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미끈거리는 슬픔
류경희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차고 미끈거리는,

슬픔이라는 건 어떤 종류의 슬픔일까?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종류의 슬픔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도녀 (차가운 도시 여자) 혹은, 차도남 (차가운 도시 남자) 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는 지금,

차갑다는 것은 일종의 트랜드가 되어버렸다.

차가운 도시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은 오롯이 자신조차도 차가워져야한다는 것.

그래야 자신이 받는 상처가 다른이에 비해 덜하고, 온전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

마음에 숨겨두는 것 하나쯤은 당연하게 지니고 있는 현대인들.

 

어쩌다가 우리는 제대로된 ’소통’이란 것과 멀어지게 되어버렸을까,

 

 



 

혼자 슬픔을 삭이고, 견디는 것에 어쩌면 익숙해져가고 있는 우리들.

하지만 끊임없이 누군가와의 소통을 원한다.

그래서,

서로 얼굴을 알고 있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도 가능한 것이리라.

나의 옆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보다도,

어쩌면 실제 얼굴 맞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한없이 풀어내고, 온전하게 가벼워지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의 생각을 네모난 틀안에 풀어내며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차가운 방구석에서 무언가를 풀어내놓으면, 풀어낸 글 만큼이나 살아있음을 느낄 때가 종종있다.

정체되어 있지만, 실제는 정체되어 있지 않은.. 나는 이렇게나마 나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외치고 있다.

당신도 나와 소통해주시겠습니까...?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외치는 목소리. 소통,

 

 



 

일상에 지친 남자 셋, 여자 셋,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여섯명이 어느날 알 수 없는 ’메모리박스’ 에 초대되고,

여섯명만이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들만의 소통을 시작한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여러가지 친목도모 카페모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함께 모이게 하거나, 음악, 핸드폰 등 같은 취향을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또하나의 사회. 익명으로 활동할 수있기 때문에 서로 부대끼며 직접 소통해야하는 생활과는 다르다. 그야말로 간접소통.

쉽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만날 일이 없으니 거짓이 난무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미지 관리가 무척이나 중요한데, 그래서인지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해본지 오래되었다. 절친한 친구나 지인이 있다해도 진정한 속내를 풀어놓기란 쉽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벽을 만들어 놓고, 그 벽안에 존재하는 우리네 마음들. 갈 곳없는 그 마음들을 모르는 공간안에 그저 풀어놓는 것으로 위안을 받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 보면 그 사이를 조율해가면서 이야기 해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그곳에서 위안받고는 한다. 그 말이 진심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그 이야기에 실제 수긍하지 않고 그저 보고 지나친대로 상관없다. 그저 누군가 들어주고 있다. 는 그 느낌만으로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치유, 위로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책 또한,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내가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적어지는 관심인 만큼, 건성건성. 그렇게 소외되어가는 사람들이 메모리박스에서 만났다. ’메모리’라는 연결고리로 만나게 된 여섯사람이지만 실제 초대한 ’메모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평소 풀어내지 못했던, 위안받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자신의 방에 조금씩 풀어내며 서로 소통하고, 의지한다. 실제로는 만나서 소통을 하기도 하고, 예전과는 다른 ’메모리’라는 연결고리 안에서 새로운 위안을 얻는 그들. 그들의 이야기 안에서 가상공간에서 위안을 받으면 얼마나 받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주변에서 위로 받지 못하는 부분들을 가상공간에서 어느정도 치유하고 있음도 인정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세상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모습의 나.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소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 안에서도 불만, 불안, 고독이 형성된다. 자신과 맞는 사람만을 찾을 수는 없으므로. 그저, 나를 이해해주는 그 누군가 던 한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기억속에서 잊고 지냈던,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한 소녀가 있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가 하나로 연결될 때에는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여섯명의 기억이 모여 진정한 메모리 박스를 형성하는, 그래서 그것으로 온전해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일인인 그녀. 그녀가 왜 그들을 한 자리에 초대했고, 그들에게 어떤 것을 주고 싶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초점이 모아지면서 가상공간이라 할지라도, 소통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물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생명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에 언급 되어 있는 물고기들을 떠올리며 물고기 종류도 찾아보고하면서 관심을 가지려고는 했지만, 좋아하지 않는 그것에 대해 어떤 계기가 없는 이상은 다가가기 힘들 듯 한데..

애완용으로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많지만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은 그에 비하면 많지 않다. 실제 옆에서 부대낄 수 있는 존재와 수족관에 갇혀있어야 하는 존재. 그것들을 비교하고 있자니, 물고기로 만들어낸 닉네임, 그리고 차갑고 미끈거리는 슬픔에 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왜 물고기라는 소재로 현대인을 나타내고자 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수족관이 곧 메모리 박스이고, 여러가지 물고기가 그들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음직한 물고기들이 한 수족관 안에서 위안받고 기억들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안이 맞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하고, 그런대로 견디는 것들은 자기가 살았던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으려 애쓴다. 먹이를 줄 때만 수족관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일상에 지치면 그 먹이를 주는 것 또한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다 문득 수족관 안을 들여다보면 둥둥 떠 있는 물고기를 발견하게 된다. 현실에서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어가는 우리네들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자신들이 만든 벽 안에서 언젠가는 잡아먹힐 수도 (물고기라면 횟감이 되겠지..)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어쩌면 저 멀리 그렇게 살다 본인의 운명을 다 할 수도 있겠지..그렇게 이리저리 떠도는 인생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차고 미끈거리는 슬픔에 빠져 공허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위로받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나 또한 이런 소외감 속에 빠져 있기에 공허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관심 가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관심가져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진정한 소통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꾸만 차가워지는 나의 마음을 돌이켜보게 만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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