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 기초 한울 사회민주주의 총서 1
토비아스 곰베르트 외 지음, 한상익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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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개혁적 개혁' - '사회민주주의']

"포디즘 시대에 ('비개혁적 개혁' 전략을 통해) 일부 좌파는 사회민주주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시각에서 볼 때, 사회민주주의는 단순히 적극적인 자유주의 복지국가와 변혁적인 사회주의 복지국가 사이의 타협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민주주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궤도가 변할 수 있는 역동적인 체제로 간주되었고 보편적 사회복지의 구축, 강력한 누진세 구조,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거시경제 정책, 거대한 비시장형 공공부문, 중요 분야의 공공/집단 소유와 같이 매우 적극적이고 개혁적인 재분배틀을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이 정책 중 어느 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제도들이 함께 작동한다면 자본에서 노동으로 세력 균형의 추가 이동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물론 이와 같은 기대가 가능한 것인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효과적으로 그 실험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서, 사회민주주의는 그 기대의 실현 여부를 증명할 만큼 충분히 시험되지 못했다."

- Nancy Fraser (뉴욕 사회과학뉴스쿨 정치사회학 교수)


정의철학과 페미니즘 이론가 낸시 프레이저가 '비개혁적 개혁'이라는 전략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논한 글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나보다도 어린 몇몇 이론가들이 정리한 [사회민주주의의 기초(Foundations of Social Democracy)]라는 총서 시리즈를 민주통합당 시절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이 번역했다.

오늘은 5.18 광주민중항쟁 37주년 되는 날이다.
새로 출범한 민주정부가 37년 전 광주의 '혁명적 해방구', '광주코뮌' 정신을 잊지 말고 '비개혁적 개혁'이나마 충실히 이행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며칠간 보여준 행보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몇 명은 선한 민주주의자들은 맞는 것 같다.

이번 민주정부의 여당인 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원장은 김민석 전의원이다. 이 분 역시 '80년 5월 광주'의 직접적 영향 아래 불의한 시대와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라는 쉽지 않은 책을 밤새 번역했을 '87년의 김민석 스스로를 새삼 되돌아 보며 새로운 시대의 '비개혁적 개혁' 전략이나마 충실히 설계해 주기를 또한 진정 기원한다.

김민석이 번역한 엥겔스의 [반뒤링론],
이해하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열심히 줄쳐대던 나의 20대 때가 새삼 생각나는 5.18 광주민중항쟁 37주년 아침 출근길.

#80년광주를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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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학론
임종국 지음 / 민족문제연구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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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를 '천치로 만들어 준 일체'를 경계할 것!
- [친일문학론], 임종국, 1966. -


"이 책에서의 친일문학이란 어떤 개념에서 사용된 어휘냐?
주체적 조건을 상실한 맹목적 사대주의적인 일본예찬과 추종을 내용으로 하는 문학이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친일파들의 문학이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물론 그 같은 주체성을 몰각한 문학 속에는 소위 친일파들이 저술한 문학도 적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친일파 아닌 사람들의 추종적 작품도 제외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 이런 입장과 견지에서 앞으로 필자는 1940년을 중심한 전후 약 10년간의 주체성을 상실한 일본 추종의 문학을 고찰하겠다."
- 임종국, [친일문학론], <서론>, 1966.

1965년 6월 굴욕적인 한일협정 국면에서 시인 임종국 선생은 모두가 침묵하던 일제 '암흑기', '친일문학'을 실증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의 서론처럼 '대동아성전승리'라는 이데올로기적 거짓선동과 '시류'에 휩쓸려 '주체적 조건'을 상실한 '추종적' 행위를 통해 본의 아닌 친일을 한 저명 인사들이 약 80% 정도라면, 문학계에서는 윤동주, 이육사, 김영랑, 폐허파와 청록파 시인 등 극소수를 제외한 90% 이상이 '친일문학'을 했다. 
해방후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좌절되고 박정희 정권은 굴욕적인 한일협상으로 반민족 부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카프 출신으로 친일문학을 했던 백철 같이 일제강점기를 '암흑기'로 부르며 부끄러운 친일의 과거를 감추려 한 거대 문학권력에 맞서 선배문학가 90%를 역사의 심판정에 기소한 첫 작업이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다.

