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인. 간. 실. 격.

 

  고전에 눈을 돌려 읽어보기로 마음 먹고 장바구니까지 담았지만 끝내 품을 수 없었더랬다. 쉽게 읽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해 어떤 의미로든 나에게 와 닿지 않을거라고. 나에게 그렇게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고. 마음 속의 포장을 풀어내지 못한 채 그렇게 멀찌감치 바라만 보고 있던 책이었다.

  많은 사람에 의해 번역된 책이라 누군가의 조언을 받지 않고서는 섣불리 덤빌 수 없었다. 사실, 한 두어군데의 출판사를 제외하고는 표지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은 점도 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표지가 있긴 하였지만 그 마저도 인.간.실.격. 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서는 그냥 덮어버렸었는데. 일단, 표지가 여태껏 출판된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는 점. 그래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 그의 이름을 인.간.실.격.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제목만 낯이 익었을 뿐 사실, 작가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무언가 검객의 느낌이 나는 것은 나 뿐일까. 아마 이름에 '무' 때문인데, 아무래도 이름이 참 괴상하다. 일본학과이고, 또 일본 계열에 종사하고 있어 특이한 이름은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이 안가는 이름도 있구나. 특이하다 못해 친해질 수 없는 이름같이 느껴지는 건 도대체 왜 일까.

 

  어떤 인간이었길래 책 표지에 정말 싫다는 표현을 과감하게 실을 수 있었을까. 역으로 소설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겠지. 정말 말 그대로 인.간.실.격.의 존재였을까. 끊임없는 물음에 물음을 물고 늘어지는 이 책. 벌써부터 고비는 와 버린 듯 했다.

 

  나는 무(無)다, 바람이다, 텅 빈 존재다. 그런 생각만 첩첩 쌓여서 나는 광대 짓으로 가족을 웃기고, 또한 가족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하인이나 하녀에게까지 필사적으로 광대 짓을 서비스했던 것입니다.-19쪽 

 '광대 짓.'... 이 책 이 전에 마음에 들었던 다른 번역가의 손을 거친 인간실격에는 '익살'이라고 번역 되어 있었는데 익살보다, 광대가 훨씬 와 닿는다. 내가 생각했던 인.간.실.격. 이라면, 조금 더 거친 표현이 필요이상으로 남용되어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익살보다 광대의 편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더 잘 반영하고 있는 탓이리라. 나 자신이, 나 자신일 수 없고 벗을 수 없는 가면을 쓴 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광대 짓을 하고 살아간다면 그 마음의 정도는 얼마나 공허할까. 지금 느끼고 있는 나의 고독을 이토록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 광인은 마치 나를 위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난 벌써 이 작품에 매료된 것이겠지. 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안아주거나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따위는 전혀 생기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가 느꼈을 고독을 씹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늘 어긋났던 주변의 상황. 그리고 사람들. 철저히 내가 아니어야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설사 어울린다 하더라도 그곳엔 진짜 내가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러면 태어나기 전부터, 이랬어야 할 운명이란 말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누가 나에게 알려줄 수 있을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그대로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건 얼마나 만만하고 어리석은 짓인가.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자신의 주관에 따라 아름답게 창조하고, 혹은 추한 것에 구역질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고 표현의 기쁨에 젖는다. 즉, 타인의 생각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화법의 원초적인 비전을 다케이치에게서 전수받은 것입니다.-40~41쪽

  나만을 생각하며 살 수 있었다면, 광대 짓 같은 건 하지 않았겠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려고 하기에는 정말로 잘 모르겠는. 내가 정말 이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혹은 싫어하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나'자체가 올바로 성립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말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나의 생각따위는 잠시 물 위로 띄워졌다가 금방 가라앉아버린다. 전혀 닮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던 존재. 누구라도 '싫어'라고 내뱉을 만한 사진 속의 존재가 나와 겹쳐지는 순간. 나 조차도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나도 실격인 것일까 하고.

