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보통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지금 당신이 있는 장소는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인가요?

 

 

 

  에쿠니 가오리라는 사람. 

나에게는 저만치 멀게만 느껴지는 작가이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녀가 이루어 놓은 글솜씨를 눈곱만치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청아한 문체를 자랑하는 그녀. 무미건조한 듯 툭툭 내뱉는 말이 뇌리에 박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반복될 때면 쉽사리 내가 헤어나올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를 만드는 힘, 사람을 끄는 힘이 그녀에게는 있다, 하는 생각에 실로 부러워지기도 한다. 쉽게 던져지는 말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무수히 많은 생각을 거쳐 청아하게 변화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은 그녀, 에쿠니 가오리.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책 제목 이벤트에도 참여했었기 때문에 조금은 특별한 사연이 있는 책이 되었다. 내가 추천한 제목은 '특별하지만 평범한'이었다. 이 전에 나온 책들을 보면 이렇게 모호한 - 끝맺어지지 않은 느낌의 - 제목이 꽤 있어서 그것자체가 에쿠니 가오리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고른 제목이었다. 예를 들어, 「차가운 밤에」「반짝반짝 빛나는」「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등이 있다. 나열한 책들과 이번 책과의 다른 점이라고 하면, 실제 원제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 「소란한 보통날」의 원제는 「싱크대 아래 뼈」인데,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하기에는 갸웃거려졌기에 투표를 한 것이겠지. 제목으로 「소란한 보통날」이 되고, 책을 읽고 나서는 역시 특별하지만 평범한보다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까지 그랬다면 더 평범한 책이 될 뻔했으니까.





 

 

  봄이라서 그런가 겉표지를 벗겨낸 모습은 상큼하게 되어 있었다.

겉표지의 자수느낌도 꼭 책의 느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었는데

겉표지는 정말 자수를 놓은 것처럼 만져진다. 꼭 벽에 걸려진 예쁜 자수그림을 보는 기분이 난다.

아니면,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엄마의 포근한 느낌이랄까.

 

 

 


 

 

  다른 집의 일상을 훔쳐본다는 것. 그것은 생각외로 재미있었다. 친구네 집에가도 우리집과는 다른 공기의 흐름을 맛보면 괜스레 집에 와서 생각이 나는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식탁에서의 분위기라던가 - 밥을 먹을 때 TV를 보거나, 보지 않거나 물을 함께 마시거나, 식후에 물을 마시거나 - 혹은 수건을 개는방법이나, 속옷, 양말을 개는 방법 등이 다를 때 묘한 공기의 차이를 느낀다.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이 집에서는 저렇게 하는거니까. 어디에나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꽤 흥미롭다. 집집마다 특별하고 대수롭지 않고의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은 신기하고도 재미나다.

 

  미야자카가에도 규칙이 있다. 아침에 먹는 식단이라든지, 12월 첫째 토요일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고, 가족 중 누군가의 입학식이 되면 가족사진을 찍는다던지 하는 그 집 고유의 전통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룰이 있는 집에 살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놀이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얼마전「달콤한 작은 거짓말」을 읽었을 때, 에쿠니 특유의 쓸쓸하고 청아하고, 조금은 고독한 느낌이 익숙하지만 조금 낯설게 다가왔던 야릇함이 있었는데 지금 「소란한 보통날」을 읽고 보니 그 낯섬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 것 같다. 번역되어지는 글은 번역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와닿는데, 도입부에 들어서면서도 굉장히 통통 튀는 느낌이 들었었다. 엇, 조금 다르다. 하고 생각하고 번역가를 보니  「달콤한 작은 거짓말」과 「소란한 보통날」의 번역가가 달랐던것이다. 고전도 번역에 따라 책 전체의 분위기가 좌우 되는데 하물며 현대라고 다르랴. 나는 김난주표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좋아한다. 「달콤한 작은 거짓말」은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었지만 특유의 그 고독함이 좋아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 책의 통통 튀는 문체들을 보니 괜스레 이 책에 더 정이 가면서 반가웠다. 주제자체가 밝은 점도 물론 한 몫 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시 에쿠니가 주로 다루는 느낌의 주제는 아니라서인지 그저 두리뭉실 구름흘러가듯 평화로운 느낌이다. 물론,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유유히 흘러간다. 그래서 소란하지만 보통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있는 장소는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인가요? 라는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었다. 가족이야기라는 것에 조금은 섭섭했다. 내가 보기에 저 문구만 봐서는 애정이라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조금은 다른 고독감과 상실감을 맛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고자 했던 마음이 있는 장소가 '집'이라는 점에서 그 상실감을 위로 받는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족이라면 내 편이 되어 줄테니까. 밖에서의 힘듦을 따뜻하게 바꾸어 줄 수 있는 장소. 이놈의 집구석,이 아닌 따뜻한나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장소가 가족이 있는 집이 되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그 집만의 룰이 있는 집 - 통금시간 등이 엄격한 - 보다는 아이 위주로 생활하고 있는 집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는 시간도 거의 없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맞벌이 하는 가정이 대다수라, 미야자카가처럼 식탁을 차리기 위해 돌을 줍는다던지, 가족들끼리 할 일을 서로 분담한다던지 아이들끼리 서로 놀이를 하고 교감을 한다던지 하는 일이 거의 없다. 하하호호 웃으며 그 날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함께 차도 나누어 마시고, 생일에는 꼭 함께 맞으며 선물을 교환하고. 어쩌면 이토록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바뀐 생활로 인해 특별하게 비춰지고 있는 모습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너무 먼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알고보면 행복은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오늘 저녁만큼은 시간을 내어 가족끼리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평범하지만 특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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