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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런 UN-learn - 배운 것을 잊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성장’
김연지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5년 11월
평점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언런 UN - Learn>의 중심에는 "배운 것을 내놓는 용기"라는 메시지가 놓여있다. 언런은 저자가 UCLA에서 처음 들었던 개념으로, 나쁜 습관을 버리자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 가정, 환경이 만들어 놓은 오래된 기준을 의식적으로 지워내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워 왔지만, 그 중에는 사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도 많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오래 유지되어 온 어른 중심의 관계, 체면 문화, 말보다 배려를 우선하는 태도는 때로는 장점이 되지만 글로벌 환경에서는 스스로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저자 역시 그 벽을 가장 먼저 체감했다. 중학교 때 미국 연수를 갔을 때, 친구들은 틀리더라도 주저 없이 말하고 질문했지만, 그녀는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학, 대학원, 국제기구의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견을 말하는 데 망설임이 생기고, 표현을 미루다 보면 중요한 순간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이 경험이 오히려 전환점이 되었다. '배워 왔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틀을 재정비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언런이다.
흥미로운 점은 언런이 단순한 태도 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루틴을 제시한다.
1. 기록하기 : 마음이 복잡한 날일수록 생각을 정리해 놓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2. 묻고 요구하기 : 궁금하면 질문하고, 더 알고 싶으면 피드백을 구하는 문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했다.
3. 나누기 : 배우거나 느낀 것을 공유하면 책임감이 생기고, 다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4. 힘 빼기 : 과도한 목표와 자기 압박을 줄여야 현실적인 속도가 만들어진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았던 지점은, 저자가 겪은 시행착오가 단지 성공담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기업에 입사했을 때 다시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되돌아가고,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적성에 맞지 않아 고통스러웠다는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말리던 상황에서도 결국 스스로 결단해 그 자리를 떠났고, 그 선택이 새로운 길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흔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데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그 과정을 몸으로 겪었다.
실행력을 높이는 현실적인 팁도 유용했다. 해야 할 일을 하루 1분 만이라도 해보는 방식, 책상을 먼저 정리해 두는 사소한 준비, 운동복을 미리 꺼내 두는 셋업 등은 누구나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작은 성취가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 자신감이 다시 행동으로 이끄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언런이란 결국 '버리고 비우는 철학'이면서도 '실천하는 기술'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책을 읽고 나서 고민이 생겼다. 나는 무엇을 배우려 하기만 했고, 무엇을 내려놓지 못했을까?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부가 아닐 수도 있다. 내 안의 소음, 타인의 기대, 오래된 기준을 지워내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경험처럼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 순간에도 아주 작은 시도는 가능하다. 기록, 질문, 나누기, 힘빼기 같은 작은 루틴부터 시작한다면, 지금의 자리에서도 언런은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느껴졌다.
<언런 (UN - Learn)>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책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만드는 과정을 다룬 책이다. 자신의 길을 찾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