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사가미 전쟁의 신 1 : 天(천)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형진 옮김, 이시다 스이 일러스트 / 하빌리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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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이쿠사가미 전쟁의 신 1>은 명치 유신 이후의 혼란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칼로 생계를 꾸려왔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새로운 제도와 무기 규율이 세상을 점령한다. 이 변화의 파도는 거창한 장치가 아니라 평범한 무사들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먹고 살 길이 막힌 이들이 마지막 희망처럼 붙잡은 것이 바로 '상금을 건 경기'라는 공고다. 하지만 그곳에서 펼쳐진 현실은 일종의 사무라이식 데스 게임이었다.




참가들에게 주어진 규칙은 단순해 보이지만 잔혹하다. 각자 일 점짜리 목패를 받고, 다른 사람의 목패를 빼앗아 점수를 모은 뒤 정해진 루트를 따라 목적지로 행해야 한다. 규칙을 어기고 구역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제거되는데, 승패의 기준은 오직 살아남아 점수를 유지하는 힘뿐이다.

무사라면 칼을 쓰는데 익숙하지만, 그들에게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생계를 꾸리던 평범한 과거가 있었기에 이 게임은 단순한 싸움 그 이상이다. 누군가는 굶주린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또 누군가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이 자리에 놓였을 뿐이다.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싸움의 기술보다 '시대' 그 자체가 사람을 어떻게 몰아붙이는가에 있었다. 어떤 이는 목숨을 끊지 않고도 게임을 끝내려 애쓰고, 반대로 어떤 이는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살의가 다시 깨어나 폭력에 취한다. 이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인간의 본성과 시대적 비극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주인공 슈지로 역시 그런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부 밑에서 자라며 형제처럼 지낸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이 계승해 온 '교하치류' 검술은 특별한 방식으로 전수되는 유파였다. 8명에게 같은 기술을 가르쳐 놓고 마지막에 단 한 명만이 모든 기술을 이어받는 방식.

슈지로는 의형제를 베어야 하는 운명을 견디지 못해 도망쳤고 그 선택이 그의 삶을 끝없이 떠돌게 만들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그가 게임 속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그저 '숙련된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를 뒤흔드는 사건임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동시에 권력자들이 혼란을 봉합하기 위해 무사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서로 싸우게 만드는 설정은 시대의 폭력을 상징하는 장치처럼 읽힌다. 누가 누구의 생명을 선택하듯 결정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이 작품은 전투 장면과 인간관계, 그리고 각자의 사연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낸다.

이마무라 쇼고의 문체는 빠르고 선명하며, 장면 전환이 영화처럼 이어진다. 피격의 순간, 검의 움직임,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습 등이 매우 생생해 읽는 내내 큰 몰입감을 준다. 여기에 <도쿄 구울>작가 이시다 스이의 삽화가 더해져 시각적 분위기가 강화된다. 많은 독자들이 오징어 게임의 사무라이 버전을 떠올릴 수 있지만, 작품은 단순한 서바이벌 물이라기 보다 "무너진 시대 속에서 검은 무엇을 지켜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둔다.

게다가 이 작품은 2025년 11월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로도 공개되며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 1권만 본 시점이지만 이 흐름이 앞으로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기대되는 작품이다. 슈지로가 과거의 그림자를 어떻게 극복할지, 그릭도 시대의 경계에 놓인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다음 권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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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살고 있습니다 - 달콤쫄깃 시골 라이프 쌩리얼 생존기
원진주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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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시골의 '예쁜 순간'만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 작가였던 저자와 PD였던 남편은 도시의 고된 일상에 지쳐 잠시라도 숨을 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5도 2촌'생활. 그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충남 당진의 시골집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태풍에 밭이 날아가고, 인터넷이 끊기고, 거미줄을 치우는 일상까지 - 모든 순간이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담겨 있다.





시골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건 계획과 달랐다. 집을 구하는 일부터 시행착오가 이어지고, 농사 경험은 전무했고, 작은 고장 하나에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끝없이 등장한다. 도시라면 전화 한 통이면 끝난 문제들이 시골에서는 하루 일반과가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이 준 선물'은 결국 손으로 직접 만지고 가꾸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편안함의 대가처럼 보이는 노동이 사실은 시골 일상 그 자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부부의 변화다. 바쁘게 일하던 남편은 시골에 정착하며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었다. 아침 시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잡초를 뽑고, 밭을 돌보고, 마을을 걷는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도시에서 업무 메일 하나로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이 자연 앞에서는 묘하게 달라진다.