컴퓨터 상용화도 안되었던 시기 대학도서관에 상주하며 방대한 자료를 필사하고 육필로 하나하나 기록했을 임종국 선생의 노고와 친일부역자들의 기득권과 침묵의 카르텔로 공고해진 살아있는 문학권력에 맞서는 용기.
[친일문학론]을 통해 새삼 배운 두 가지이다.

[친일문학론] 전반에 인용된 친일작가들의 글들을 읽으면 굳이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해도 분노가 끓는다. 
그러나 그 중 하나 꼽으라면 '조선어말살정책'을 시행한 미나미 지로 총독 앞에서 '조선말 전폐'를 주장했다가 오히려 일본인 총독한테 현실성 없다고 '전면 거부'를 당했다는 친일문필가 현영섭이라는 자. 가히 부끄러운 장면의 대표격이다.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독립운동을 하느니 '내선일체'로 일본의 한 지방이 되는 것이 조선을 위한 것이라 하여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이광수나 중추원 참의까지 하면서 재벌만큼 부를 축적했다는 최남선 등은 임종국 선생 덕분에 우리 역사에 이미 다 드러난지 오래니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친일문학론]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서정주는 '친일'이라기 보다는 다수 동포들과 같은 의견으로 '하늘에 따랐다(종천순일파)'고 변명하면서, 해방후에는 이승만 전기를 쓰고 전두환에게 '오천년 이래 최고의 미소'라 찬미했단다. 
이런 '부역의 역사'가 바로 지금, 
다수의 힘으로 박근혜 정권을 기어이 퇴진시킨 지금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청산해야할 '적폐'이다.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은 민족문제연구소 설립과 [친일인명사전] 편찬작업의 외로운 시작이었는데, 그는 <자화상>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해방이 됐다고 세상이 뒤집혔다... 이때 내 나이 17세. 하루는 친구놈한테서 김구 선생이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
'얘! 너 그, 김구 선생이라는 이가 중국사람이래!'
'그래? 중국사람이 뭘 하러 조선엘 오지?'
'이런 짜아식! 임마 것두 몰라! 정치하러 온대.'
'정치? 그럼 우린 중국한테 멕히니?'
지금 나는 요즘의 17세에 비해서 그 무렵의 내 정신연령이 몇 살쯤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식민지교육 밑에서,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을 뿐 한번 회의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이제 친일문학론을 쓰면서 나는 나를 그토록 천치로 만들어 준 그 무렵의 일체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임종국, [친일문학론], <자화상>, 1966.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우리 모두를 '천치로 만들어 준 일체'에 대하여 경계해야 할 것이다.

[친일문학론]의 서술형식은 '정치적-사회적 배경', '문화기구론-단체적 활동', '작가-작품론', '작품연표' 순서인데, 
흡사 '본기', '세가', '열전', '표' 등으로 이뤄진 사마천의 '기전체' 같기도 하다.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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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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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회] 동지에게 '정의'란 무엇입니까? - 제13차 독회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10강 <정의와 공동선>

산별교육원의 날 - '수요회' 제13차 독회는 9월 7일(수) 산별 교육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2016년 하반기 커리큘럼을 끝내는 제13차 독서회의 주제는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대학 강의록을 엮은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였습니다.

1950 ~ 70년대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도덕과 결합한 정치철학을 이론화하는 마이클 샌델은 미국식 '공동체주의자' 또는 미국식 '공화주의자'로 분류되는데, 그 중심 테마는 '공동선'입니다.

