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버섯 -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사계절 그림책
정지연 지음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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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주 신비롭고

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났다.

초록색을 잔뜩 머금은 책 사이사이로

분홍색의 귀여운 버섯들이 빠끔 고개를 내민다.

그 사이를 경쾌하게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사슴들과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마음속 웃음 단추가

간질간질 거리는 책.



오늘은 제3회 사계절 그림책상을 수상한

작은 버섯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참고로 이 책은 현재 '10월 28일 기준'

알라딘 화재의 책에 선정되었다.

우연히 동시집 하나를 사려고 알라딘에 들어갔다가

화재의 책에 명단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작은 버섯이 솔방울을 두드림으로 깨어나고 성장하며 온 세상을 뒤흔든다. 숲속에서 빅뱅처럼 벌어지는 일을 작고 큰 존재들의 아이러니로 그려 낸 작품이다. 작은 것이 크게, 큰 것은 다시 작은 것을 깨우며 에너지를 전환하고 서로에게 생명의 기운을 나눈다. 서현·송미경·이지은(제3회 사계절 그림책상 심사위원)

이야기는 하늘에서

작은 솔방울이 땅으로 쿵 떨어지며 시작된다.

글자마저 함께 솔방울과 낙하하는 기분이 들어,

발끝을 옴짝 거리게 된다.

"솔방울은 땅에 떨어져서 참 아프겠다"

라며 아이에게 말하는데,

다음 장을 넘기니

'아뿔싸!' 말을 정정해야 했다.


흙이 아프단다.

솔방울이 떨어진 자리에

옴폭 패인 자국은,

내 머리마저 얼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이는 "아, 땅도 아프겠다"라며

까르르 웃는다.

땅의 놀란 표정이 얼마나 놀라고

아팠는지 실감 날 정도이다.

생각해 보면 왜 우리는

떨어지는 것만 아프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 떨어지는 것과 부딪히는 땅도

적잖게 아플 텐데.

그리고 우연히 땅을 아프게 했던

솔방울의 낙하로,

작은 버섯은 땅 위로 쑤욱~! 솟아오른다.

작은 버섯은 비도 맞고,

자신에게 놀러 오는 곤충들과 어울리며

폴폴 홀씨를 날린다.

폴폴폴 세상을 가득 채울 만큼

자신의 홀씨를 날린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 버섯을

중심으로 어떤 서사가 펼쳐지나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난다.

열심히 홀씨를 날리고 있는 버섯을

아무렇지도 않게 톡 뜯어먹어 버리는

사슴의 모습에

아이도 나도 둘 다 어벙해졌다.

'어랏, 버섯이 주인공이 아니었네'.


그다음 장면부터는

우리 아이와 나의 웃음 버튼을 재생시켰다.

커다란 사슴이 작은 버섯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사슴이

타닥타닥 달리기를 하고,

그로 인해 흙 속에서

버섯들이 쏘옥쏘옥 올라오고,

그 작은 버섯들을 다른 사슴들이 맛있게 먹고.

버섯을 먹고 나면

사슴이 기분이 좋아져서 뛰고,

사슴이 뛰고 나면

그 자리에서 버섯들이 솟아나고

그 장면들이 반복되며 재미가 더해졌다.


그리고 밤이 커다란 숲을

꿀꺽 삼켜버리며

이야기가 끝나는 듯했다가,

작은 벌레의 등장으로

아이는 또 까르르 웃는다.

가장 좋았던 장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지막 장면을 꼽을 정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그림책을

쭈구리고 앉아 또 보고 또 보는 걸 보니,

정말 재미있나 보다.


처음에는 그저 웃으며 그림책을 보았는데

이 책, 볼수록 매력이 있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며,

버섯의 홀씨가 무엇인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사슴들이 왜 좋아했는지

종알종알 질문을 한다.

온몸으로 버섯이

홀씨를 어떻게 날렸는지

표현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까르르 웃는다.


요즘 아이가 동시에 푹 빠져 있는데,

글의 구성이 동시 같아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쉽고 간결하지만 확실한 전달력이 있었다.

덕분에 읽고 또 읽는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지, 읽을 때마다 웃는다.

복잡하지 않은 그림체는

아이가 따라 그리기에도 딱 좋았다.

(참고로 우리 아이는 그림 따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림책 하나에 별 내용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솔방울은 작은 버섯을 깨우고,

버섯은 사슴을, 사슴은 숲을 깨우며

초록의 에너지로 꽉 채웠다.

아이는 솔방울을 통해

버섯과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나는 솔방울을 통해 내 인생을 되돌아본다.

