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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 노화와 질병 사이에서 품격을 지키는 법
헨리 마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9월
평점 :
만약 당신이 은퇴 후에, 전립선암 4기를 판정받는다면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간다. 하지만 그 가운데 죽음을 지혜롭게 맞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사였던 작가가 은퇴 후 전립선암 4기를 판정받으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를 통한 사유를 모아 담은 책이다.
처음 암을 마주했을 때 그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와 태도,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그 모든 것이 유쾌하고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고 슬프게 다양한 모습으로 깨달음을 녹여냈다. 지금부터 그의 우아한 죽음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1장 부정, 받아들일 준비
처음에는 대부분 자신의 질병을 부정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의사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어진다. 그는 질병과 자신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2장 파국화, 비관적 인내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며 그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치료의 부작용을 겪으며 신체에 나타나는 변화, 자신의 질병을 검색을 통해 마주했을 때 감정 기복. 무엇보다 치료 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조바심 나는 과정까지, 모든 것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장 행복, 남은 날들을 위하여
그는 치료 이후, 남은 날들과 죽음을 떠올리며 말기 돌봄과 조력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인간다운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을 연명하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죽음을 보다 인격적으로 만날 순 없을까.
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고 있으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답은 없다. 자신의 죽음은 자신의 몫이므로.

지인의 수술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의사를 소개해 준 후 그는 자신의 경력이 끝났음을 고백한다.
사실, 자신의 능력이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누구보다 뛰어났고 인정받았던 지난날이, 이젠 과거에 불과하다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질병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노화를 받아들이고, 의사로서의 은퇴도 받아들인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을 잘 알고 인정하는 것이 굉장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 또한 보다 아름답게 나이 먹고 싶다.
미래의 행복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을 내가 죽은 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이미 나는 햇볕의 따스함을 충분히 누렸다. 이제 다음 세대가 그 따스함을 누릴 차례다라고.
자신이 누렸던 햇볕의 따스함에는 감사를, 더 이상 무의미한 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두려움은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마저도 누릴 수 없게 만든다. 나의 모든 행복을 앗아간다.
내가 가진 것으로 족하다는 어떤 이의 말처럼, 내가 누렸던, 누리고 있는 햇볕의 따스함에 감사를 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도 충분한 하루를 살아낸다.

대해 생각할수록 정말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는 자신의 질병과 노화와 죽음을 사유하며, 가장 중요한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결단을 내린다. (다행히 그는 지금 치료가 잘 되었고 남은 인생을 잘 살고 있다. 앞으로 그에게 얼마큼의 삶이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몫대로 열심히 살 것이다.)
죽음을 놓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지만 누가 어떻게 말하든, 죽음은 결국 그의 몫이며 고귀하게 맞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쓴 책이라고 해서 굉장히 딱딱할까 봐 염려했는데, 그것은 염려일 뿐이었다. 글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의학에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품고 있지만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아주 가끔 의학 용어들이 나올 때 살짝 딴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한 편의 시를, 한편의 그림을, 한편의 소설을, 한편의 철학을 보는 것과 같은 문학적 깊이에 감탄이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과 울음과 생각을 넘나들며 그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지혜롭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명확하게 얻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내가 죽음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마음의 그릇이 더 넓어졌다는 거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죽음. 그 죽음 앞에 보다 지혜로운 나로 서길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친다. 당신도 그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