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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 - 250만 명의 인생을 바꾼 배짱 이야기
이시형 지음 / 풀잎 / 2025년 1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I형이에요'라고 소개한다. 내향성이 하나의 성향이자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그런데 불과 30 ~40년 전만 해도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사람들에게 흔히 붙던 말이 있었다. 바로 '숙맥'.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자신의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이 오래된 단어를 다시 꺼내 든 사람이 있다. 바로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집필과 강연을 이어가는 이시형 박사다. 그가 개정해 새롭게 펴낸 <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은 1980년대 초판 이후 여러 번의 수정, 보안을 거쳐 지금의 시대감에 맞춘 책이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 사회가 가진 정서가 우리 행동과 심리에 얼마나 깊이 스며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다.
예전 농경 사회에서는 여러 세대라 한집에 모여 살았다. 그 속에서 '나'보다 '우리'를 우선하는 태도,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 어른 앞에서 조용해야 하는 규범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런 문화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되었지만, 동시에 지금은 우리에게 과한 눈치, 불필요한 체면, 스스로 억누르는 마음을 남겨놓기도 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고, 남 앞에서는 당당해 보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모습.
저자는 이것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배경이 만든 습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많은 독자들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그런게 아니었구나' 라는 안도를 느낄 것 같다.
이번 개정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과거의 '숙맥'과 지금의 MBTI 'I형'이 닮아 있다는 설명이다. 예전에는 조용한 사람을 '숙맥'이라 불렀다면, 지금은 "I형이라서 그래요" 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표현은 달라졌지만 "나는 조금 모자란 것 아닐까"라는 걱정은 그대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 문제의 핵심이 표현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평가하는 시선'에 있다고 말한다. 이 메시지가 지금 세대에게도 충분히 와닿는다.
책은 총 9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체면, 추진력, 결단력, 소심증 ,소신, 미안 과잉증, 열등감, 대인불안, 조급증 등.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부딪히는 감정들이지만, 저자의 접근은 조금 다르다. 이 성향들을 '고쳐야 할 단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며, 제대로 이해하면 충분히 장점이 될 수 있다" 고 말한다. 즉 성향을 바꾸려 애쓰는 대신 성향을 다루는 기술을 알려 주는 책에 가깝다.
또, 세대 간의 표현 방식의 변화도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다. 젊은 세대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지만 때로는 '무례하다'는 평가를 듣고, 기성세대는 여전히 체면과 조심스러움 속에서 제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서로 반대 방향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공통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 점을 짚으며,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금 더 용기 있게 표현해 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남의 기준에 휘둘리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나만의 속도와 리듬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면, 내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한 발 내딛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