발랄하면서 경쾌한 에너지가

가득 담겼던 정지연 작가님의 작은 버섯.

당신에게도 초록 에너지가 가득 차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해 본다.

​.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소중한 도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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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의 남자
김조안 지음 / 좋은땅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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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여자는 이 책이 나오면 쥐구멍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단 몇 줄이라도 어떤 이에게 웃음을 주고 공감이 되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째서 책 제목이 7시의 남자인가'의

의문으로 시작해, 웃음과 잔잔한 찡함으로

책을 덮었던 7시의 남자.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단 몇 줄이라도

웃음과 공감과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해 질 녘 시간이 기우는 시간,

마음이 낭만으로 차오르는 시간,

그 시간에 그녀에겐 어떤 마법이 일었던 것일까.



그날도 오전 11시, 오후 3시, 오후 7시

하루 세 번의 선 자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중략) 운명은 그렇게 7시의 남자와 이어졌다.





결혼 적령기에 하루 3번의 선 자리에서

마지막 남자였던 7시의 남자는,

그렇게 그 여자와 일생을 함께 하게 된다.

그 남자는 어떤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여자는 오전 11시의 남자와

오후 3시의 남자가 아닌

오후 7기의 남자를 선택했을까.

오늘은 그 남자의 이야기와,

그 여자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남자의 이야기



그 남자의 특징

1. 화가 많은 남자

2. 화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3. 화를 내고 금방 잊어버리는 남자


책 속의 남자는 '남편'도 아닌,

'배우자'도 아닌 '자기'나 '오빠'와 같은 명칭은

더더욱 아닌 '그 남자'로 지칭된다.

그래서 더 공감이 된다.

나와 함께 살고 있지만,

전혀 결이 다른 그 남자.

우리 집에도 하나 있다.

가끔 얄밉고, 화딱지 날 때도 있는데

'그 남자'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건 뭘까.

'그 남자'라는 단어 하나로

이해의 폭이 되려 넓어진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90% 이상의 여성들은

이 책에 나오는 남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기 집 남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 90%는 좀 심한가? 그럼, 70% 이상?!




그 남자와 살면서 괴로움도 있었지만

기쁨 또한 많았고 고마운 것도 많다.


자신의 남자를 이렇게까지

몽땅 까발려도 되나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고마운 것도 많다고 그 여자는 말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몇 십 년을 따로 살다가,

한 집에서 맞추어 살다 보면

당연히 괴롭기도 하고 힘듦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기쁨도 있고 고마움도 있고,

행복도 있기에 우리는

또 하루를 함께 살아가겠지.

담담하면서도 시원하게

그 남자의 이야기를 툴툴 털어내는

그 여자의 화법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에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나의 그 남자를 바라본다.


◆그 여자의 이야기






어렸을 때 생각으론 60이 넘으면 할머니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막상 이 나이가 되어 보니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친구가 말했다.

"철든 소녀"라고···.


나는 서른 살이 넘으면

여자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인생 끝나고도

10년을 더 살고 있다.

스무 살의 마음과

서른 살의 마음과

마흔 살의 마음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나 또한 그냥 조금 철이 더 들었을 뿐

크게 달라진 건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내가 할머니라 떠올리는 그 나이에,

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겠지.

조금 철이 든 소녀일 뿐,

큰 차이는 없겠지.

아직도 내 마음은

스무 살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순간 마음 한구석이 쌀쌀해진다.


이해가 안 되면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이해 안 하고 살면 된다.

살아가는데 어찌 날마다 좋은 일만 있으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지.


꼭 부부 사이만 아니더라도,

이 말은 모든 이들과의

인간관계에 적용이 된다.

'이해'라는 두 글자를

도저히 적용시키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그냥 이해하지 말자.

이런 날이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처럼,

사람이라고 어찌 다 같을까.

그것이 나의 시간과 인생을

아끼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예순이 넘은 그 여자는 생각한다. 잘 견디고 잘 참으며 잘 살아왔다고.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그래서 후회도 없다. 이것이 그 여자의 승리다. 나머지 인생도 그 여자처럼 그 여자답게 그 여자가 정답이다.

요즘은 이런 말이 있다. 3개월 사랑하고 3년을 싸우고 30년을 참고 산다고 이게 결혼 생활이다.


3개월을 사랑하고 3년을 싸운다는 말을

나는 아주 공감한다.

물론, 이후로도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 사랑과는 조금 다른 결이 다른 사랑이다.

내가 존경했던 분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아내분을 보면 심장이 뛰고 그래요?"

그랬더니 그분이 하신 말씀이

"그러면 심장에 병이 걸린 거야.

