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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 아직 어른이 되기 두려운 그대에게 건네는 위로, 그리고 가슴 따뜻한 격려
정희재 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
원작 생텍쥐페리, 정희재 지음 / 일러스트 정미예
지식의숲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40대 중반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 명작이라는 <어린 왕자>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나의 독서 수준은 저 바닥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명작에 빠져 밤을 새며 울고 울던 날들에도, 책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자체를 냉소적인 눈빛으로 바라본 듯하다. 나는 감성적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이성적인 성격이라, 평범하기를 바란다면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성격을 갖고 있었나 보다.
이 책을 받고,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에게 물으니, <어린 왕자>를 이미 읽었고, 집에 갖고 있노라고 하면서, 의아한 얼굴로 책을 찾아다 준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이 명작을 왜 아직까지 읽지 않았느냐는 듯이...
결국 <지구별 어른, 어린왕자를 만나다>를 읽으면서,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은 셈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정희재의 어린왕자 에세이까지~ (그런데, 의문스러운 것은 내 기억에는 '셍떽쥐베리' 였던 것 같은데... 왜 '생텍쥐페리'라고 표기해서 더욱더 생소하게 만드는 건지...)
나는 책을 읽고 문학에 심취하기 보다는 흔한 말로 '백과 사전'을 통해서 문학작품을 공부했었다. 그저 한 사람의 이과생이었던 탓인지, 내 기억에 주변 친구들도 그닥 문학작품에 심취하지도, 그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지도 않고, 본인의 습작노트도 없이 수험공부(?) 만 하는 척을 했던 것 같다... 나만 그랬나?
아무튼, 책을 읽고 가슴에 담기 보다는, 작가가 누구고, 주인공이 누구고, 어떤 주제를 말하는 지는 알고 있었기에, 남들 앞에서는 굳이 내가 책 하나도 읽지 않았다는 부끄러운 자백을 할 필요없이, 기본적인 문학작품들은 읽은 척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주변의 그 누구도 어린 왕자와 비행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토론하는 이도 없었으니까, 무식한 여편네(?-이는 너무 비하적인 표현이다만...) 취급은 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을 간파하고, 뒤에서 쑤근거리며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또한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고... 임금님 흉도 볼 판인데, 하물며 나같은 소시민이야...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 책은 나같은 무지한 사람에게는 딱 안성맞춤인 책이다. 은유적으로 표현한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읽기 어려운 책은 결코 아니지만,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바를 그저 뭉뜽그려서 유추해 볼 뿐이지, 딱 집어서 뭐라고 표현하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정희재작가는 이러한 수고스러운 작업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모두 27장으로 이루어진 <어린 왕자>에 맞춰 27편의 에세이를 써 놓고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14 내 별을 사랑한다는 것에 나오는 한 문장이 맘에 들어왔다.
'그 가로등을 생각한다. 바로 옆의 뽕나무와 길 건너 흙담을 넘어온 석류나무 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귤빛을.'
그리고 또 한 곳, #18 인생의 90퍼센트는 스스로 가꾸는 것에서
'시각 하나만 바꿔도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비약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라는 문장을 꼽겠다.
내가 마흔이 넘으면서, 마흔이라는 나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내가 마흔이 넘고 보니, 세상의 모든 일들에서 조급증을 털어버리고, 그다지 연연해 지지 않는 여유라는 것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타인이 참으로 몹쓸 짓을 해도, 그저 그려려니, 할 수 있는 지혜와 그런 것들을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얻어지는 나이가 마흔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주변 지인에게 "마흔 만 넘어 봐!"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내가 어린 왕자처럼 열정적인 시간이 있었는지,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당연히 나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푸른 청소년기가 있었고, 정열적인 청춘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뒤늦게 35이라는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겪고 얻은 두 딸에게 <어린 왕자>조차 읽지 않았느냐는 비난아닌 비난을 들어야 한다.
이 책이 '<어린 왕자>+에세이' 라고 설명하니, 중학생 딸아이는 그럼 읽어야 겠다고 한다. 소설보다 수필을 더 좋아하는 아이이니, 뭐 그리 신기할 일도 아니다. 그럼 또, 딸아이의 서평 또한 올릴 수 있으리라. 그럼 일거양득인가? 누가? 책 한권을 보내주고 두개의 서평을 받으니, 본카페가? 아니면 책 하나를 받아서, 두명이 읽으니, 내가 일거양득인건가?
가을빛이 치열하게 물들어가는 날, 세상 모든 일에 한 발자국 물러서서, 어린 왕자의 마음을 한자락 느껴보게 되는 날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