오봉환 지음 / 아티서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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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열두개의 포춘쿠키>는 제목보다 먼저 책 자체의 구성에서 눈길을 끌었다. 직접 받아본 책은 금박이 물 흐르듯 이어진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가는 삶의 방향과 감정의 결을 암시하는 듯했다.

책을 펼친 뒤에는 각 장마다 연결된 QR코드가 또 한 번 시선을 붙잡았다. 음악만 재생되는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에피그래프, 분석보고서, 발자취, 팟캐스트처럼 장면을 확장하는 여러 콘텐츠가 함께 들어 있어 소설을 읽는 경험 자체가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종이책 안에 디지털 요소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결합한 방식은 꽤 신선했고, 이야기만 읽는 것이 아니라 장면마다 다른 감각을 덧붙여 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처럼 다가왔다.





소설의 시작은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중요하게 여기던 주인공이 친구의 SNS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정해진 순서 안에서 살아가려는 인물에게 자유롭게 움직이며 즉흥적으로 삶을 선택하는 친구는 한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오히려 그 자유가 부럽게 느껴진다. 이 대비만으로도 이미 주인공 안에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은 다소 강하게 몰아친다. 오랜 연인에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별을 통고받고, 가족의 병까지 겹치면서 주인공은 익숙한 일상에서 밀려난다. 처음에는 솔직히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실적인 고통을 설득하기 위해 사건이 조금 압축되어 있다는 인상이 있었고, 그래서 초반에는 감정보다 구조가 먼저 보이기도 했다. 특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 여행을 선택하는 과정은 쉽게 따라하기보다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여행이 시작되면서 책의 결은 조금씩 달라진다. 네팔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처럼 읽혔다. "천천히, 산은 어디로 가지 않아요" 라는 가이드 말 앞에서도 계속 서두르는 모습은 삶 전체를 급하게 지나온 사람의 습관과 닮아 있다. 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기다려 주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도 인상 깊었다.

이후 바라나시, 방콕, 호이안, 교토, 몽골 그리고 유럽의 도시들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 속에서 장소는 계속 바뀌지만 마음속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풍경은 달라져도 감정은 그대로 따라오고, 결국 사람은 자기 안에 쌓인 것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흐름이 반복된다. 아름다운 곳을 걷고 있어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준현 역시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흔들리는 모습은 주인공과 또 다른 방식으로 닮아 있어, 각자 안고 있는 상처를 잠시 나란히 바라보게 만드는 방식이라 오히려 담담하게 남는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포춘쿠키 문장은 처음에는 다소 의도적인 장치처럼 느껴졌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왜 이 설정이 끝까지 유지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답을 주기보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잠시 멈춰서게 만드는 역할에 가깝다.

QR코드 안에 분석과 음악 역시 친절하게 장면을 보조하지만, 때로는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붙잡을 여백을 조금 줄이는 느낌도 있었다. 다만 그만큼 작가는 독자가 장면마다 잠시 머무르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결말까지 완전히 같은 마음으로 따라간 것은 아니었다. 현실의 문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의미를 정리하는 방식은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왜 모든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끌고 갔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결되지 않은 삶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것인가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거리감이 있었지만 읽고 나니 꽤 정교하게 설계된 이야기라는 인상이 남았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지금과는 다른 문장이 더 크게 들어올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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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만 미쳐라
리치파카(강연주)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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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리치파카의 <딱 1년만 미쳐라>는 제목부터 시선을 붙드는 자기계발서다. 대부분 자기계발은 오랜 시간 꾸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기한을 정한 집중이 사람을 바꾼다고 강조한다.

평생 조금씩 애쓰는 방식보다, 딱 1년만 방향을 정해 몰입해 보라는 제안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평생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1년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황금빛 표지 아래 깨져 나가는 형상 역시 과거의 자신을 깨고 나오는 이미지처럼 보인다.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이미 이 책이 말하려는 방향이 분명하다.



리치파카는 육군 장교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통장 잔고는 늘지 않았고, 같은 방식으로는 인생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변화가 시작됐다.

그렇게 새벽 기상, 독서, 기록, 루틴을 1년 동안 반복했고, 결국 지금의 자기계발크리에이터가 되었다. 현재는 YouTube 채널 리치파카와 자기계발 브랜드 리치해빗을 운영하며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있다.

책은 각성, 결단, 몰입, 탈피 네 단계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강조되는 것은 각성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하루를 반복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각성은 단순히 의욕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보는 일이다. 감정에 끌리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 비교를 멈추고 내 방향을 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결국 무엇을 바꿀지 모른다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공감됐던 부분은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대목이었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도 시간이 쌓인 결과가 제자리일 때가 있다.





저자는 여기서 방향 없는 노력보다 뾰족한 목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러 가지를 조금씩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봐도 분명할 정도로 한 가지를 깊게 미루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인 결단은 더 강하다.

저자는 결단을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기존의 습관과 관계를 끊어내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불필요한 소비, 느슨한 인간관계, 익숙한 태도를 그대로 두고는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선택지가 많으면 절실함이 약해진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잘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늘 다른 길을 남겨 두면 결국 몰입의 강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몰입이다.

많은 사람들이 몰입을 강한 열정으로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는 오히려 반복의 기술에 가깝게 설명한다. 하루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의 선택을 계속 이어가는 상태다.

새벽 기상, 기록, 독서처럼 사소해 보여도 같은 행동이 누적될 때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결국 몰입은 특별한 재능보다 흔들리지 않은 반복에 가깝다.




마지막 탈피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는 단계다.

저자는 단순히 돈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를 끝까지 파고든 사람이 결국 판을 바꾼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이 책은 성공담이라기보다 생활 태도를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매뉴얼처럼 읽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평생이 아니라 1년이라는 시간 설정이다. 평생 치열하게 살라는 말은, 막연하고 지치기 쉽지만 1년은 구체적이다. 끝이 보이는 기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자는 제안은 생각보다 강한 동기를 만든다. 자기 계발이 흐트러졌거나, 지금의 반복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읽으면 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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