지금은 예전처럼 심장이 뛰진 않아도,

커다란 나무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며 살고 있지.

그게 더 깊은 사랑이란다."

이젠 그 말씀을 알겠다.

3개월을 사랑하고 3년을 싸우지만,

그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30년을 참고 살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깊은 사랑이란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그러듯, 그 남자도 그렇겠지.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공감으로,

때로는 위로로 손을 건네주었던

7시의 남자는 앞으로 나의 '그 남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슬쩍 힌트를 준다.

앞서 함께 한 시간은 10년,

(10년이란 단어에 혼자 깜짝 놀랄 정도로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쭉 행복했으면 좋겠다.

함께 영글어가는 인생이 되길,

그리하여 나도 60의 어느 날

이렇게 지나 온 나의 시간을 책으로

내 보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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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쥘 로맹 지음, 이선주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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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된 고전문학이라니.

거기서부터가 매력이 있다.

어떤 이유로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역주행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1923년 발표한 희곡이다.

처음 극장에서 상영된 후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정식 출간까지 하게 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나라에서

상영되었던 인기가 많은 희곡이라고 하니,

재미와 대중성 모두를 사로잡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지금부터 이 책이 역주행을 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하나씩 알아가 보자.


단순한 줄거리, 그러나 뚜렷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시사적 양면성. 몰리에르의 계보를 잇는, 의학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풍자. 100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이데올로기와 대중 선동의 영향력을 보다 심오한 방식으로 고발한 이 고전 희곡의 풍자에 오늘날 많은 독자가 틀림없이 크게 환호하며 공감할 것이다.

<책 소개>


일단 이 책은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아주 심플한 구성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야기의 진행으로

쉽게 몰입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우수꽝스러운 풍자까지 더해져

읽는 내내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1막에서 닥터 파르팔레 부부가 크노크에게,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을 넘겨주고

대도시로 나가게 된다.

(그 당시에는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의 환자를

넘겨주고 넘겨받으며 거래를 했다.)

지역을 넘겨주며 빚진 돈은

얼마에 한 번씩 갚으라는 말을 남기고서.

처음에는 치료할 환자도 거의 없고,

진료비를 연간으로 지불하는 그 지역에서

어떻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하나 염려가 되었다.

심지어 크노크가 전임의사를 상대로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읽다 보니 그것이 아니다.

그는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크노크: (청진기로 여인을 진찰해 보면서) 머리를 숙여보세요. 숨을 들이쉬세요. 기침을 해보세요. 어릴 때 사다리에서 떨어진 적 없습니까?

여인: 그런 기억 없는데…….

크노크: (손으로 짚어보고, 등을 두드려보고, 갑자기 신장 쪽을 눌러보기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꽤 높은 사다리였을 겁니다.

여인: 어쩌면 그랬을 수도. (중략)

크노크: [……] 그러니까 옛날에 사다리에서 떨어질 때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에 흉추골이 반대 방향인 상태로 미끄러진 거지요. (그 방향을 화살표로 그려 보인다) 소수점 이하 밀리미터니 별거 아니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대단한 숫자는 아니지요. 그런데 문제는 잘못 연결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방팔방으로 계속 욱신거리는 거고요.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크노크는 전임의사에게

몇 가지를 질문하고 확인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의 첫 일은 바로 무료진료.

그 뒤 건강한 이를 환자로 만들기까지

단 5분도 걸리지 않게 된다.

떨어진 적도 없는 사다리를 만들어내고,

그저 피곤한 사람은 중증 환자로 만들고.

이것이 우수꽝스럽고 한심해 보이면서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과연 나라고 그의 언변에

휘말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것은 이미 코로나19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3막으로 넘어가면서부터

크노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은 크노크를 존경하다 못해

우러러보게 되며, 타지에서도

그의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든다.

진료를 받을수록 아픈 곳이 늘어나고,

결국 꾸준히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어진다.

