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실록 1905
예영준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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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실록 1905

예영준 지음

책밭

 

예영준 기자의 <독도실록 1905>. 나카이 요자부로라는 일본의 강치잡이 어부,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적 사고에 흠뻑 젖어 있던 외무성 정무국장 야마자 엔지로에 의해 우리 땅 독도는 조선의 정부가 전혀 눈치를 챌 틈도 없이 다케시마라는 일본 이름을 얻고 한적한 어업기지 시마네현의 부속 도서로 둔갑한다. 일본은 독도를 그렇게 훔쳤다.

독도의 역사를 크게 신라 · 고려시대, 조선시대로 나누고 있다.

독도는 신라의 지증왕 때 처음 복속되면서 기록에 등장했다. 그리고 조선 태종 때에는 쇄출정책을 실시하였고, 숙종 때에는 안용복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일본까지 건너가 일본에게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확인을 받아냈다.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은 크게 10가지이다.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이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다.

-일본은 울릉도로 갈 때의 정박장으로 독도를 이용하고, 독도에서 고기를 잡기도 하여, 늦어도 17세기 중엽에는 독도의 영유권을 확립하였다.

-일본은 17세기 말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였으나, 독도는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다.

-안용복의 진술 내용은 일본의 기록과 맞지 않는 등 의문점이 많다.

-일본 정부는 1905년 독도를 시마네 현에 편입하여 독도 영유 의사를 확인하였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기초 과정에서 한국은 영토에 독도를 포함시키도록 요구하였으나 미국은 독도가 일본의 관할 하에 있다고 언급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독도는 1952년 주일미군의 폭격 훈련 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본 영토로 취급되었음을 시사한다.

-한국은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으며 일본은 엄중하게 항의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나 한국이 이를 거부한다.

이에 대한 우리 측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관측되며, 15세기 이후의 여러 서적에 독도를 설명하였다.

-17세기 중엽, 19세기 말 일본의 문서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되어 있다.

-제시한 자료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역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으며, 일본의 관청에서

펴낸 자료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17세기 말 돗토리 번은 에도 막부에 대한 답변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돗토리 번 소속이 아님을 밝혔다.

-안용복의 활동은 비변사에서 철저한 조사가 있었다. 일본의 기록만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독단적인 주장이다.

-1905년의 편입은 러일전쟁과 한반도 침탈의 과정에서 행하여진 것이며, 불법·무효한 조치이다. 한국은 외교권이 박탈된 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은 대일강화조약 직후 독도가 일본의 관할구역에서 제외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미 공군은 한국의 항의에 독도를 훈련구역에서 해제하였고, 한국 측에 공식으로 통고하였다.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한 적이 없다.

-일본은 센카쿠 제도나 북방 4개 섬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하면서 유독 독도에 대해서만 재판소 회부를 주장하고 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증거는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증왕 13년조,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일본 태정관 문서, 대일본 전도, 삼국접양지도,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 대한제국 관보 등이 있다.

이 책은 그런 과정을 샅샅이 파헤쳤다. 주장이나 추정은 피했다. 일본 내각의 당시 자료, 야마자라는 인물이 남긴 족적에 관한 기록, 신문에 보도된 당시의 상황 등을 근거로 독도가 일본명 다케시마로 둔갑하는 과정을 면밀히 추적했다. 독도와 한반도가 일본 제국주의에 강점당하는 모습들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독도에 관한 일본의 영토 주장이 왜 허구인지, 한반도 강점이 어떤 야욕으로 점철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2014.5.15.(목) 이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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