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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ㅣ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세계문학의 숲.
인간실격, 차가운 밤에 이어 세번째로 접하게 된 ’나사의 회전’
고전이라면 아예 머릿속에서 딱 지우고 접할 생각조차 없었다. 사실, 편독이 심해서 한 작가만 주구장창 파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라 고전에 마음을 쏟을 여유같은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지금 출판되고 있는 홍수같은 책들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몇 퍼센트의 공감정도로만 느끼고 있는데, 고전이라, 겁 없는 자의 도전. 나에게는 맨땅의 헤딩. 이해하면 좋고, 아니어도 할 수 없는 그런 정도.
수십번을 고민했을거다. 표지부터 으스스한 것이 딱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임이 틀림이 없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홱 바뀌어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책에서 예상치 못한 매력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그 책은 좋은 책.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면 대략난감. 도입부를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진도가 안나가는지. 역시, 무리였나. 실제 이야기로 들어가는데 쓸데없이 설명이 길고 장황하다고 느껴졌다. 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고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어서 본론, 본론’ 하며 쉴새없이 재촉하는 내 모습에 더 빠져들기 힘이 들었다.
안도감을 느낄 순간이 도래했으므로 그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안도감이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저 팽팽히 당긴 줄이 끊어지면서 생기는 안도감, 또는 질식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느끼게 되는 안도감이었다. -151쪽
이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라고 하기에 가장 알맞은 문장을 뽑아보았다. 팽팽히 당긴 줄이 끊어지고,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느끼게 되는 안도감. 한껏 궁지로 몰렸다가 그것을 이겨내고, 이겨내고,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그 순간 순간을 침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언제 본론으로 들어가나, 하고 재촉했던 나의 모습은 이런 폭풍우의 휘말림 속에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헤어나올 수 없게 하며, 온 몸을 얼어 붙게 만드는 공포감이 새어 나왔다. 숨을 죽여 침묵했고, 숨을 다시 토해내고 그것을 반복하며 마치 나도 그 유령에게 휘말린 듯한 오싹한 전율이 일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어. 기분이 이상해. 정도의 공포감이 아니다. 유령을 통해 보여지는 악과 그 악으로 부터 아이를 구해내고 싶은 선생님 사이의 밀고 당기는 의식의 경계. 그 의식 싸움에서 다가오는 기 싸움이랄까.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분명한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박혀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도는 회오리. 나사가 휘감기듯, 어지럽게 회전하는. 종착점이 어딘지 해명해주지 않은 채 뿌연 안개 같은 느낌의 이야기였다. 제자리에 머물러 하염없이 쳇바퀴 도는, 헤어나왔다고 생각해도 헤어나온 것이 아닌. 도저히 지켜낼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남긴 채.
내가 그 입장이 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질질질 이끌려 다녔고, 자꾸만 빠지는 수렁 속에서 구토가 나오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확대되어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물체에 화들짝 놀라는 느낌처럼, 그것이 나에게 다가와 그 경계를 뚫어 다 삼켜버릴 것만 같은 공포. 미세하게 작아져버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두리번 거리며 찾아도 결국에는 내 뒤, 혹은 내 옆에 숨어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비소를 흘리는 것 같은. 그것을 내 눈이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공포. 눈을 질끈 감아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환상. 그만큼 강력하고, 지배력 강한 그것들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책 속에서 이렇게 휘둘려보기는 아마도 처음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들의 지배력에 꽁꽁 휘감겨 혼란스럽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무섭다는 표현보다도, 두렵다는 느낌이 더 맞을 것 같다. 나는 벌써 지배당했다. 여전히 나사는 박히지 못한 채 쉼없이 그렇게 돌고 또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