저자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전엔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을 깨닫는다. "행복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날마다 반복된 생활 속에서 조금씩 자리 잡는 것"이라는 사실. 시골 살이가 주는 여유는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며 만들어 가는 것임을 몸소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귀촌 에세이라기보다 도시에서 시골로 삶의 무게 중심을 옮기며 겪는 내면의 변화에 더 가깝다.




시골 공동체의 결도 인상적이다. 도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가까운 거리감 - 옆집의 식사 시간과 외출 패턴까지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환경. 처음에는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져도,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이런 관계다. 제철 수확물을 나누고 집수리나 장비를 서로 돕는 모습은 예전의 시골로 결혼한 친구가 경험했던 '동네잔치'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스스로가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는 많은 선택이 이미 정해진 흐름 속에 있었지만, 시골에서는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 집을 고치는 일부터 지금의 방향까지 누구도 대신 판단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그만큼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간다는 감각이 커진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귀촌은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고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느리게 살기 위해서도 선택이 필요하고, 행복을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시골집에 살고 있습니다>는 시골 로망을 부추기지 않는다. 대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기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작고 단단한 행복을 들려준다. 나 역시 시골살이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풍경 속에 함께 머무는 듯했다. 자연과 사람 관계와 노동의 결을 따라가며 마음이 잔잔해지는 경험을 햇다. 글 자체도 발랄하고 유쾌해서 무거운 체험조차 편안하게 읽힌다.


그래서 이 책은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은 물론,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독자에게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시골살이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알고 싶다면,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기쁨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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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장이 되어 흐른다
박애희 지음 / 청림Life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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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삶은 문장이 되어 흐른다>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그 서술 방식이 매우 담백해서 독자의 마음이 먼저 드러난다. 저자는 20대와 30대를 라디오 작가로 보내며 전국에서 도착한 사연들을 매일 읽었다고 한다.

기쁨과 슬픔, 위로와 고백이 뒤섞인 이야기를 10년 넘게 접하면서 어려움 없는 인생은 없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배웠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길어올린 마음의 잔향을 글로 옮긴 기록이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책 전체에 흐르는 "소중한 삶은 결코 묻히지 말아야 한다"는 태도였다. 누구의 삶이든 한 사람만이 가진 단 하나의 이야기이고,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행위가 바로 '글쓰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김진영 철학자가 남긴 "글쓰기는 떠난 뒤 남겨진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저자 역시 언젠가 사라질 존재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책은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 "순간", "사람", "추억", "취향", "대화", "희망" 이라는 흐름은 마치 일기의 갈래처럼 자연스럽다. 특히 1장의 "홀로", "고요히", "선명하게"라는 부제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 드러낸다.

저자는 "평생 함께 할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이려 스스로와의 관계를 돌아보라고 권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인정받고자 애쓰는 이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더욱 닦달하게 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짚어낸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깊이 공감이 됐다. 때로는 더 해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지치게 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조차 불안해했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책의 또 다른 특별함은 읽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써 내려가는 책이라는 점이다. 각 장의 끝에는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적어 볼 수 있는 여백이 마련되어 있다.

저자가 먼저 자신의 문장을 건네고, 독자는 그 문장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붙이는 구조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자신스럽게 나만의 작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문장을 따라 쓰는 시간이 곧 내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고, 사소한 메모라도 누군가에게는 귀한 흔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깊게 남았다.

한 권을 덮고 난 뒤, 저자가 왜 "우리 모두는 자신의 문장을 써야한다"고 말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삶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 안에서 건져 올린 감정과 생각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머물 수 있다.

이 책은 거창한 위로나 조언보다, 일상의 결을 다정하게 건드리는 문장들로 독자에게 조용한 용기를 준다. 그래서 새벽에 홀로 읽기에도, 하루를 정리하며 느리게 넘기기에도 참 좋은 책이다. 조용한 시간에 이 책을 천천히 펼쳐 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문장을 적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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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철학 30day 고윤(페이서스코리아)의 첫 생각 시리즈 3부작 4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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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 받고 쓴 글입니다.