이 모습을 보게 된 전임의사는

어떻게 하면 이럴 수 있냐며 묻게 되고,

크노크는 자신과 같이 일주일을 일하며

자신의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전임에게 갚아야 할 돈을

모두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그 250개의 방에서 사람들이 제각기 의학에 고백을 하는 거지요. 250개의 침대, 그 침대에 드러누워 이제야 삶의 의미를,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제 덕분에 이제야 의료적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말이지요. 밤이 되면 그들 모두 불까지 밝히니 더욱 아름답지요. 그 조명 하나하나, 거의 모든 등불이 제 것이니까요.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칠흑 속에서 잠드는 거지요. 그들은 삭제되는 겁니다. 대신 환자들은 작은 등불이나 램프라도 켜놓지요. 의술이 닿지 않는 모든 것을 저렇듯 밤의 어둠이 감추어버리는 거지요. 동시에 저를 부추기며 한번 해보겠는지 도전장을 던집니다. 말하자면 이 지역은 제가 계속해서 창조해가는, 제가 창조주인 일종의 창공이라고 할까요?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이 책이 단순히 블랙 유머로만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크노크의 대사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시적인 표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기껏 해봐야 자기합리화에 불과하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칠흑 속에서 잠들고

삭제되지만, 자신의 환자들은

작은 등불과 램프로 빛을 발하고

그 불까지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은 창조주인 일종의

창공이라고까지 말한다.

실제로 극중 주민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낮은 자세로 건강한 몸을 맡긴다.


"우리는 모두 환자다!"

의학의 권위와 상술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블랙 유머

현대인들의 건강 염려증과 그 불안한 심리에 대한 차가운 풍자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사람에게 유익해야 할 의학을 대하는

크노크의 자세에 신랄한 비판을 하고,

그에 속는 바보 같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보지만 글쎄.

나라고 떳떳한가.

몸에 조그마한 이상신호만 와도 큰 병은 아닌지,

큰 병의 전조증상은 아닌지

두려움에 온갖 자료는 뒤적거리는

내 모습은 과연 멀쩡한가.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고 하면

집에 쌓아두고 먹는 영양제들은 또 어떤가.

그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그들을 손가락질했던 손가락이 등 뒤로 사라진다.

사기꾼이자 웅변가인 크노크가 단연 잘못이지만,

결국 그에 넘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가 흥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거참. 씁쓸하다.

씁쓸하지만 재미있었고,

재미있었지만 씁쓸했던

희곡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그 승리의 이야기를 당신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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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잠 못 들고 있었군요 - 불행하지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밤
은종 지음 / 프리즘(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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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많거나,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을 때.

그날 밤은 쉬이 잠들기 어렵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보면

시곗바늘은 한참을 내달리고,

새벽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할 땐

한숨이 푸욱 새어 나온다.

그런 밤, 누군가 나에게 문을 두드리며

"당신도 잠 못 들고 있었군요"라며

인사를 건넨다면 어떨까.


그런 기분이었다.

잠 못 드는 그 밤에

"괜찮아, 잘될 거야"라는 말 대신,

"나도 그래"라는 말로

토닥토닥 마음에 온기를 전해 받는 기분.

남들은 두 다리 뻗고 잘 자고 있는데

나만 바보같이 이러고 있다는

자학 어린 마음을 덮어주는 문장들.

그런 이야기들이 담뿍 담겨있다.


누군가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만도 않아"라고

말할 당신이라면

이 책을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명상과 마음 닦음으로,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건네준 이의

문장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늘은 잠 못 드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혼자만 절박하고 아프고 슬퍼서

잠 못 든다 생각하면 더 외롭고 힘겹다.


나를 아프게 하는 생각은

처음에는 슬며시 다가와 날카롭게 파고든다.

흔히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땅굴을 혼자만 파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처럼 고독하고 괴로운 일이 없다.

나만 미련해 보이고,

뒤떨어지는 것 같고,

나만 아프고 슬프다는 생각에 몸서리쳐진다.

그리고 그 생각을 넘어서면,

행복한 그 누군가를 보기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왜 그렇게 행복해?"라는

공격적인 생각은,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를 해치게 되어있다.


하지만 기억하자.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아보자.

사실 이 세상엔 알지 못하는 이유들로,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나 혼자만 절박하고 아프다고 생각될 때,

더 외로워지고 힘겨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고통과 상념을 함께 나누며,

조금 덜 슬퍼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돌아보지도,

후회하지도 말자.

그땐 그것이 가장 최선이었으니까.


때때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 삶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죽음이라는 것은 참 기괴하다.

두렵고 공포스럽고 눈물 나지만,

그 존재는 우리 삶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 땅에 태어남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함께 가지고 가야 할 존재이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나는 이 부분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나간 죽음에 대한 애도에 빠져,

현재를 허우적대고 미래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미래의 모든 것은 변하고,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가자.

우리는 오로지 현재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니까.


"좋아"

"아주 좋아"

"나쁘지 않아"


작가의 가까운 지인이

무엇인가를 평가할 때

이렇게 3가지로 표현한다고 한다.

