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올해는 프로야구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야구소설에 대한 감회가 더 새롭다. <압구정 소년들>로 접한 적 있는 이재익 작가님. 나와는 살짝 코드가 맞지 않는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던지라 이번 소설도 사실 살짝 꺼려졌었다. 야구에 관한 소설을 연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생겨버린 편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었다.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접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이재익 작가님의 필력에까지 편견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위해 태어난 분이라 생각될만큼 꼼꼼하게 짜여진 스토리며, 흠뻑 빠져들기에 작가님의 필력은 실로 대단하다. 이 작품 뒤에도 계속해서 쉼없이 터져나오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악할 정도이다. 일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이재익 작가님이 있다. 그만큼 단 시간에 많은 작품을 쓴다는 면에서 말이다. (장난삼아 그 작가의 책만 죽어라고 보라는건가, 싶을 정도로 막힘없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가!) 아무래도 읽는 쪽이 쓰는 쪽 보다 속도가 빨라야 할텐데 쓰는 쪽에서 부스터를 달고 시작하니, 독자들은 마음이 더 조급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

여름에는 책을 보는 것보다 야구가 좋아서 책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야구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야구를 보러 가는 것과 맞먹는 흥분이 감돈다. 물론, 이 소설이 그만큼 재밌었기 때문에 나오는 흥분이기는 하다. 단순히 야구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이 책에는 야구가 인생이라는 말이 딱 맞을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 실화가 바탕이 되어서일까, 그래서 더욱 감칠맛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인생의 우여곡절이 야구와 함께 고스란히 녹아있어 그들과 함께 웃고, 또 울었다. 한 편의 드라마, 한 편의 마라톤 경주 같았던 책.

중학교 때까지 투수생활을 했던 지웅.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학벌지연사회라 정말 뛰어난 재능과 스폰서가 있지 않는 경우, 스포츠인이나 연예인으로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다. 미래를 위해 서울대에 입학하고, 동아리로 야구부에 가입하게 된다. 가볍게만 할 생각이었으나, 그에게는 그것이 곧 자신의 인생이 되어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즈음 그는 도망쳤다. 지원없는, 승률도 제로에 가까운 대학야구부에 그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과 같은 사회생활로 뛰어들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면 모르겠으나 성공한 삶 또한 아니었다. 그렇게 내리막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 위해 야구부 감독님을 만나는 것으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얻어맞을 때 맞더라도, 한 번쯤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져봐야 투수 아이가." (48쪽) 이 한마디는 야구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안정적인 삶만 추구하다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늘 뒷전이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어차피 한번 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거 하나쯤은 해봐야되지 않을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건 말이다.

"군대가기전에 니 공 함 받아보고 싶다." (198쪽) 야구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포수 장태성. 끝까지 야구부를 지키다 뒤늦게 군대를 가게 된다. 지웅이는 그렇게 야구부를 외면하고 떠났지만, 투수와 포수, 그리고 남자들의 끈은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그렇게 그들을 이어주고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야구. 이 문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왜 바보처럼 눈물이 났던 것일까. 아마도 나는 그들만큼 호흡할 수 있는 야구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의 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희망을 알기 때문이리라.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게 아이다. 나는 그렇게 몬한다. 마음을 주지 못하면서 받을 수는 없다." (213쪽) 야구부에 발을 들이면서 줄곧 태성만 바라봤던 희정에게 매몰찬 한 마디를 던지는 그 남자. 포수 장태성. 한번 빠져들면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는 야구. 그것을 하는 사람이든 보는 사람이든 그 매력에 빠지면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통제불능. 태성에게 야구가 그랬다. 오직 야구만을 위해 달려온 인생인데 사랑이 첫번째일 수 없었다. 그 외사랑에 희정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는 너무 구슬프다. 야구도 사랑도 일방통행일 수는 없다.  투수와 포수, 공격과 수비. 모두 쌍방향이다. 태성은 희정을 야구 그 이상으로 들여놓을 수 없었기에 둘은 엇갈려야만 했다.

"투수 빙신이가? 니 남아래이!" "고마 학 쌔리마!" (354쪽) 데드볼이 될 뻔한 상황. 팬심이 화났다. 깔깔.이 문장을 보고는 한참을 배꼽 빠질 듯이 웃었다. 이 책은 롯데자이언츠가 그 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실감나고 재밌는 대사가 많았다. 우리쪽 선수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에 팬들은 심각하게 흥분한다. 나 또한 야구장에 가면 저런 문장이 밥먹듯이 툭~ 하고 튀어 나온다. 몸은 관중석에 있지만 마음은 그들과 함께 이기에 자연스럽게 빙의가 된다. 얼른 야구장가서 외쳐야지. 마!!!!

책을 다 쓰고 난 지금, 저는 성공과 성취는 다르다고 감히 결론내립니다. 그 차이는 '행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성취하더라도 행복하지 않다면 과연 그런 성취를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358쪽) 작가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소박한 행복이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게 할 때가 있다. 너무 세상에 치이지 말고, 많이 성취하려고 하지말고,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만큼만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야구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야구부 일원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지웅은 잃어버렸던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사회에 물들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만났고, 또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는 우리도 만났다. 살아가면서 수 차례씩 고비가 찾아오겠지만 그것을 감내하며, 혹은 뛰어넘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한번 뿐인 인생. 너무 모든 것에 매여서만 살지말고, 나, 그리고 서로를 생각하면서 지치지 않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

인생이라는 밥 위에 야구라는 반찬을 얹고, 사랑, 우정, 열정이라는 디저트까지 듬뿍 담긴 그런 소설이다. 현직 야구선수에게 선물도 했을 만큼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각별하다. 그들과 함께 하는 동안 행복했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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