<왜 당신은 태도가 아니라 인생을 탓하는 가>는 동서양의 사상가들이 남긴 남긴 문장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떤 태도로 하루를 살아갈 것 인지를 묻는 책이다. 


에머슨, 쇼펜하우어, 비트겐슈타인, 한나 아랜트, 칼 세이건 등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내용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아침과 저녁에 잠시 읽기 좋다. 책의 흐름이 '하루 두 번의 점검'처럼 설계된 만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책의 첫 문장은 랄프 월도 에머슨의 말로 시작된다. "동물은 말한 곳으로 그냥 가지만, 사람은 말해놓고 꼭 다른 곳으로 간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능력은 축복이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건 인간의 오래된 습관이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계획을 세웠다가도 외부 시선에 흔들리거나 분위기에 끌려 방향을 바꾼 적이 많았다. 문제는 그 과정이 반복되면 내가 처음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흐려진다는 점이다. 목표가 수정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본질을 잃어버리면 말과 행동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깊게 남았다.

책이 강조하는 핵심은 결국 '자기 점검'이다. 오늘 선택한 행동이 내가 바라던 방향과 맞는지, 지금 내 판단이 감정인지 가치인지, 그 질문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창작의 기쁨 때문에 시작한 일을 어느 순간 인정만 바라보며 이어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람의 기대에 맞추느라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흐트러짐을 막는 힘이 바로 철학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잡는 생활의 기술로서의 철학이다.



책에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도 담겨있다. 철학을 배우기 전에는 주변의 반응에 쉽게 흔들리고, 순간적인 감정에 내맡기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유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서 관계와 일에서 불필요한 소모가 줄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특히 공감이 되는데,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깊이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실천적이라는 데 있다. 사상가의 문장만 소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지금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잇는지를 풀이해 준다. 그래서 책을 덮은 후에도 문장이 오래 남는다.

<왜 당신은 태도가 아닌 인생을 탓하는 가>는 인생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은 사람, 복잡한 마음의 중심을 다시 잡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 책이다. 누구나 상황 탓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지만, 결국 나를 움직이는 건 태도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작은 사유가 인상의 선택을 바꾸고, 그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경험을 하고 싶은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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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세계 - 낯선 길을 걷는 법
정병호 지음 / 성안당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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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루카스라는 한 인물이 '길을 떠나라'는 메모를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길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처음에는 여행 에세이인 줄 알았지만, 정병호 작가의 <여행자의 세계>는 점차 우화처럼 전개되며 인생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짧은 소설처럼 다가온다.

이야기의 전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막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걷는 곳이 곧 길이 된다." 이 한 문장이 책의 핵심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길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순간마다 새롭게 만들어진다. 루카스는 더 이상 방향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목적지가 아닌 발걸음, 그 자체가 길이 된다면 그는 어디에 있든 이미 길 위에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아닌 '루카스'라는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철학적 메시지를 직접 설파하는 대신 주인공의 여정 속에서 녹여내는 방식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떠오르게 한다. 현실의 여행담이라기보다 상징과 깨달음으로 채워진 한 편의 우화처럼 읽힌다.

<여행자의 세계>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루카스는 도시와 바다, 사막과 별의 길을 지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길이란 무엇인가?" 그는 점차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걷는 그 순간의 의미라는 사실을. 사막에서 만난 여행자가 전한 말처럼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걷는 곳이 곧 길이 된다."




정병호 작가는 여행을 "인생의 은유"로 풀어낸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스승이며, 갈림길은 선택의 순간이다. 우리가 매일 걷는 평범한 일상도, 어쩌면 하나의 여행일 수 있다. <여행자의 세계>는 화려한 풍경이나 여행 팁을 전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잔잔하게 일깨운다.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익숙함과 미지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 정답은 없다. 한걸음 한걸음 내 디딜 때마다 그 길은 우리의 길이 되어간다. 루카스의 여정은 그런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철학적 메시지에 비해 이야기 전개가 단순하고, 대화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러 깊이 있는 통찰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동화처럼 전개되다 보니 현실적인 공간보다는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길 위에서 배우는 삶의 자세"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조용한 여운을 남긴다.

책에서 루카스는 한 아이에서 자신의 여정을 들려준다. 아이는 말한다. "나도 언젠가 길을 떠날 거예요. 그리고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 거예요." 이 한마디는 책이 전하려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길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 다만 그 길을 걸어갈 '용기와 결심'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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