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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ㅣ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18
윤흥길 지음, 이상윤 그림, 방민호 논술,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장마
교과서 한국문학 18
윤흥길 지음
휴이넘
◆ 어린아이였던 '나'의 관점에서 서술된 원작을 '아버지'의 관점에서 다시 써본다.
장모님이 그 단어를 말 한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뿔갱이!' 나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넋을 잃은 채로 장모 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장모마저도 자기가 순간적으로 외친 말에 그 누구보다도 놀란 듯 보였다. 어무 놀란 나머지 괴상하게 숨쉬며 조용히 떨고 있는 장모는 가족들간의 금기를 깬 거였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지켜져 온 금기를.
여태까지 내 동생 때문에 온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치안대와 경찰로부터 시달려 오면서 가족들도 동생에 관한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금기를 깨다니, 장모의 그 말 한마디는 다름 아닌 그 말을 내뱉고만 장모가 아무 말 못하고 서있기에 충분한 과오였다. 장모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어머니의 분노를 인정하겠다는 것이였다.
"저…저년하고 니…니 처제 둘 다 이 집에 발 못 들이게 혀라. 아니, 니…니 마누라도 혹시 모르지. 오늘 중으로 내쫓아야 된다. 그리고 저것들이 삽짝을 나서기 전에 짐보팅이를 잘 조사혀라. 메칠 전에 내 은비네가 없어졌는디, 어떤 년 손버릇인지 다 알 만헌 소행이니께."
어머니는 그렇게 길길이 날뛰고 바락바락 악을 쓰면서 나에게 다짐받으려 했다. 그러자 처제가 바로 조용히 사랑채로 건너갔다. 그 때에야 어머니는 지쳐 드러누웠다. 잠시 조용해진 새에, 아내가 불쌍하게 엉엉 울며 통곡하는 것이였다.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서슬퍼런 눈 빛 때문에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 놈의 주둥빼기 안 오무릴래!" 그러자 집안이 금세 조용해졌다. 아내와 그 가족을 달래고 어머니를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괜히 화난 것처럼 집을 나와서 술집으로 향했다. 엄마나 마셨는지, 언제가지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 책은 어른들만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초중고등학생 독자를 위한 한국문학을 편집해 냈다. 윤흥길 작가의 가장 중요한 대표작과 교과서 수록작만을 엄선하여 문학의 거장, 그리고 서울대 교수진의 만남이 환기하는 첫 번째 이미지는 ‘권위’이다. 권위 만으로 가치를 말할 수는 없겠으나,【교과서 한국문학】은 무엇보다 그 신뢰성에 주목했다.
고등학교 국어(상) 교과서에 수록된 『장마』, 중학교 국어 1학기 교과서에 수록된 『기억 속의 들꽃』, 고등학교 국어 생활과 작문 교과서에 수록된 『완장』, 고등학교 독서와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중학교 한문 교과서와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에 수록된 『묵시의 바다』 외에도 윤흥길의 대표작 총 열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015.2.7.(토) 이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