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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세계 - 낯선 길을 걷는 법
정병호 지음 / 성안당 / 2025년 10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루카스라는 한 인물이 '길을 떠나라'는 메모를 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길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며, 결국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처음에는 여행 에세이인 줄 알았지만, 정병호 작가의 <여행자의 세계>는 점차 우화처럼 전개되며 인생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짧은 소설처럼 다가온다.
이야기의 전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세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막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걷는 곳이 곧 길이 된다." 이 한 문장이 책의 핵심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길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순간마다 새롭게 만들어진다. 루카스는 더 이상 방향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목적지가 아닌 발걸음, 그 자체가 길이 된다면 그는 어디에 있든 이미 길 위에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아닌 '루카스'라는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철학적 메시지를 직접 설파하는 대신 주인공의 여정 속에서 녹여내는 방식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떠오르게 한다. 현실의 여행담이라기보다 상징과 깨달음으로 채워진 한 편의 우화처럼 읽힌다.
<여행자의 세계>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루카스는 도시와 바다, 사막과 별의 길을 지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길이란 무엇인가?" 그는 점차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걷는 그 순간의 의미라는 사실을. 사막에서 만난 여행자가 전한 말처럼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걷는 곳이 곧 길이 된다."

정병호 작가는 여행을 "인생의 은유"로 풀어낸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스승이며, 갈림길은 선택의 순간이다. 우리가 매일 걷는 평범한 일상도, 어쩌면 하나의 여행일 수 있다. <여행자의 세계>는 화려한 풍경이나 여행 팁을 전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잔잔하게 일깨운다.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익숙함과 미지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 정답은 없다. 한걸음 한걸음 내 디딜 때마다 그 길은 우리의 길이 되어간다. 루카스의 여정은 그런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철학적 메시지에 비해 이야기 전개가 단순하고, 대화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러 깊이 있는 통찰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동화처럼 전개되다 보니 현실적인 공간보다는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길 위에서 배우는 삶의 자세"를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조용한 여운을 남긴다.
책에서 루카스는 한 아이에서 자신의 여정을 들려준다. 아이는 말한다. "나도 언젠가 길을 떠날 거예요. 그리고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 거예요." 이 한마디는 책이 전하려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길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 다만 그 길을 걸어갈 '용기와 결심'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