샌델의 '정의철학'을 철학사적으로 이해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과 철학이 결합한 '공동선'에서 시작하여 - '정'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등의 이념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근대 독일 주관적 관념론자 임마누엘 칸트와 현대의 미국식 관념론자 존 롤스를 통해 도덕과 정치가 분리된 철학적 사유의 기초로서 '인간 이성'과 '개인(시민)의 권리'에 대한 재정리를 거쳐 - '반'
도덕과 정치가 결합한 '공동체주의'적 정의철학을 정립합니다. - '합'

위와 같이 '관념철학' 진영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를 거쳐 정립되는 샌델의 정의철학을 한덕환 최우수회원 동지의 발제를 통해 함께 읽어본 후 세 가지 논의를 해 보았습니다.

1.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전체주의'인가?

'선'보다 '옳음'을 우선시하는 칸트, 롤스와 대비하여 샌델은 '옳음'보다 '선(공동선의 가치)'을 강조한다. '공동선'이란 지역, 국가, 세계의 범위 및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다. 샌델에게 '공동선'은 미국의 정치체제이며 '미국식 공화주의'라는 그들만의 건국이념이다. 샌델의 주장이 '전체주의'는 아니라 해도 미국의 국가주의자들에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2. 샌델의 ''공동체주의' 실체는 무엇인가?

위에서 정리했듯 미국 국가주의자들의 '이상사회'로서 건국초기 미국식 '공화주의'이다. 다양한 인종(사실은 백인), 종교(사실은 기독교), 사상(사실은 자유주의)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그들만의 '이상주의', 사실상 '미제국주의'이다.

3.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공동선'은 시대와 지역, 국가, 세계 등에 따라 다르므로 샌델에 따르면 '정의'는 '상대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계급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삼성재벌의 '정의'와 다수 노동자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롤스와 피케티처럼 '불평등'을 용인하되 '정당한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의'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정의'란 '평등'일 수 있다.

'비판적 독해'는 '수요회'의 힘!

고도로 발전된 현대 자본주의 세계체제,
양극화와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묻습니다.

동지에게 '정의'란 무엇입니까?

***

작년 5월부터 올해 9월 제13차까지 함께 해주신 회원 동지들, 비록 책은 안 읽지만 지지해주신 외부세력들, 첫 책 구입과 초청강연회 예산도 잡아주고 집행해준 산별교육원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산별교육원의 날 - '수요회'는,
자랑스런 2천만 노동자의 조직 민주노총 사무금융 산별 동지들의 마음 속에 항상 있습니다!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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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의 의미 한길그레이트북스 126
에르빈 파노프스키 지음, 임산 옮김 / 한길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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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의 의미], 에르빈 파노프스키 : 자연과학과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학
 
"과학이 자연현상의 혼돈의 다양성을 이른바 자연의 질서(cosmos)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반면, 인문학은 인간기록(문헌)의 혼돈의 다양성을 이른바 문화의 질서(tabula)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마치 자연과학이 현상이라 불리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듯이, 인문학은 역사적 사실이라 불리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 결국, 자료가 자연의 질서로 조직화되는 연속단계들과 자료가 문화의 질서로 조직화되는 연속단계들은 서로 유사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함의되는 연구방법의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자연현상의 관찰과 인간기록의 검토가 행해진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자연으로부터의 메시지'가 관찰자에게 받아들여지듯이, 기록도 '판독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관찰과 검토의 결과가 '의미를 지니는' 일관된 체계로 분류되고 정의되어야 한다."

- 에르빈 파노프스키, [시각예술의 의미], <서장: 인본주의적 학제로서의 미술사학> 중

그림, 조각 등의 '시각예술(Visual Arts)'에서 '일차적-자연적 주제'를 넘어 '이미지', '일화', '알레고리' 등을 구분하는 '이차적-관습적 주제'를 파악하는 것, 즉 "미술작품의 형식에 대비되는... 주제 또는 의미에 관련된 미술사 분야"(1장 <도상학과 도상해석학 : 르네상스 미술연구에 관한 서문>)로서 '도상학(iconography)'에 그치지 않고 '도상해석학(iconology)'을 개척한 미술사학자가 바로 독일 출신의 미국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이다.

