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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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독, 추위가 견디기 힘들다. 가까이에 난로를 두고 있는데도 손과 발이 얼어붙을 것만 같다. 이리도 차가운 날. 차가운 밤과 마주했다.

표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장미, 아름다움 속에 가시를 숨기고 있는 꽃. 화려하지만 품고 있는 가시 때문에 도도해질 수 밖에 없는 꽃. 하지만, 꽃이기에 시들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꽃처럼 피었던 생명, 붉은 피를 토하고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지독히도 모질고 힘에 겨웠던 그 시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중국소설은 '눈으로 하는 작별' 다음으로 두번째이다. 사실 '눈으로 하는 작별'은 도입부만 읽다가 너무 읽히지 않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으니, 제대로 읽은 것은 아마 처음이 될 것이다.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로 인간실격을 접하고는 이 작품 또한 선뜻 겁없이 덤벼들었다. 스르륵 읽어보니, 대화체가 많아서 금방 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왕원쉬안. 이 책의 주인공이다. 어머니, 아내와 함께 한 집에서 지내는데 고부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갈등의 이유인즉, 아내는 은행원이라 원쉬안보다 밥벌이가 낫고, 그 핑계로 집안일과 아이는 뒷전인 -시어머니의 표현을 빌려 - '꽃병'일 뿐인 며느리. 지금도 그러한데, 이러한 며느리와 사이좋게 지낼 시어머니는 거.의.없.다. 자신의 아들이 밑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수성 또한 어머니의 존재자체를 인정하기 힘든 그 사이에 원쉬안이 있다. 원쉬안은 어머니와 아내. 두 여자를 모두 사랑하는 좋은 사람. 중간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툼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든 사람. 그 우유부단한 성격때문에 책을 보는 내내 답답하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왜 그렇게 좋은 사람이어야만 하는 걸까.

 


 

마음만 좋아서는 이런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힘이 드는걸 알지만,

그는 그녀들을 똑같이 사랑했고, 그저 혼자 아팠던 것 같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지만, 진정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의 속을 갈아먹어가며 아파야했던 원쉬안에게는 정말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좋은사람의 천성이, 가장이라는 책임이, 그녀들의 두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그의 손이 안타까웠다.

 진심으로 그의 마음을 안아주는 이는... 어째서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리도 마음의 문을 닫고, 이토록 어둠 속을 혼자 걷게 만들었던 것인가.

 



 

원쉬안과는 다른 생각을 품고 실행해 옮길 줄 알았던 그의 아내 수성.

그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지만, 그리고 사랑했던 남편이 있지만

전시상황, 그리고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선택했던 그녀.

그들의 곁에 남아봤자 자신에게 아무것도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의 독백속에

희생되는 사람은 역시 따로 있는 것인가.

어머니, 아내, 며느리로서의 책임은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원쉬안과는 다른 그녀를 볼 때마다 소름이 돋고 울화통이 치밀었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도, 진정한 나를 찾는 일도 무의미하게 되어버린채 모두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고독 속의 길이었고 어둠의 빛을 밝혀주는 가로등 불빛 하나도 허락치 않은 채 차갑게 차갑게 식어가야만 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자.

당신을 환하게 비춰주는 한줄기 빛이라도 존재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뱉은 말에 상처와 고통에 휩싸이는 이는 없는지.

당신만이 따뜻한 밤을 맞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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