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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살고 있습니다 - 달콤쫄깃 시골 라이프 쌩리얼 생존기
원진주 지음 / 해뜰서가 / 2025년 11월
평점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시골의 '예쁜 순간'만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 작가였던 저자와 PD였던 남편은 도시의 고된 일상에 지쳐 잠시라도 숨을 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5도 2촌'생활. 그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충남 당진의 시골집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태풍에 밭이 날아가고, 인터넷이 끊기고, 거미줄을 치우는 일상까지 - 모든 순간이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담겨 있다.




시골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건 계획과 달랐다. 집을 구하는 일부터 시행착오가 이어지고, 농사 경험은 전무했고, 작은 고장 하나에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끝없이 등장한다. 도시라면 전화 한 통이면 끝난 문제들이 시골에서는 하루 일반과가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이 준 선물'은 결국 손으로 직접 만지고 가꾸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편안함의 대가처럼 보이는 노동이 사실은 시골 일상 그 자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부부의 변화다. 바쁘게 일하던 남편은 시골에 정착하며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었다. 아침 시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잡초를 뽑고, 밭을 돌보고, 마을을 걷는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도시에서 업무 메일 하나로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이 자연 앞에서는 묘하게 달라진다.
저자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전엔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을 깨닫는다. "행복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날마다 반복된 생활 속에서 조금씩 자리 잡는 것"이라는 사실. 시골 살이가 주는 여유는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며 만들어 가는 것임을 몸소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귀촌 에세이라기보다 도시에서 시골로 삶의 무게 중심을 옮기며 겪는 내면의 변화에 더 가깝다.

시골 공동체의 결도 인상적이다. 도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가까운 거리감 - 옆집의 식사 시간과 외출 패턴까지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환경. 처음에는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져도,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이런 관계다. 제철 수확물을 나누고 집수리나 장비를 서로 돕는 모습은 예전의 시골로 결혼한 친구가 경험했던 '동네잔치'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스스로가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는 많은 선택이 이미 정해진 흐름 속에 있었지만, 시골에서는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해야 한다. 집을 고치는 일부터 지금의 방향까지 누구도 대신 판단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그만큼 내 삶을 내가 만들어 간다는 감각이 커진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귀촌은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고민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느리게 살기 위해서도 선택이 필요하고, 행복을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시골집에 살고 있습니다>는 시골 로망을 부추기지 않는다. 대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기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작고 단단한 행복을 들려준다. 나 역시 시골살이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풍경 속에 함께 머무는 듯했다. 자연과 사람 관계와 노동의 결을 따라가며 마음이 잔잔해지는 경험을 햇다. 글 자체도 발랄하고 유쾌해서 무거운 체험조차 편안하게 읽힌다.
그래서 이 책은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은 물론,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독자에게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시골살이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알고 싶다면,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기쁨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