그의 '도상해석학'은 미술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 '일화', '알레고리' 등의 관습적 의미 등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련 문헌과 당시 예술사조 등을 바탕으로 시대의 '문화적 징후' 또는 '상징'을 읽어내고 해석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데 철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인문학'으로서 그의 미술사학이 객관적으로 현상을 파악하는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예술작품을 '미적으로 경험될 것을 요구받는 인조물'로 정의함으로써 우리는 처음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근본적인 차이와 조우한다. 과학자는 자연현상을 다룰 때, 일단 그것들을 분석한다. 인문학자는 인간의 행위와 창작물을 다룰 때, 총합적, 주관적 성격의 정신적 처리 과정에 적극 관여하여야 한다."

- 파노프스키, 같은 책, 같은 논문.

객관성을 근본으로 하는 '자연과학'에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철학'이 개입함으로써, 예술작품에 담긴 '의미(meaning)'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 논문집의 제목인 '시각예술의 의미(Meaning in the Visual Arts)'의 '의미'이다.

그리하여 결국, '자연과학'과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학'은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상호 통일적이다.

"고고학적 조사는 미적 재창조(예술작품의 재창조) 없이는 맹목이고 공허하다. 또한 미적 재창조는 고고학적 조사 없이는 비이성적이고 그른 길로 향할 때가 많다... 일시적인 사건들을 정적인 법칙으로 바꾸는 대신 정적인 기록에 동적인 생명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충돌하지 않고 그것을 보완한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한편을 전제하고 요구한다... 자연과학의 이상적인 목적은 정복과 비슷한 어떤 것처럼 보이는데, 인문과학의 이상적인 목적은 지혜와 비슷한 어떤 것처럼 보인다." 

- 파노프스키, 같은 책, 같은 논문.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처럼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나, 파노프스키의 '주관적'이고 난해한 '도상해석학'적 시도는 일반인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에서도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다시금 확인한다.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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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기초개념
하인리히 뵐플린 지음, 박지형 옮김 / 시공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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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뵐플린의  [미술사의 기초개념]과 우리 애기들 첫 미술전시 관람 
- 2016. 8. 5. (금), 충무아트센터, '서양미술사 아틀리에'


"아무도 '눈(시각)'이 제 스스로 발전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다른 정신적 영역과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에 죽은 모형처럼 덮어 씌워진 그러한 시각적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항상 보기 원하는 대로 보아 온 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법칙이 작용하였을 가능성은 상당히 농후하다. 이 법칙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미술사의 중심과제이자 기본과제일 것이다."
- 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개념], <서문>, 1915.

스위스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의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우리집 신창동 헨젤과 그레텔 및 무적 애기의 첫 미술 관람을 결국 완수하고야 말았는데,
인터넷 예약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갔다가 저번 전쟁기념관 미켈란젤로전처럼 헛탕칠 수 없어 막무가내로 꼽사리껴서 입장했다.

15세기 고전기 르네상스(콰트로첸토)에서 16세기 전성기 르네상스(친퀘첸토)를 지나 17세기 바로크(세이첸토)로 이어지는 시각표현양식의 이행을 뵐플린은 다음의 다섯가지 개념쌍으로 이론화한다.

1. 선적인 것(소묘) - 색채적인 것(회화)
2. 평면성 - 깊이감
3. 폐쇄적 형태 - 개방적 형태
4. 다원적 통일성(개별적 완성미) - 단일적 통일성(전체적 완성미)
5. 절대적 명료성(명료성) - 상대적 명료성(불명료성)

독일 근대 관념철학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서술하는 뵐플린이 칸트 철학에서 차용했을 '직관 범주'로서 이 개념쌍들은 상호 중첩되기도 하고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동일한 사태에 대한 다섯 가지 관점"(결론)이라고 한다.
15, 16세기 르네상스에서 17세기 바로크 및 로코코로 이행하는 이러한 양상과 특징들은 각 시대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선형으로 반복되고 발전된다는 뵐플린의 이론은 또한 독일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적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바로크와 로코코는 18세기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고전주의'의 부활로 다시 대체된다.

