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쥘 로맹 지음, 이선주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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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된 고전문학이라니.

거기서부터가 매력이 있다.

어떤 이유로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역주행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1923년 발표한 희곡이다.

처음 극장에서 상영된 후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정식 출간까지 하게 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나라에서

상영되었던 인기가 많은 희곡이라고 하니,

재미와 대중성 모두를 사로잡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지금부터 이 책이 역주행을 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하나씩 알아가 보자.


단순한 줄거리, 그러나 뚜렷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시사적 양면성. 몰리에르의 계보를 잇는, 의학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풍자. 100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이데올로기와 대중 선동의 영향력을 보다 심오한 방식으로 고발한 이 고전 희곡의 풍자에 오늘날 많은 독자가 틀림없이 크게 환호하며 공감할 것이다.

<책 소개>


일단 이 책은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아주 심플한 구성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야기의 진행으로

쉽게 몰입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우수꽝스러운 풍자까지 더해져

읽는 내내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1막에서 닥터 파르팔레 부부가 크노크에게,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을 넘겨주고

대도시로 나가게 된다.

(그 당시에는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의 환자를

넘겨주고 넘겨받으며 거래를 했다.)

지역을 넘겨주며 빚진 돈은

얼마에 한 번씩 갚으라는 말을 남기고서.

처음에는 치료할 환자도 거의 없고,

진료비를 연간으로 지불하는 그 지역에서

어떻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하나 염려가 되었다.

심지어 크노크가 전임의사를 상대로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읽다 보니 그것이 아니다.

그는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크노크: (청진기로 여인을 진찰해 보면서) 머리를 숙여보세요. 숨을 들이쉬세요. 기침을 해보세요. 어릴 때 사다리에서 떨어진 적 없습니까?

여인: 그런 기억 없는데…….

크노크: (손으로 짚어보고, 등을 두드려보고, 갑자기 신장 쪽을 눌러보기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꽤 높은 사다리였을 겁니다.

여인: 어쩌면 그랬을 수도. (중략)

크노크: [……] 그러니까 옛날에 사다리에서 떨어질 때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에 흉추골이 반대 방향인 상태로 미끄러진 거지요. (그 방향을 화살표로 그려 보인다) 소수점 이하 밀리미터니 별거 아니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대단한 숫자는 아니지요. 그런데 문제는 잘못 연결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방팔방으로 계속 욱신거리는 거고요.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크노크는 전임의사에게

몇 가지를 질문하고 확인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의 첫 일은 바로 무료진료.

그 뒤 건강한 이를 환자로 만들기까지

단 5분도 걸리지 않게 된다.

떨어진 적도 없는 사다리를 만들어내고,

그저 피곤한 사람은 중증 환자로 만들고.

이것이 우수꽝스럽고 한심해 보이면서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과연 나라고 그의 언변에

휘말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것은 이미 코로나19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3막으로 넘어가면서부터

크노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은 크노크를 존경하다 못해

우러러보게 되며, 타지에서도

그의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든다.

진료를 받을수록 아픈 곳이 늘어나고,

결국 꾸준히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어진다.

이 모습을 보게 된 전임의사는

어떻게 하면 이럴 수 있냐며 묻게 되고,

크노크는 자신과 같이 일주일을 일하며

자신의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전임에게 갚아야 할 돈을

모두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그 250개의 방에서 사람들이 제각기 의학에 고백을 하는 거지요. 250개의 침대, 그 침대에 드러누워 이제야 삶의 의미를,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제 덕분에 이제야 의료적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말이지요. 밤이 되면 그들 모두 불까지 밝히니 더욱 아름답지요. 그 조명 하나하나, 거의 모든 등불이 제 것이니까요.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칠흑 속에서 잠드는 거지요. 그들은 삭제되는 겁니다. 대신 환자들은 작은 등불이나 램프라도 켜놓지요. 의술이 닿지 않는 모든 것을 저렇듯 밤의 어둠이 감추어버리는 거지요. 동시에 저를 부추기며 한번 해보겠는지 도전장을 던집니다. 말하자면 이 지역은 제가 계속해서 창조해가는, 제가 창조주인 일종의 창공이라고 할까요?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이 책이 단순히 블랙 유머로만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크노크의 대사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시적인 표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기껏 해봐야 자기합리화에 불과하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칠흑 속에서 잠들고

삭제되지만, 자신의 환자들은

작은 등불과 램프로 빛을 발하고

그 불까지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은 창조주인 일종의

창공이라고까지 말한다.

실제로 극중 주민들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낮은 자세로 건강한 몸을 맡긴다.


"우리는 모두 환자다!"

의학의 권위와 상술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블랙 유머

현대인들의 건강 염려증과 그 불안한 심리에 대한 차가운 풍자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사람에게 유익해야 할 의학을 대하는

크노크의 자세에 신랄한 비판을 하고,

그에 속는 바보 같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보지만 글쎄.

나라고 떳떳한가.

몸에 조그마한 이상신호만 와도 큰 병은 아닌지,

큰 병의 전조증상은 아닌지

두려움에 온갖 자료는 뒤적거리는

내 모습은 과연 멀쩡한가.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고 하면

집에 쌓아두고 먹는 영양제들은 또 어떤가.

그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니,

그들을 손가락질했던 손가락이 등 뒤로 사라진다.

사기꾼이자 웅변가인 크노크가 단연 잘못이지만,

결국 그에 넘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가 흥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거참. 씁쓸하다.

씁쓸하지만 재미있었고,

재미있었지만 씁쓸했던

희곡 크노크, 어쩌면 의학의 승리.

그 승리의 이야기를 당신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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