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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버스데이 - 부모와 아이의 인연을 60억 분의 1의 기적
아오키 가즈오.요시토미 다미 지음, 오유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부모와 아이의 인연은 60억분의 1의 기적
이 글귀로 내 마음을 한 순간에 확 사로잡은 책이다.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독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처음 손에 잡는 순간부터 가슴이 철렁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니. 그 말이 귓전에 쉼없이 맴도는 것 같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렇다. 나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스카와 동병상련이었다.
'엄마한테 사랑받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요.......'
어릴 때 부터 나도 아스카처럼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었다. 나만 조용하게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면 집이 평안할거야. 하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다. 그래서 속에 있는 말들을 잘 꺼내지 못하고 억누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급기야는 감정이 메마르기까지 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시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할 뿐, 나에게는 햇볕 한 줌 허락하지 않는 어둠의 시간들이었다. 어떤 모습이 그토록 엄마를 화나게 만드는지 모른 채, 나도 누군가를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그래서 늘 외로웠다. 아스카 역시 그랬으리라.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안다. 그래서 아스카를 미워하는 엄마를 증오했다. 어떤 이유가 있었건 열 한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마음이 괴롭고 억울했다.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사람에게 받는 미움은, 살아갈 이유를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기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신호 아니었을까? 자신의 존재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니.
아스카의 마음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었겠지."
그저 따스한 시선과 손길이 필요했을 뿐인데, 어린아이에게 무관심은 학대나 다름이 없다. 사랑과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한 나이. 다른 가족의 생일은 다 챙겨주며 축복을 해주어도, 그 자리에 섞일 수 없었던 아스카. 내 어린 날의 기억으론, 나도 가족과 생일파티를 한 기억이 없다. 엄마, 아빠의 축복 속에서 촛불을 끄는 건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 아스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오빠가 엄마에게 사랑받는것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엄마에게 아무리 관심가져달라고 눈길을 보내도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외면. 엄마 대신 아스카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함께 촛불도 불어주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싶었다.
"정답은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었어. 땅속과 물속 그리고 하늘에도 있었고. 이 세상은 벌레도 식물도 땅도 바람도 다 한데 어울려사는 곳이야. 그 하나하나 모두가 가치있는 자연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엄마가 자연이 낳은 은혜로운 생명이라면 나도 자연 속의 은혜로운 선물인 거라고. 그렇게 모든 것들이 더불어 살아가야 이 세상이 조화롭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저 사랑받고 싶어서 아둥바둥거리던 나와는 달리, 아스카는 훨씬 강한 아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자연과 어울리고, 그 자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아이.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깨우친 아이. 어떻게 엄마의 입장에 서고, 이해하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을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들 마음 속에도 아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아이를 꺼내기는 쉽지 않다. 세상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 아이의 세상은 훨씬 더 넒고 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아스카. 엄마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어루만져줄줄 아는 아이였다. 나는 그저 도망치기만 했다. 그리고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원망만 했을 뿐이다. 아스카처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비겁했다. 내가 안아주어야만 하는 여린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아스카에게 되려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이 낳은 은혜로운 생명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린 날의 어둠에 갇힌 나는 이제 없었다. 응어리가 녹고 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감사해요.'
'할아버지가 아스카의 마음에 영양분을 가득 심어주셔서 오늘 이렇게 해낸 거 같아요.'
마음의 영양분은 다른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일이다. 존재감이 없던 아이가, 제 스스로 빛을 내기 까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변할 수는 없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스카 스스로가 변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래서 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아스카, 시간은 바람과 같단다."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지. 아무리 괴롭고 슬픈일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흘러간단다.
지나간 시간에 사로잡혀 있으면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지 못하고 흘려버리게 된단다."
그 누군가에게서 꼭 듣고 싶었던 말. 이 말은 아스카 혼자 들은 것이 아니었다. 아스카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함께 아팠고, 함께 성장했다.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그리고 내가 먼저 변해야 함을.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더 소중한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눈물을 뚝뚝흘려가며 슬픔과 감동을 함께 했던 책.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없다고, 우리는 누구보다 소중하다고 소리치고 싶었던 책.
훗날, 나에게 아이가 생기게 되면 꼭 함께 다시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아스카, 태어나줘서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