"... 1800년경의 미술사적 변화는 당시의 일반적인 시대상황 만큼이나 독특하다. 서양 문화는 당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총괄적인 갱신 작업을 수행해 냈다.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경향과 낡은 경향간의 직접적인 대립이 일어났다.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 뵐플린, 같은책, <결론>, 1915.

미술사를 일직선적인 발전으로서 '고전주의의 승리'로 파악하는 18세기 요한 빙켈만의 '신고전주의' 관점과 달리, 
20세기 뵐플린은 고전적 '르네상스'와 '바로크'는 별개의 발전양식으로서 '새로운 경향'과 '낡은 경향'이라는 두 양식의 대립과 투쟁을 통해 미술사가 나선형의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고전적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절대로 가치판단을 의미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크에조차 그 나름의 고전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크는 고전적인 것의 몰락도 아니고 고양도 아닌, 전반적으로 아예 다른 미술이다. 근세 서유럽의 발전은 성장, 정점, 몰락의 간단한 곡선도식으로는 도저히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두 개의 정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는데..."
- 뵐플린, 같은책, <서문>, 1915.

"위의 두 가지 유형은 서로 독립하여 병존하는 것이므로 나중 단계를 전단계의 단순한 질적 상승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상은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바로크 양식은 18세기 말엽(아마도 프랑스 대혁명) 바로 대상에의 충실이라는 기치 아래 생겨난 고전적 경향에 의해 다시금 밀려나게 된 것이다."
- 뵐플린, 같은책, <4. 다원성과 통일성>, 1915.

뵐플린은 미술이나 예술에 미치는 '외적 미술사(정신사)'의 영향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내적 미술사'로서 미술 고유의 역사적 특수성을, 그 '내적 형식주의'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시각의 역사(표상의 역사)가 단순한 미술의 영역을 뛰어넘듯 '시각'을 통해 드러나는 민족적 다양성은 한낱 취향의 문제로 치부되어질 수 없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한 민족의 전체 세계상에 대한 토대를 이룬다. 시각 형식의 이론이 역사학 분야에서 쓸모없기는 커녕 오히려 필수불가결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뵐플린, 같은책, <결론>, 1915.

"시각의 역사... 시대별 감각과 정신 사조에 맞추어 진행되는 그 내적인 과정은 늘 그 시대가 처한 포괄적인 발전상에 포함된다...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는 여기서 나의 [기초개념] 중에 나오는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겠다. 즉 '인간은 항상 원하는 대로 볼 뿐이다.'(서문) 예를 들면 회화적인 양식이라는 것도 그것이 납득될 만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시각의 역사와 일반 역사간의 상관성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거나 전혀 비교 불가능한 대상을 비교하려 한다거나 해서는 안된다. 미술은 역시 그 나름의 독특한 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미술이 명실상부한 최고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순수 직관에 의거하여 늘 새로운 형식을 유도해 냄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미술이 때로는 선두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인정하는 문화사도 쓰여질 법 하다."
- 뵐플린, 같은책, <후기:재고(1933)>.

미술이나 예술도 사회경제체제 토대를 반영하며, 그 '특수한 반영'(게오르그 루카치)을 통해 해당 사회체제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를 중시한 뵐플린이 '서문'에서 언급한 '과학적 미술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외적 '정신사'로서의 '관념철학'이 아니라 사회경제체제 전반을 아우르는 '역사유물론'을 기초로 해야 한다.

'과학적 미술사'에서도 아직까지 철학적으로 다른 길은 없다.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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