특징없이 태어난 것. 무엇 하나 불분명한 것이 분명 나의 탓만은 아닐테지만, 그것을 견디고 살아가는. 아니 견디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존재함에 이유 같은 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허무함이 찾아든다.

 

  하지만 딱 하룻밤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자 나는 원래의 경박하고 가식적인 광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 입는 일도 분명 있습니다. 더 이상 상처를 입기 전에 어서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예의 광대 짓이라는 연막을 쳤습니다. -62쪽

  그래요. 나도 겁쟁이입니다. 진정으로 '사랑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정말로 존재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늘 연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저 그렇게 외면 당하지 않는 채로만 버텨줄 수 있는 시간이라면, 광대 짓 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스스로 그렇게 위안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는동안 '-습니다' 라는 문체때문에 그 말이 입에 베여 나도 모르게 이렇게 혼자 하소연하곤 했다. 광대 짓에서 벗어난다면,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아도 해결의 실마리는 나와 있지 않은 듯 하다.

그렇게 미완의 존재로 늘 겉돌 수 밖에 없어서, 조그마한 낮은 속삭임에도 벌벌 떨던 나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어 버렸다.

 

처세술이 좋다 ....... 그건 정말 나로서는 쓴웃음이 나는 말이었습니다. 나한테 처세술이 좋다니! 하지만 나처럼 인간을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대충 속이며 사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으면 탈도 나지 않는다'는 영리하고 교활한 처세술을 신봉하는 자들과 똑같은 게 되는 걸까요. 아아, 인간이란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고, 아예 잘못 보았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 생각하고, 평생 그걸 깨닫지도 못한 채 상대가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고 있는 건 아닐까요. -92쪽

  내 마음을 허락했던 벗이라 할지라도 다 나의 마음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저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게 마련이니까. 마음을 준 만큼의 무언가를 다시 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다 그 마음의 크기가 같을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서로 이렇게 엇갈리는 거겠죠.

누군가의 마음을 꺼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사람 모르게 그 마음을 알아주고 싶을 때.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것만 같이 불안할 때. 마음을 정말 꺼내볼 수 있다면, 평생 깨닫지 못하는 마음 따위는 없을까.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만, 나는 솔직히 그 말에 대한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가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만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해보아도, 돌연 나와 같지 않은 마음이 돌아오는 것에 무언가에 찔린 듯 고통을 수반하기에. 그리고 그 돌아오는 고통 마저도, 내가 감수해야함을 잘 알고 있기에 늘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안다고 장담하는 그 어떤 것도 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바보가 어찌 거짓이 아닐까. 노력하면 할수록 나는 거짓에 거짓을 덧칠해갈뿐이다. <로마네스크> -186쪽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하지만, 노력한다. 괜찮다. 괜찮다. 슬픈 모습 보이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어쩌면 나를 위한 가면.

우리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것이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가면을 벗어버리고 진실되게 살자!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다. 그 가면을 벗는 순간. 상처받을테니까. 나를 지키기위한 가면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는 힘들어도 괜찮은 척, 슬퍼도 웃고, 그냥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바보. 그렇다. 나 또한 거짓말쟁이이다.

 

  그 때 나는 아마도 <인간실격>이라는 작품보다 이 소설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의 자살을 읽었던게 틀림없다.

- <해설> 253쪽

나도 처음에는 '자살'이라는 점 때문에 읽는 내내 한 구석에 어둠의 기운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조금은 무덤덤하게 읽어내려갔다. 많이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나는 잘해오고 있다.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동요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해설은 읽지 않으려고 했다가,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 전반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입장이 되어 보기로 했다. 해설을 읽고 난 후,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내가 처음 맞딱들였던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고, 온통 이 세계에 매료 되어 있었다. 몇 구절 적어 놓은 부분들은 몇 번 읽고 또 읽어도 심장이 떨렸다.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게 될지, 그냥 이대로 머무르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인.간.실.격. 이 작품 만큼은 꼭 지니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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