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비가 - 상
조열태 지음 / 이북이십사(ebook24)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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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悲歌

조열태 지음

이북이십사

임진왜란 3대 대첩인 한산도대첩(1592년 7월), 행주대첩(1593년 2월)과 진주성대첩(1592년 10월-1차, 1593년 6월-2차) 중에서 진주성에서 왜군과 격전을 벌인 2차례의 전투를 말한다.

진주성 비가 두 권 중에서 일단 상권에서는 2차 진주성 전투를 이끈 서예원을 중심으로 한 축과 가상인물로 여겨지는 최억술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진주대첩하면 김시민을 떠올리는데, 진주대첩은 1592년 10월에 1차 싸움에서 김시민이 전사했고, 1593년 6월의 2차 싸움을 이끈 인물을 서예원인데, 김해 부사인 서예원이 김해성전투 중 초계 군수 이유검이 지원 요청을 보낸 창원에서 아무런 대응이 없는 것을 빌미로 창원에 구원요청을 하겠다며 성에서 탈출한 것을 틈타 이유검을 잡겠다고 도망친 사고로 백의종군하게 된 사연을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부산진성, 경상 좌병사 이각, 울산 군수 이언성, 양산 군수 조영규, 동래 부사 송상현, 밀양 부사 박진이 함께한 동래성 전투, 작원관, 김해성 전투, 최초의 승리로 기록된 5월 24일의 정암진 전투, 거창에서의 우두령 전투와 지례 전투에 이르기까지 진주성 전투에 이르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 진주성 전투의 의의와 배경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소설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11592년 10월 진주성에서 왜군을 격퇴한 싸움. 나가오카 휘하의 왜군 3만여 명은 전라도로 진격하기 위해 진주성을 포위공격했다. 수천 개의 대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공격하는 왜군을 맞아 10월 6일부터 진주성에서는 김시민이 지휘하는 조선군 3천여 명이 혈전을 벌였다. 10월 9일에는 왜군의 총공격을 격퇴했으며, 곽재우·최강·이달 등의 의병부대는 성 밖에 진을 치고 왜군의 배후를 위협했다. 6일간에 걸친 대접전 끝에 조선군은 왜군을 격퇴했으나 전투를 지휘한 김시민은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이 싸움의 결과로 조선군은 경상우도를 보존하고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21593년 6월에 벌어진 왜군과의 혈전. 93년 4월 서울에서 철수한 왜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해안에 집결했다. 왜군은 강화회담을 추진하는 한편, 1차 진주성 전투의 패전을 설욕하고 전라도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진주성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 전투에서는 가토·고니시·구로다 등 왜장과 귀갑차(龜甲車) 등 왜군의 신무기가 총동원되었으며 왜군의 선봉만도 5만여 명에 달했다. 이에 맞서 싸운 조선군은 황진·최경회 휘하의 관군과 김천일이 지휘하는 의병을 합해 3천여 명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2012.7.3.(화) 진주성에 대한 열공한 두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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