평범한 것은 "좋아",

좋은 것은 "아주 좋아",

좋지 않은 것은 "나쁘지 않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나쁜 것이라고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보통 평범한 것에는

"나쁘지 않아",

(때로는 평범한 것에 별거 없는 것,

그저 그런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좋은 것에는 "좋아",

아주 특별하게 좋아야

인심 쓰듯 "아주 좋아"를 쓴다.

더불어 나쁜 것에는

온갖 부정적인 단어를

갖다 붙여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 아주 좋아, 나쁘지 않아"

얼마나 심플하고 좋은 표현인가.

나도 오늘부터 연습해 봐야겠다.

"좋아, 아주 좋아, 나쁘지 않아".


사실 자신의 욕구를 아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마지막을 이렇게 매듭짓는다.

자신의 욕구를 알고 인정하여

자기 인생을 살라고.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나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것.

내 인생을 산다면 과연 불행해질 수 있을까.

당신, 온전히 행복할 수 있길 기도한다.


괜찮다고,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고,

우리 모두는 흔들리며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라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똑같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용기가 솟는다.


우리 모두는 흔들리며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때로는 철퍼덕 자빠질 것처럼

기울어지기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꽃이라는 거다.

나도 흔들리고,

당신도 흔들리고,

우리 모두 흔들리며 피어날 꽃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당신은 분명히 피어날 것이니,

용기를 가지고 오늘 하루도 살아가길 바란다.

아니, 우리 함께 오늘을 살아가 보자.

흔들리는 이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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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 노화와 질병 사이에서 품격을 지키는 법
헨리 마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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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은퇴 후에, 전립선암 4기를 판정받는다면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간다. 하지만 그 가운데 죽음을 지혜롭게 맞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사였던 작가가 은퇴 후 전립선암 4기를 판정받으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를 통한 사유를 모아 담은 책이다.

처음 암을 마주했을 때 그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와 태도,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그 모든 것이 유쾌하고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고 슬프게 다양한 모습으로 깨달음을 녹여냈다. 지금부터 그의 우아한 죽음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1장 부정, 받아들일 준비

처음에는 대부분 자신의 질병을 부정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의사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어진다. 그는 질병과 자신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2장 파국화, 비관적 인내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며 그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치료의 부작용을 겪으며 신체에 나타나는 변화, 자신의 질병을 검색을 통해 마주했을 때 감정 기복. 무엇보다 치료 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조바심 나는 과정까지, 모든 것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장 행복, 남은 날들을 위하여

그는 치료 이후, 남은 날들과 죽음을 떠올리며 말기 돌봄과 조력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인간다운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을 연명하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죽음을 보다 인격적으로 만날 순 없을까.


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있으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답은 없다. 자신의 죽음은 자신의 몫이므로.



지인의 수술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의사를 소개해 준 후 그는 자신의 경력이 끝났음을 고백한다.


사실, 자신의 능력이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누구보다 뛰어났고 인정받았던 지난날이, 이젠 과거에 불과하다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질병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노화를 받아들이고, 의사로서의 은퇴도 받아들인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을 잘 알고 인정하는 것이 굉장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 또한 보다 아름답게 나이 먹고 싶다.


미래의 행복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을 내가 죽은 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이미 나는 햇볕의 따스함을 충분히 누렸다. 이제 다음 세대가 그 따스함을 누릴 차례다라고.


자신이 누렸던 햇볕의 따스함에는 감사를, 더 이상 무의미한 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두려움은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마저도 누릴 수 없게 만든다. 나의 모든 행복을 앗아간다.

내가 가진 것으로 족하다는 어떤 이의 말처럼, 내가 누렸던, 누리고 있는 햇볕의 따스함에 감사를 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도 충분한 하루를 살아낸다.


대해 생각할수록 정말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는 자신의 질병과 노화와 죽음을 사유하며, 가장 중요한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결단을 내린다. (다행히 그는 지금 치료가 잘 되었고 남은 인생을 잘 살고 있다. 앞으로 그에게 얼마큼의 삶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몫대로 열심히 살 것이다.)

죽음을 놓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지만 누가 어떻게 말하든, 죽음은 결국 그의 몫이며 고귀하게 맞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굉장히 딱딱할까 봐 염려했는데, 그것은 염려일 뿐이었다. 글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의학에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품고 있지만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아주 가끔 의학 용어들이 나올 때 살짝 딴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한 편의 시를, 한편의 그림을, 한편의 소설을, 한편의 철학을 보는 것과 같은 문학적 깊이에 감탄이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과 울음과 생각을 넘나들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지혜롭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명확하게 얻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내가 죽음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마음의 그릇이 더 넓어졌다는 거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죽음. 그 죽음 앞에 보다 지혜로운 나로 서길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친다. 당신도 그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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