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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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부끄럽지만 나의 청춘은 일본문학과 함께였다. 그 당시에는 나에게 온갖 꼬이는 일이 많은 시기였다. 무엇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고 마음은 늘 공허하게 맴돌았다. 그래서인지 읽는 책이라도 조금은 가볍고 간결하게 넘어가는 문장이 좋았다. 좋았다기 보다 편했다. 머릿속을 비우는 일에는 단순한 것만큼 좋은게 없듯이 일본문학이 나에게는 그랬다. 많이 생각하지 않았고 가볍게 읽었다. 주위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져있던 나였기에 일본문학이 꼭 나와 같다고 여겼었나보다. 한국소설에는 숨은 표현이 많다. 그래서 일일이 그 숨은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은 그 당시에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일본문학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일본문학과 청춘을 보낸 나이기에 일본에 대한 동경으로 전공까지 하고, 일본계회사에도 다니고 있지만, 나는 한국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일본에 대한 한이 서려있는 한국사람이기에 일본을 좋아한다는 것이 꼭 매국노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말을 하고, 그들의 문화를 즐겨도 나는 뼛 속부터 한국사람이기에 일본인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어쩌다 그들의 글에 이토록 깊이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서야 우리 문학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많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오늘, 박완서 작가님이 별세하셨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다. 많은 이들이 벌써부터 그립다고 말한다. 더이상 그녀가 펴내는 책은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 생전 펴내신 책을 나는 단 한권도 읽어드리지 못했다. 어떤 책을 펴내셨는지는 대충 알고 있지만, 이렇게 떠나보내고서야 작품을 접하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 모든 것은 잃고 난 후에야 알게 되는, 그래서 더 한국문학을 사랑해주지 못함에 많이 후회하고 있고 더 아껴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다.

 

애잔한 마음때문일까. 우리 문학은, 슬픈 것 위주로 보게 되었다. 자꾸만 공허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감정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나라가 가히 우리나라 아니던가. 그렇게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의 응어리를 터뜨리고 나서 역사와 접목된 소설에 한동안 매료되었었다. 김진명 작가님의 천년의 금서를 시작으로 김인숙 작가님의 소현, 권비영 작가님의 덕혜옹주 등.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을 잘 표현해내고 한국인에 대한 자긍심을 다지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자 읽게 된 책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네 작가님들의 글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젖어들 즈음, 신경숙 작가님을 만났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지만,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읽기가 꺼려졌었다. 나에게는 아픈 추억을 가진 이름이며, 여태껏 참아온 울음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은 아직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나게 된 작품이 바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이다. 노오란 색깔과 정치있는 풍경이 매력적인 표지가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이 작품 하나로, 나는 신경숙작가님의 작품세계를 동경하고 열망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가 8월즈음이었다. 무더웠고, 습했다. 장마로 인해 비가 오락가락했다. 주말 내내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아무데도 나가지 않았고 심지어 밥도 먹지 않은 채 이 책만을 꼬옥 끌어안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이 책은 나에게 건드리면 툭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울분이었다.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충격때문에 온몸이 얼얼한 기분이랄까. 여태껏 책을 읽고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은 없었다.

 

어느 하나 온전하지 않은 존재들이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책의 표지만 봐도 내 마음은 적색으로 변했고, 성난 파도처럼 나에게 달려들었다. 송곳처럼 쿡쿡 덧난 곳을 찌르고 또 찌르는 아픔이 계속 이어졌다. 잔잔한 파도인줄 알았던 것이 밤이 되면 무서운 태도로 돌변하듯 나를 삼킬 듯한 두려움까지 엄습했다고 하면 믿을까.

 

그토록 가라앉는 기분은 날씨의 꿉꿉함도 한 몫했겠지만, 이불 속에서 나가지 못할 만큼 굉장히 아팠다. 책을 읽고 이렇게 아플거라고 생각도 못했던터라 황당함까지 겹쳐왔다. 그러고는 당분간 신경숙 작가님 책은 들여다보지 않겠노라. 생각했다. 책 한권 읽었을 뿐인데 저 깊은 곳의 아픔까지 다 튀어나와 버린다면, 다시금 접하게 될 일이 더뎌지게 마련이겠지. 아직까지 읽어야지. 하고 있는 책만 있을 뿐, 이 책 이후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있다.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심장이 미친듯이 쑤시고 아려온다. 종이에 무심코 베인 손가락이 쓰린. 작은 상처라 할지라도 계속 신경쓰이고 찌릿한 그 느낌이 서서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오래도록 짓이겨낸 내 아픔에 대한 첫 드러냄이라고 할 만큼 강력하고 생생하다.

 

온전한 등장인물이 단 한명도 없다. 한없이 위태롭고 위험하다. 외나무다리에서 홀로 묵묵히 싸워내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쓸쓸하고도 고독한 존재들의 집합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청춘을 다시금 되살려내고 있으며, 제대로 보내지 못한 내 청춘에의 또 다른 경험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112쪽 중에서



함께 공유하면 상처가 치유될까.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길. 바래진 상처를 딛고 다른 시간 속으로 한 발짝 나아가길.

 

211쪽 중에서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 아주 힘센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332쪽 중에서

 


일본문학과 함께 했을 때는 호흡하지 못했던 나의 청춘들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났다. 내가 학창시절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그것들에 대해서 이제서야 생각해볼 시간과 마주하게 되었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추억 속에 지금의 이 느낌을 끼워넣었다. 그리고 또 다시 다짐한다. 내 마음속에 작은 아이가 세상에 다치지 않고 조금 더 힘세지기를, 그리고 강해져 주기를.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341쪽 중에서



어떤 시간을 두고 오래전, 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이라고 쓸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358쪽 중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생긴 일들을 고통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랐던 시간들.

 

362쪽 중에서


내 삶의 힘든 순간이 지나갈 때, 누구하나 나의 저 깊은 곳까지 헤아려줄 수 없었다.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간들에 대해 이제서야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용서할 수는 없지만 그 때에는 어쩔 수 없었노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고 안아준다. 제 때 위안받지 못한 모든 청춘들의 몫까지 전부 품어줄 수 있다고 마음으로 끌어안아줌으로써 한 줄기 눈물이 빛이 되는 그 순간을 맞이하는 소중한 구절들이었다.

 

 


내 말이 끝난 줄 알았다가 다시 이어지자 학생들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은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365쪽 중에서

바라고 또 바라기만 했던 시간들. 나만 상처받고 아프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던 수많은 시간들.

나의 청춘과 만나고 또 추억을 예쁘게 포장하는 그 시간들 속에서 정작 나의 사람들에게는 선뜻 내가 먼저, 가 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순간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사람.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가고 안아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허전하고, 시린가요? 그런 마음을 위로해줄 누군가. 당신의 이야기를 그저 묵묵히 들어줄 그 누군가.

말없이 안아주고 손 잡아 줄 누군가를 찾고 있나요?

 

거기에 가만히 있어요. 내.가.그.쪽.으.로.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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