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꼭 크리스마스 같은 카드를 꾸밀 때에 쓰이는 말리면 부풀어 오르는 솜사탕, 혹은 팝콘펜 처럼 올록볼록한 '라이팅 클럽'이라는 표지의 글자.

불빛에 비추어 보았을 때 반짝거리던 writing.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표지에 유난히도 끌렸으리라 생각한다. 컴퓨터를 통해 인쇄되어 나오는 글보다는 타자기에서 뱉어내는 용지와 끼익 끼익 소리가 글쓰기를 한층 더 자극하듯 이 책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요즘은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만 같다. 블로그에 포스팅만 잘해도 돈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미기와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나는 그저 흉내내기에 급급하다. 잘 꾸며놓은, 한없이 깔끔한 블로그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쉼없이 머리를 쥐박기에 여념없다. 남들은 이렇게도 재주가 많은데, 내 꼬락서니는 참 우습다. 하하하.

이 책을 들여다 본 이유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였다. 나도 돈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조금은 불순한 의도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도입부에는 실로 실망스러웠다. 글을 쓰게 되는 이유 등이 언급될테지만, 글쓰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주인공의 묘사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과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더 씨름을 해야 되는 것인지 머리가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잘 넘어가지 않았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기를 수십번. 책을 붙잡고 잠이 들기 일쑤였다. 아마도 나는 여태껏 잘 넘어가는 책만 읽는 습관탓에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흥미를 떨어뜨리거나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나와는 다른 주인공의 습성 - 엄마와의 사이, 독특한 발상 등 - 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중간즈음이 되면서 주인공을 이해하려는 나의 생각의 전환으로 훨씬 읽기 수월해졌다. 그리고는 주인공이 좋아했던 책을 필사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읽을수록 빠져드는 책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글을 쓰고 싶은 순간엔 그 특유의 모드가 있는 것 같다. 그 모드에 접속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모드가 바뀌는 순간도 있다. - 55쪽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어김없이 어떤 것을 경험하고 난 뒤이다.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아닌 나에게는 쓰지 않으면 안되는 압박 같은 것도 없으니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오늘처럼 늘 만나는 사람과의 늘 하던 일과 외에 다른 특별한 일을 했을 때 라던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가 옛 사람을 추억하게 만든다던지, 첫눈이 내렸다던지 하는 자주 있지 않은 일을 경험하고 나면 으레 글이 쓰고 싶어진다. 타고난 재능은 정말 없는지 이따금씩 감성에 잠기지 않은 채 글을 쓰려고 하면 생각이 뒤죽박죽 엉켜버리고 만다. 언제 어디서든 뚝딱뚝딱 쓰고 싶은 글이 써진다면, 글쟁이는 더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해본다.

 

글과 사람은 같다, 같지 않다? 전혀 같지 않았다. - 64쪽 내가 쓰는 글과 그 글을 쓰는 나는 전혀 같지 않다. 다른 사람이 들여다 보는 나는 어떤 느낌이냐하면, 들은바로는 굉장히 밝고 말이 많다. 잘 삐지고, 울컥을 자주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 웃는다. 기타 등등. 내가 쓰는 글을 보고 있으면, 억지로 웃는 척. 어두운 척. 아픈 척. 그놈의 척척척. 내가 쓰고 있는 글 속엔 언제나 어둠의 아이가 등장한다. 그것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소녀감성이라는 녀석 때문인데, 감성적일때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습성 때문에 괜히 센치하고싶어하고 분위기 잡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힘이되어주고 싶어하는데, '나의 글'에는 위로받고 싶어하는 내가 존재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나는 그 목록에 닿느라 우주 한 바퀴를 빙 돌아야했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목록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목록. - 162쪽 글쓰기를 좋아하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만의 목록을 가지고 싶을 것이다. J의 칙령이 주인공을 그렇게 이끌었듯 책 속에서 찾은 보물들을 필사하려면 나는 앞으로 우주 한 바퀴 그 이상은 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읽고 싶은 글들만 읽으려고 했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했던 나에게 변화의 바람이 스미고 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나의 생각을 굽히지 않은 채 나만의 틀 속에 갇혀지냈던 것이다. 더 넓은 세계를 보지 못했기에 늘 글을 쓰더라도 같은 글을, 조금도 나 답지 않은 글을 썼던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느낌, 움직이는 느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 231쪽  나는 앞으로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따스함을 주는 글을 말이다. 여태껏 내가 끄적이고 있는 글들은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주인공이지만, 나에게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려주기에 꼭 맞는 책이었다. 누군가 많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나답지 않은 글 말고,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내가 정말 표현하고 싶어하는 나다운 글을 쓰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