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작은 거짓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춥다기보다 조금은 선선해진 밤. 아침에 체하듯 책 한권을 뚝딱하고 그 기세를 몰아 선선한 공기에 집어든 달콤한 작은 거짓말. 『장미비파레몬』접한 후로 나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던 에쿠니 가오리. 꼭 그 책 때문이라기 보다, 그녀를 실제 만나고 나서 기대감이 상당히 떨어진 탓이리라. 청아하고 정갈했던 내 맘 속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가고, 무언가에 찌든 듯한 괴로움에 잠긴 그녀만 내 앞에 남았었다. 오버랩되던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는, 내 앞에 그림자는 대체 누구였던가 싶을정도로 초.췌.했던 그녀. 신간이 나오면 발빠르게 예약을 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그 만남 이후로 아주 많이 시들해졌다.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하지만 그 초췌한 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예쁘게 쓰던 그녀. 나의 책에 남은 그녀의 이름만은 지금도 소녀감성이 물씬 풍기는 듯 하다. 요즘도 이따금씩 그 글자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녀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그 때의 모습이 아닌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이미지이긴 하지만.

 

솔라닌,으로 시작하는. 어째서 그녀가 솔라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물음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기대를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읽어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예전의 강렬함을 찾는다기 보다 그저 눈이 에쿠니 특유의 문체를 보고 있는 거였다. 이 책이 별로였다는 평도 많이 봤다. 하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나름 냉정하게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냉정.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늘 에쿠니에게는 지고 만다.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따위의 반론도 없다. 어느순간부터 나는 내 마음이 동조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이런 소재에 수긍해야 하는 건지, 조금은 억울해하면서-

 

결혼을 하게 되면, 분명 연애할 때와는 달라지는 점이 있다.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는 것. 마냥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따뜻하게 보낼것을 생각하면 나는 마냥 설렌다. 하지만 이따금씩 이런 책을 읽게 되면 사랑으로만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것 또한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기나긴 연애에 지쳐버린 요즘. 이런 소재에 굉장히 민감하다. 사랑이 아니라 굶주림이다. (63) 100% 그 이상 공감한다. 결혼하지 않은 지금도 이런 상태인데, 결혼을 하게 되면 더욱심각해지겠지. 퇴근할 그 사람을 기다리고, 밥을 짓고, 언제들어오는지 전화하고. 매일 반복된 생활일 것이다. 그 사람의 스케줄에 맞춰 나는 목매달고 기다릴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이름보다는 그 사람을 목말라하고 있음이다. 허전함이 그 배후에 있을 것이다. 내 모든 것이 되어 버린 냥 그렇게 살게 되겠지.

 

"You know what I miss? I miss the idea of him(내가 뭘 그리워하는지 알아?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었단 느낌이야.)" (98쪽) 이 말에 심하게 공감하는 나를 보니 내가 참 많이 외로운가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씩 그가 다녀간 자리에 그를 다시 놓아두고 추억한다. 그리고 그가 앉았던 자리에 온기가 남아 있는지 확인해보는 버릇도 생겼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었는데.. 내 옆에 없는 그를 떠올릴 때면 나는 마치 외톨이가 되어 버린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덩그러니 나 홀로 남겨진 느낌.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 누군가와 함께 있었단 그 느낌이 더 사람의 마음을 사무치게 만들수 있다는 걸, 이젠 안다.

 

"나는 그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말하는 거야. 나나 당신이나 이야기할 의무 같은 건 전혀 없어." (14쪽) 3년차 부부인 사토시와 루리코. 그들의 대화는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는 형식이다. 무언가든 공통의 화제가 없는 두 사람. 심지어 싸운적도 없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이 어째서 아무렇지 않게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할 의무 같은 건 전혀 없다면서 시시콜콜 두 사람은 하루에 일과에 있어서는 서로에게 보고한다. 비밀이 없다는 것. 서로에게 다 터 놓는 것도 그다지 하루의 활력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듯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비밀을 만드는 두 사람.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달콤한 작은 거짓말. 무언가 굉장히 안정된 상태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필요하게 된 그들의 무언의 계략.

"왜 거짓말을 못하는지 알아? 사람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 혹은 지키려는 사람에게." (196쪽) 비밀을 만들면서 집 밖에서 몰래 데이트를 하지만 집 안에서 만큼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관계를. 비록 공통된 화제가 없이 늘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할지라도 쉽게 그 관계를 청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혼이란, 단지 마음가는대로 무작정 행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사랑보다는 의무감, 책임이 더 강한 그런거니까. 오히려 이런 달콤한 거짓말이 그들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데 있다고 봐." "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어딜 나가더라도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는 거." (140쪽)

어쩌면 나는 이런 것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한테 결박당하고 싶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올 그를 기다리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야. 늘 그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관계가 아닌, 함께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에 사랑이 전제가 되었든 책임이 전제가 되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찌되었건 함께라는게 중요하다.

 

"스토리는 딱 한 번 뿐이라서 아름다운 거예요. 우리 인생처럼." (99쪽) 나의 스토리는 어떻게 결론이 날까. 어떤 식의 결론이든 나는 행복할까. 행복이라는 이름보다는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올바른 거겠지. 어차피 나의 인생도 딱 한번 뿐인거니까. 하지만, 내 스토리 끝에는 꼭 너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난 너를 지키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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