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이자 작가인 커밋 패티슨은 원래 다른 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한두 페이지 정도의 배경 이야기로 인류 화석 아르디피테쿠스를 실으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제에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고 완전히 빠져들면서 본격적으로 치밀한 취재와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 발굴 팀들과 현장 탐사 등을 통해 인류 진화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는지 한때는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부족들의 공격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발굴 열정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여정을 이 책 <화석맨>을 통해 소설처럼 재구성하였다고 소개한다.

벽돌 책과 같은 두께의 <화석맨>은 고고학이나 인류 기원에 호기심이 있는 내 눈길을 끈 작품이다.
전시나 박물관을 다니면서 다양한 문명의 발견을 접하면서 어떻게 그 발견 현장을 찾을 수 있었는가, 어떻게 그 관계들을 연결 지었는가, 어떻게 그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가 등 발견부터 그것에 대해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정독할 수밖에 없었다.
관련 분야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들을 갖추어 써 내려가는 내용들을 하나라도 놓친다면 저자가 '아르디'의 발견에 침묵했던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고자 함을 뒤따르기 버거울 것 같았고, 또 한 줄 한 줄이 머리에 쌓이고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흔히 생각했던 인류 기원, 화석 발굴에 대한 내 생각이 너무 한정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몰두한 나머지 화이트 교수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아파르 저지대에서 눈을 크게 뜨고 해를 등지고 오르막길의 그림자 바깥에서 반짝이는 빛을 찾아가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발, 골반, 척주의 발견, 그리고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치아에서 얻을 수 있는 단서들.

이 책을 단숨에 읽기엔 내 식견이 부족해서 다소 긴 텀으로 읽고 다시 반복해 읽었다.
그러니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들에서 인류 기원을 찾기 위해 본질적인 탐사와 탐구, 진화의 연결 고리들이 그물처럼 넓혀졌다 좁혀졌다 한다는 자연 선택과 유전적 스위치의 on/off처럼 내 머릿속에서도 이 쉽지 않은 지식들을 넓게 펼쳐 보고 좁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류 기원이라는 '루시' 화석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아르디'는 축약하기 전의 이름 인 '아르디피테쿠스'부터도 낯설었다.
지금은 루시보다 친근한 이름이지만, 루시와 아르디의 대치는 긴 세월 동안 경쟁적 대치 상황을 이루어왔다.
이는 연구하는 학자들이 어느 이론들을 따라 특정하느냐에 따라 연대의 관점이 달라지는 모순들을 사실 그대로 묘사했다. 이 증거들을 수집해 기원을 추적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의 공을 들였던 이 추적자들의 사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화석.
초반에는 화석으로 인간의 계통도를 그린다는 것에 이견이 없었지만, 여러 고인류학자들을 만나면서 그들 각자의 연구를 통해 분자유전학, 분자생물학, 해부학, 생체역학, 유전체학, 계측학, 진화론 등의 관계를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족보행과 직립보행의 증명을 위해 생체역학을 알아야 하고, 직립보행이 진화론에 어떻게 얽혀있는지도 곱씹어 봐야 했다. 작가는 이 과정들 속에 담긴 학자들의 고찰을 보여주며 그들의 통찰을 통해 상황을 분별하도록 돕는 데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화석만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추측하고 증명할 수 있었을까?
아르디는 한때 상상할 수도 없던 인류와 아프리카 유인원 사이의 공통 조상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사이의 진화적 단계를 보여줬다. 화석만으로 미스터리를 풀 수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켜줬다.
p.521

DNA, 게놈으로 과거를 추적하는 과학의 진보가 눈부시지만,
화석에서 얻을 단서는 한정적이었기에 비밀리에, 폐쇄적인 연구를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과거를 연결하는 과정과 방식에 대한 증명은 여전히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나에겐 오히려 여전히 의구심을 거둘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가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전통 연구 방식을 고수하며 동료들의 연구와 논문들을 일갈한 팀 화이트 교수의 통찰력과 이를 캐치한 저자 덕에 지금의 인류 진화사 전반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애썼는지, 그들이 인류 기원을 찾기 위한 거쳤던 과정들,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와 경쟁, 그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이 이 책에 생생하게 담겨있어 학자들이 견고하게 쌓아왔던 업적들과 노력이 이 책으로나마 다소 위로받지 않았을까?

인류의 기원을 쫓아 화석을 발굴하며 현장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화석을 쫓는 이들. 화석맨.
고인류학계의 위대한 성취와 동시에 인류 기원과 진화의 기록이자 인종을 아우르는 멋진 동행의 경이로운 여정에 박수를 보내며, 여러분들도 함께 동승해 보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